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부르는 ‘직업적 탈진’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 www.enh21.org) (www.enh21.org)
  • 승인 2006.11.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과 건강] “정도 심하면 발병 확률 높다” 연구 결과 나와 반복적인 스트레스·현실 불만족이 원인
 
어느날 밤 문득, 내일 아침 출근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위가 더부룩해온다. 다음 날, 책상에 않았으나 일할 맛이 안 나고 능률도 떨어지는 것 같다. 지난주만 해도 안 그랬는데, 왜 이번 주 들어 부쩍 이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이렇게 갑자기 일할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고, 직장에 적응하기 힘든 현상을 ‘직업적 탈진’(Job Burnout)이라고 한다. 육체와 정신을 지탱하는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직업적 탈진은 스트레스보다 더 위험하다. 이 현상이 생기면 무표정해지고, 감정 표현과 대화가 줄어들며, 업무의 능률도 떨어진다.

또 일과 사람으로부터 무조건 멀어지고 싶어진다. 심하면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자기 혐오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병으로 누워 있을래, 아니면 아프지 않고 계속 일할래’ 하고 묻는다면, 차라리 몸이 아픈 쪽을 택할 확률이 높다.

 직업적 탈진의 유발 요인은 다양하다. 특히 장기간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반복해서 겪을 때 나타날 위험이 크다. 일에 대한 결정권이 없거나, 업무량이 너무 많거나, 반대로 너무 적거나, 업무상 만나야 할 사람이 많거나, 직장 내 대화가 부족해도 직업적 탈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고용이 불안정하고, 해고되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은 직업적 탈진을 부추길 수 있다. 원치 않은 직업을 가졌거나, 외형상 그럴듯한 회사에 다니더라도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하면 직업적 탈진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경질적이거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 그리고 기대 수준이 너무 높고,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도 직업적 탈진에 휘말리기 쉽다.

가족·친구·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늘려야

 최근에 직업적 탈진이 당뇨병 발생 위험을 키운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 연구진이 <정신신체의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업적 탈진 정도가 가장 심한 사람들은 가장 낮은 집단의 사람들보다 당뇨병에 84%나 더 많이 걸렸다. 6백77명의 남녀 근로자를 3~5년 동안 추적 조사하고, 기존에 알려진 당뇨병 위험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서 나온 결과이다.

 직업적 탈진 현상이 나타나면 주위 사람에게 이를 알리고, 그들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다. 자칫 잘못하면 직장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무능력하고,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 담당자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상담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원하는 일로 보직을 바꾸어도 좋다.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직장을 옮기겠다는 배수진을 칠 필요가 있다.

 직업적 탈진을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연료도 다 타버리면 불을 붙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임종하는 순간에 내가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가끔씩 일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구, 그리고 대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운동이나 여행, 취미 활동은 소멸하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탈진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심리학자 H. 프로이덴탈은 일 중독자로 불릴 만큼 열심히 일했으나, 직업적 탈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직업적 탈진은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어떻게 예방하느냐에 따라 누구나 피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