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자’의 ‘저주받은 걸작’
  •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
  • 승인 2006.11.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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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비평집 <논쟁과 상처>

 
자신의 소설이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상이나 비평 분야에서 홀대받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언제나 잘 팔리는 책에 인색하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떠들게 하라, 난 내 길을 가겠다.” 질문에 대답한 이는 현재 한국에서 최고로 잘 팔리는 소설가 공지영씨. 대답 속에 등장하는 ‘그들’은 평론가들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문학의 전도사로 알려진 안재성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에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평론가들의 책임을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평론가의 책임이 잘 인정되지 않고 있다. 비판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두루뭉수리하게 ‘평론가들의 책임’이라고 하니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일반 독자의 상황에서는 감이 잘 안 올지도 모fms다. 하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독자들을 탐문한 결과, 그네들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 소설보다 번역 소설이 득세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국 소설은 왜 대개 비슷한 내용뿐인가. 아니, 작품 해설이 어째서 작품보다 더 어려운 말로 쓰여 있는가 등등. 이와 같은 문제들이 몽땅 평론가들의 책임이라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위에서처럼 왜 때마다 평론가들 운운하는지 알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러한 현상의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제 거의 모든 비평적 발언은 그 배후와 이해관계를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라는 <논쟁과 상처>의 한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문학평론가 권성우씨를 알게 되고 그의 저서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을, 개인적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고 있다. 그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야, 해마다 ‘한국 문학은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와, 대관절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부 성찰적인 연찬 없이는 어떤 분야도 발전할 수 없다. 우리 문단의 수상한 흐름에 대해 용기 있게 칼을 빼든 ‘내부 고발자’ 권성우씨에게 박수를. 더불어 왜 ‘한국에선 21세기 문학이 아닌 19, 20세기 문학만이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틀림없이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게 될 <논쟁과 상처>(숙명여대 출판국)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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