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상징 삼족오 허구인가 돌연변이인가
  •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
  • 승인 2006.11.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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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시사과학] 기형학, 17세기 초 태동…이상한 외모·행동 유전자가 결정
 
최근 고구려 시대를 다룬 드라마가 안방극장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에는 어김없이 삼족오(三足烏), 곧 세 발 달린 까마귀를 고구려의 상징처럼 떠받드는 대사가 나온다. 오늘날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여겨지지만, 고구려 사람들은 상서로운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보면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동물로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들의 벽면에는 태양 한가운데 공작형 벼슬이 달린 세 발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삼족오는 원래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동물이었으나 고구려로 전해진 것이다.

요 임금 시절,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열기를 쏟아 부어 온 세상이 엄청난 더위와 지독한 가뭄에 시달렸다. 열 개의 태양은 하늘나라의 천제가 낳은 아들들이었다. 천제는 열 개의 태양이 재앙을 일으켰기 때문에 아들들을 혼내주기 위해 활을 잘 쏘는 천신인 예를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에 비견되는 예는 천제와 백성들을 위해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을 맞고 땅에 떨어진 것은 황금빛의 세 발 까마귀였다.

서양 신화에도 삼족오처럼 다리가 많이 달린 괴물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가령 그리스 신화에서 바다에 사는 괴수인 스킬라는 열두 개의 다리와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머리의 수가 많은 상상 동물은 한두 종류가 아니다. 인도 창조 신화에 나오는 아난타는 1천개의 머리를 양산처럼 달고 있는 뱀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의 문을 지키고 있는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개이다. 늪 속에 사는 물뱀인 히드라의 머리는 여섯 개에서 100개까지 여러 주장이 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머리를 모두 잘라냈다.

돌연변이, 유전 법칙 비밀 푸는 ‘열쇠’

신화 속의 괴물들은 생김새가 천태만상이므로 이러한 기형은 신의 섭리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학적인 차원에서 괴물에 접근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1573년 프랑스의 외과 의사인 앙브루아즈 파레는 자연의 경이를 집대성한 <괴물과 불가사의>를 펴냈다. 파레는 괴물이 생기는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원인은 신의 분노였다. 신이 수간을 한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 인간과 동물의 혼합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사람과 황소(미노타우로스), 염소(사티로스), 새(세이렌), 사자(스핑크스)의 잡종들이 그리스 신화에 적지 않게 출몰한다. 둘째 정액의 양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경우, 또는 별난 체위로 성교를 할 때 괴물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기형이 초자연적인 신의 섭리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이유로 생길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17세기 초반에 기형의 원인을 자연에서 찾아 괴물을 연구하는 학문인 기형학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인물은 윌리엄 하비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혈액 순환의 원리를 밝혀낸 영국 의사인 하비(1578-1657)는 기형의 새들이 생기는 원인을 연구했다. 영국 철학자인 베이컨(1561~1626)은 자연의 모든 괴물들과 기이한 피조물들을 수집해 기형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컨은 언젠가 과학이 변이의 원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이컨의 판단은 적중했다.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달로 돌연변이는 유전자에 숨겨진 의미를 해독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유전법칙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일반인들과 다른 외모나 행동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가 1천여 개 이상의 유전자에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사족 한마디. 북한에 프로야구가 생긴다면 삼족오를 상징 동물로 사용하는 구단이 나타날지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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