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융 제재, 모두 세 곳에서 풀렸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11.2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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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 당국자 “BDA 합법 자금과 다른 두 곳 동결 자금 해제”…싱가포르에만 2억 달러 묶여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서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이 ‘혁명적 재편기’를 앞두고 있지만, 국내의 ‘논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쟁점은 역시 워싱턴에 불고 있는 변혁의 바람이 바그다드와 테헤란에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평양에까지 불어닥칠 것인가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대북 강경론을 이끌어왔던 국내 보수 언론들은 연일 ‘워싱턴의 변화’를 축소 해석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중동 정책은 변할 게 틀림없으나 대북 정책은 속단할 수 없다. 북한과 직접 대화를 주장하는 민주당조차 북한의 인권 문제, 핵실험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지 않는가.’ 또 혹자는 ‘부시 행정부가 남은 기간에 중동 문제를 뒤처리하다 보면 북한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잘 해야 현상 유지다’라고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동 정책에 앞서 대북 정책이 이미 변해 있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마카오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으로 상징되는 대북 금융 제재로 압축할 수 있다. 북한이 역시 6자회담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금융 제재 해제를 내걸었고, 지난 10월31일 힐-김계관 베이징 합의 역시 이 문제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당시 합의했음에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BDA 해제(합법자금 해제)의 시점을 둘러싸고 그 뒤로도 논란이 분분했다. 정부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힐 차관보가 약속한 것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BDA 합법 자금 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 복귀하자마자 해제해준다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외교부 출입 기자들에게 부연하기도 했다.

“풀린 자금, 아직 필요 없어 내버려두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BDA 문제의 당사자는 바로 북한이다. 따라서 북한이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쪽에서 최근 나온 얘기에 의하면 BDA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즉 얼마 전 북한측의 고위 당국자를 만난 국내의 한 대북 사업가는 그 당국자로부터 매우 뜻밖인 얘기를 들었다. “이미 BDA 합법 자금은 물론이고 다른 두 곳의 제재도 풀린 상태이며, 현재 한 군데만 남았다.”

이 얘기를 좀더 풀어보면 국내에서는 BDA 자금 동결이 워낙 초기에 터진 사안이라 대북 금융 제재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여기 말고도 세 군데가 더 있었다고 한다. 그중 싱가포르 은행에 동결된 자금이 액수로는 가장 큰데, BDA가 2천4백만 달러인 데 비해, 이곳은 무려 2억 달러나 묶여 있다. 이 고위 당국자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의 것은 여전히 동결된 상태이지만, BDA와 나머지 두 군데 자금 중 합법 자금은 북한이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도록 이미 풀린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리 당국자의 설명과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북한의 당국자는 그 시점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즉 “라이스 국무장관이 중국을 다녀간 지난 10월20일을 전후한 시점부터이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만 아직 그럴 필요가 없어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전한 대북 사업자는 “당시 미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 중에 BDA 자금을 동결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한 내용이 있었다. 이는 곧 중국이 해제하면 사실상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되짚어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이미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10월13일 미국을 방문해 스티브 해들리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부시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 BDA 합법자금을 해제해준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즉 미국은 이미 이때 BDA 해제에 대한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스가 중국을 방문한 10월20일에는 중국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 복귀와 BDA 자금 해제라는 명시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이 ‘사실상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 아닌가.

그러나 당시의 정황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만한 구석도 없지 않다. 사실 라이스 장관이 마음을 먹었다면 탕자쉬안이 평양에서 들고 온 협상안을 토대로 북한과 6자회담 복귀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부시 행정부가 11월7일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과 6자회담 재개 합의를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이라크 전쟁이나 북한 문제 등에서 민주당의 공세에 밀리고 있기는 했지만, 중간에 정책을 바꿀 경우 공화당 지지표마저 이탈할지 모른다는 걱정때문이었다. 공화당의 책사였던 칼 로브가 ‘분할과 지배’ 전략에 입각해 공화당 지지 세력에 대한 집중 공략 전술에 치중했다는 점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북·미, 싱가포르의 2억 달러 해제 논의할 듯

그러나 당시 공화당으로서도 북한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추가 핵실험에 나서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특별히 중국에 요구한 것도 바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책임지고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정황에서 보면 BDA 자금에 대한 사실상의 동결 해제는 바로 이 추가 핵실험을 막기 위한 사전 조처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당시의 선거 전략상 6자회담 합의는 시기상조여서 어렵지만 북한의 추가 핵실험은 막아야 했기 때문에 BDA 자금 해제라는 당근을 미리 꺼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간선거를 약 1주일 앞둔 지난 10월31일의 힐-김계관 합의 역시 반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칼 로브의 분할 지배 전략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선거전의 호재로 사용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최근 베이징을 거쳐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러시아측에 6자회담이 12월13일~14일께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BDA 문제가 이미 해결되어 버렸다면 다음번 논의사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BDA를 넘어서’  싱가포르의 2억 달러 문제 등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다. 즉 북·미 관계는 이미 BDA라는 표면을 넘어 심층부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라크 및 이란·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정책 변화와 연동해 본질적 해법을 추구하는 단계로 나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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