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의 ‘가장 비열한 거리’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11.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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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디파티드> 감독:마틴 스콜세지 주연:리어나도 디캐프리오·맷 데이먼·잭 니컬슨

 
올리버 스톤의 공간이 전쟁터이고, 우디 앨런에게 뉴욕이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는 언제나 거리에 서 있다. 그는 자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거리에서 배웠으며, 그 거리에는 가톨릭 사제와 잔혹한 갱스터가 공존한다. 그 거리가 굳이, 감독이 태어나고 자랐던 뉴욕 한구석의 ‘리틀 이탈리아’ 거리일 필요는 없다. <디파티드>처럼 보스턴 거리라도 스콜세지에게는 상관없다. 그에게 그 어떤 거리라도, 언제나 비열하니까.

홍콩 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를 감상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먼저 원작과 비교하는 관점에서 보는 것. 혹은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이 쌓아온 ‘영화적 소우주’ 안에서 보는 것. 어떤 방법으로 보아도 <디파티드>는 즐길 만하다. ‘범죄 조직 내 경찰’과 ‘경찰 내 조직원’의 엇갈림을 그린 <디파티드>의 원죄와도 같은 자는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컬슨)이다. “일단 총을 들면, 경찰이나 갱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콜린 설리번(맷 데이먼)을 경찰 내부의 조직원으로 키운다. 한편 빌리 코스티건(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은 악명 높은 범죄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경찰로서 성장하기 힘든 운명의 사나이. 그는 언더커버가 되어 코스텔로 조직의 갱으로 잠입한다.

원작인 <무간도>가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을 일컫는 말이라면 <디파티드>, 번역하면 ‘죽은 자들’(The Departed)의 지옥은 바로 콜린과 빌리의 영혼일 것이다. 여기서 감독은 ‘거리의 숙명론’을 이야기한다. 스콜세지 영화 속에서 캐릭터는 공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열한 거리>(1973)의 양아치들을, <택시 드라이버>(1976)의 편집증적 드라이버를, <좋은 친구들>(1990)의 갱스터 친구들을, <비상근무>(1999)의 야간 구급 요원을, <갱스 오브 뉴욕>(2002)의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살육과 복수와 배신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것은 바로 거리다. 그 거리는 <분노의 주먹>(1980)에서는 사각의 링으로,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에서는 팔레스타인의 광야로, <에비에이터>(2004)에서는 할리우드로 치환되기도 했다.

홍콩 영화 <무간도>의 할리우드판

<디파티드>의 두 남자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두 주인공의 영혼은 그 거리에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할 것만 같다. <디파티드>는 스콜세지의 ‘거리 영화’ 중에서 가장 암울한데, 경찰과 갱이 벌이는 전쟁에 승자는 없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죽은 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인과응보 혹은 권선징악과는(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거리가 멀다. ‘거리의 게임’은 모든 자가 죽어야 끝나는 법이니까.

 
<디파티드>는 결코 ‘새로운 스콜세지 영화’는 아니다. 그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왔던 관객이라면, <디파티드>의 세계는 너무나 낯익다. 그런데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콜세지는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인간이 겪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아노미 현상을 보여준다. 콜린은 갱이 왜 나쁜 것인지 모르는 듯하다. 빌리는 자신이 경찰인지 갱인지 혼동한다. 이때 그들에게 남는 건 이기적인 생존일 뿐이다. 물론 정의와 복수는 살아 있지만, 그것 또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양념일 뿐이다. <디파티드>는 스콜세지의 ‘가장 비열한 거리’다.

애송이인 줄로만 알았던 배우들이 어느새 깊어진 표정과 주름을 선사하는 것 또한 <디파티드>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 스콜세지와 벌써 세 번째 작업하는 디캐프리오의 눈빛은 훨씬 더 강렬해졌으며, 맷 데이먼의 이중인격적인 모습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배우는, 아이들 스타 출신인 마크 월버그. 대사의 90%가 욕설인 딕냄 경사 역의 월버그가 보여준 ‘까칠함’은 <디파티드>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다. 벌써부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얘기가 나돌고 있는 잭 니컬슨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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