축구에 미친 ‘진짜 사나이’
  • 김세훈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11.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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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정상 오른 전북 최강희 감독, 바르셀로나와 일전 별러

 
답답한 모습만 보였던 한국 축구계에 최근 의미 있는 낭보가 전해졌다. 우리나라 프로축구 전북 현대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등극한 것이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 각국 프로 상위 1~2개 팀이 아시아 최고 프로팀을 가리는 대회로 올해로 4회째. 3회까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팀이 우승했고 우리나라 프로구단의 우승은 전북이 처음이다. 전북이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는 한국 축구의 체면을 회복한 셈이다. 1994년 창단한 후 FA컵 우승 3회를 빼고는 변변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전북으로서는 창단 12년 만의 최고 성적이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뒤에서 두 번째’였던 전북이 불과 1년 만에 아시아 최고 클럽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놀라운 변신의 중심에는 ‘조용한 카리스마’ 최강희 감독(47)이 있었다.

 프로팀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최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한 스타 출신이다. 1992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93년 레버쿠젠·쾰른(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축구를 공부했다. 1995년 수원 삼성에 트레이너로 발을 들여놓은 뒤 1998년 코치로 승격했다. 2000년부터는 뉴캐슬(잉글랜드), 데포르티보·레알 마드리드(이상 스페인)에서 계속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2001년 수원을 그만둔 뒤에는 움베르투 코엘류 전 대표팀 감독 밑에서 대표팀 코치로 일했다.
 최감독이 전북 지휘봉을 잡은 것은 지난해 7월. 당시 조윤환 감독의 후임을 찾던 전북이 예상을 깨고 꺼내든 카드가 바로 최감독이었다. 최감독은 부임 직후 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우선 훈련의 강도를 높였다. 최감독은 “하루 1시간30분의 훈련 중 1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도가 심하다. 자기 힘의 1백20%를 쏟아내는 훈련 속에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면 실제 경기에서는 70~80%의 힘으로도 상대를 꺾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사실 전북은 전통적으로 훈련량이 많지 않았던 팀. 초기에는 선수들이 앓는 소리를 했지만 지금은 최감독이 “좀 살살 해라”고 말릴 정도로 마인드가 바뀌었다.

 이와 함께 최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신인 선수와 이적생 발굴. 울산에서 데려온 ‘숨은 진주’ 김형범을 시작으로 신인 골키퍼 권순태, 최근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힌 염기훈 등이 모두 최감독의 작품이다. 현재 베스트 11 중 절반 이상이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팀 소속이었다. 최감독은 “기량이 좋은 새로운 선수들이 자꾸 오면 팀 분위기도 활발해지고 자체 경쟁력도 강화된다. 훌륭한 기량을 가진 무명의 선수들이 불쑥불쑥 나오면서 팀 전력도 함께 업그레이드된다”라고 설명했다.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축구에 올인하라”

 강한 훈련, 신인 발굴에 이은 또 하나의 비결은 심리적인 불안감 극복. 전북은 예전부터 이상하리만큼 자주 경기 막판에 불안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후반 막판 골을 내줘 패하거나 다 잡은 경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골을 넣으면 쉽게 흥분하고 실점을 하면 바로 무너졌다. 모두 심리적인 불안감이 원인이었다.
 최감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몇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주었다. 선취골을 넣었을 때, 추가골을 터뜨렸을 때, 역전골을 허용했을 때 등 여러 가지 경기 상황에 맞는 게임 운영법을 미리 알려준 것이다. 현재 전북이 기복 없는 플레이를 하는 데는 이 시나리오의 공이 크다.

 실전을 방불케 할 만큼 강도 높은 훈련, 이적생과 신인의 가세로 불꽃을 튀기는 치열한 생존 경쟁, 가상 시나리오를 통한 패배 의식의 극복, 그리고 잇단 승리. 단단한 몸, 강한 정신, 냉철한 준비를 통해 승리의 쾌감을 맛보기 시작한 전북은 구태에서 벗어나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최감독은 “초기에는 감독이 말을 해도 정신 놓고 먼 산만 보는 선수, 자기들까지 잡담하는 선수, 훈련을 하기 싫어서 물병을 잡고 사는 선수가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옛날 이야기이다”라며 흡족해했다.

 

 최감독이 감독으로서 자신이 가장 자신 있다고 여기는 부분은 무엇일까. 최감독은 선수들의 심리 파악을 통해서 100%의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이끄는 것을 꼽았다. 이는 스타들이 뛰고 있는 잉글랜드·스페인·독일 프로팀에서 공부한 덕분이었다.


 최감독은 아마추어식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훈련 열심히 해라’ ‘몸 관리 잘 해라’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마라’는 말은 프로에는 알맞지 않다는 것이다. 최감독은 대신 유럽에서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전했다.

 최감독은 “유럽에서는 선수들이 10대 때부터 축구에 목숨을 건다.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하면 정말 자신의 숨통이 끊어진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감독은 이어 “‘대충 하다가 고작 연봉 2천~3천만원 더 받으려고 한다면 차라리 지금 그만둬라.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뒤 20억원, 30억원을 놓고 당당하게 협상하라’고 선수들에게 말한다”라고 덧붙였다. 최감독은 슈퍼스타가 되려면 축구에 ‘올인’하라고 강조한다. “남들처럼 할 것 다하면 평범한 선수에 그칠 수밖에 없다.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산에서 도를 닦는 도인처럼 오로지 축구에만 미쳐야 성공할 수 있다.” 최감독은 상대팀이 전북이라면 몸서리를 칠 정도로 정말 강하고 근성 있는, 정말 축구에 미친 팀을 만들고 싶어한다. 자신부터 동갑내기 아내(이명성)와 골프를 배우는 외동딸(최혜린)을 ‘버리고’ 축구에 미쳐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전북은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릴 제1회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한다. 클럽선수권대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며 유럽·남미·아시아·북중미·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6개 대륙 최고 프로팀이 맞붙어 세계 최고를 가리는 대회다.
 전북이 처음에 싸울 팀은 북중미 대표 아메리카(멕시코)다. 만일 전북이 아메리카를 꺾으면 2005~2006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팀 ‘거함’ 바르셀로나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바르셀로나는 호나우지뉴(브라질)·에토오(카메룬)·참브로타(이탈리아)·푸욜(스페인)·메시·사비올라(이상 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스타가 즐비한 호화 군단. 아시아팀에 바르셀로나와의 일전은 승패를 떠나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행운이다.
 최감독은 “앞으로 남은 시간 준비를 잘 해서 꼭 아메리카를 꺾고 바르셀로나와 맞붙고 싶다. 설사 바르셀로나에 진다고 해도 바르셀로나가 전북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화끈하고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경향신문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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