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해요 LG 너무해요 LG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11.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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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임직원에게 LG파워콤 가입자 유치 ‘할당’ 협력·하청 업체에도 요구…LG “그룹 차원 개입 없었다”
 
김영희씨는 지난 11월3일 분에 못 이겨 소비자 제보 사이트에 최근에 겪은 어이없는 일을 올렸다. LG그룹 계열사에서 일하는 친동생이 LG파워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 신청서를 김씨에게 가져왔다. 김씨는 “직원마다 세 명씩 가입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하더라. 입사 초기에는 LG텔레콤으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바꾸라고 하고 휴대전화 단말기를 팔라고 시키더니 이제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까지 유치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LG그룹이라는 국내 굴지의 기업 집단이 강제 할당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직원에게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친동생을 설득해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 김씨는 어깨가 축 처진 동생과 다시 만나야 했다. 김씨는 “동생은 ‘다른 직원은 10건씩 가입시키는데 너는 뭐하는 거냐’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냐’ ‘정신머리가 썩어 빠졌다’ ‘가입자를 받아오지 않으면 본인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겠다’면서 협박 아닌 협박까지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씨 동생의 동료 사이에는 ‘자폭’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가입자를 유치하지 못한 직원들이 자기 이름으로 3~4건씩 가입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개인 손해를 감수하고 할당량을 자기가 껴안는 셈이다. 김씨는 “LG그룹이 다단계 회사도 아니고 LG 임직원의 친지는 LG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모두 써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LG화학 최 아무개씨는 지난 7월쯤 발신은 명확치 않으나 수신란에는 임직원 전체의 주소가 든 e메일을 받았다. e메일 요지는 ‘LG파워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15명을 유치하고 가입자당 현금 10만원을 지급한다’였다. e메일을 받자마자 상사가 부서원을 소집해 ‘가입자 유치’를 당부했다. 권씨는 “사업부 실적이 좋지 않은 우리 부서 직원들은 ‘일도 시원치 않은 것들이 이것(가입자 유치)마저 못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열심히 했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권씨 부서는 조기에 할당량의 80%를 달성했다. 권씨는 “전체 임직원에게 할당 권유 e메일이 날아오고 상사까지 나서 독려하는데 웬만한 배짱이 아니거나 직장 그만둘 생각이 없으면 유치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LG 계열사에 다니는 이 아무개씨는 이제 친지 볼 낯이 없다. 휴대전화 서비스 업체 LG텔레콤 가입자 25명을 유치하라고 해서 가까운 친지에게 부탁해 할당량을 채우자마자 이번에는 LG전자 싸이언을 팔라고 해서 그것마저 떠맡겼다. 이제 LG파워콤 가입자 10명을 유치하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친지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했다. 회사 안에서 ‘올해 말에는 휴대전화가 다시 할당되거나 심지어 LCD(액정표시장치) TV까지 팔라고 할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씨는 “팀마다 진척률 그래프를 붙이고 업무 성과보다 파워콤 유치 건수를 챙긴다”라고 말했다.

“업무 성과보다 파워콤 유치 실적 중요시”

LG그룹 임직원들은 자기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불만을 드러내놓고 터뜨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익명성이 보장되는 소비자 사이트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회원만 열람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가입 권유와 함께 한바탕 회사 ‘욕’을 내뱉는 일이 벌어진다. ‘대구 킴스패밀리’라는 다음 인터넷 카페 회원은 ‘드디어 염려하던 LG파워콤 인터넷 가입 강제 할당이 떨어졌다’로 시작되는 가입 권유 게시물을 올렸다. ‘추천 가능한 사람을 선점하라’든지 ‘대구의 인터넷은 해지했다가 다시 가입시켜야 실적에 잡힌다’고 구체적으로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X박스 존’이라는 게임 사이트 회원 한 명은 ‘LG계열 회사에 다니는데 회사에서 파워콤 15명을 하라고 한다. 조건은 현금 10만원 지원이고 3개월 이상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12월까지 갔으면 한다. 12월에 체크한다고 해서’라는 게시물을 올리며 자기 연락처까지 남겨두었다.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당사자가 받았다. LG화학 사원이라고 신분을 밝힌 그는 LG파워콤의 강제 판매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부서장 지시가 내려오고 판매 할당량까지 적시된 e메일을 받았다.” 다음 인터넷 카페 ‘여울 34기’의 회원 한 명은 ‘파워콤(엑스피드) 가입 좀 해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휴대전화에 이어 파워콤에서도 할당이 내려왔다. 쩝. 회사 생활 어렵네’라고 하소연했다.

판매 할당은 단지 LG그룹 계열사 임직원으로 끝나지 않았다. 협력 업체나 하청 업체로까지 강제 판매가 실시되었다는 정황 증거가 나오고 있다. LG텔레콤 직원 황 아무개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가 협력 업체에 보낸 e메일에는 ‘LG텔레콤에서 파워콤 엑스피드 가입자 유치 관련 협조 요청이 들어와 공지한다. 회사 차원에서 어느 정도 유치되어야 LG텔레콤과 협력 관계가 유지되오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라며 차질이 없게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쓰여 있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LG텔레콤과의 협력 관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는 표현이 담긴 것이다. 이 e메일은 부서별 유치 수량까지 적시했고, 가입 양식지와 엑스피드 요금표가 첨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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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안에 나와 있는 발신인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하니 황씨가 받았다. LG텔레콤 직원임을 확인한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메일 내용에 대해 묻자 그는 다짜고짜 ‘사설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을 어떻게 보았느냐’든지 ‘혹시 보지 않고 유도 심문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LG 계열사 한 곳에서 부산·울산·경남·제주 지역 대리점으로 보낸 ‘파워콤 임직원 행사 안내의 건’이라는 제하의 e메일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KT·하나로 등을 파워콤으로 바꾸는 행사에 주위의 친·인척, 친구 등 모두를 참여시켜 LG 가족의 파워를 보여주고 휴가비로 마련하는 이벤트에 대리점 사장님 이사 이하 전임직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한다’고 적혀 있다.

네이버 인터넷 카페 ‘대구지구카페’ 회원 한 명은 ‘우리 회사 고객사인 LG그룹에서 하청업체인 우리에게 파워콤 배당이 할당되었다. 저번에는 LG텔레콤 전화기 할당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인터넷까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LG그룹 계열사마다 다소 차이는 없지만 대체로 사원 할당 판매량을 종합하면, 현장 직원은 3건·사무직 10건, 부장급 10~25건, 이사급이나 협력업체 임원은 30건가량 할당량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원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때는 6월쯤이다. 이 덕분인지 LG파워콤은 지난 8월 신규 가입자 10만명을 유치했다. 9월에도 9만5천명이나 신규 가입했다. 올해 초부터 월 평균 신규 가입자는 7만명 안팎이었다. 더욱이 8월은 방학과 휴가철이 겹쳐 초고속 인터넷 시장의 비수기다. KT나 하나로텔레콤 영업부 임직원은 “LG파워콤이 8월 나 홀로 10만 신규 가입자라는 실적을 거둔 것은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LG그룹 지주회사인 ㈜LG는 그룹 차원에서 개입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LG 임원은 “LG파워콤이 사원 판매와 관련해 지주회사와 상의한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LG그룹 계열사 직원 한 명은 “지난 6월쯤 받은 e메일에는 ‘그룹 회장단이 파워콤의 시장 확대를 위해 임직원의 가입을 지원하도록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e메일에는 ‘임직원 가입자 유치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정책적 지원’이라는 내용까지 나온다고 한다. e메일 내용이 사실이라면, LG그룹은 불법이라는 것을 인지한 채 불법 행위를 저지른 셈이 된다.

‘사원 판매’ 관련 기사 삭제되기 일쑤

이 e메일을 입수한 인터넷 매체는 이를 기사화했으나 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기사를 쓴 해당 기자는 “LG그룹 임직원이 회사를 방문한 직후 삭제되더라. (사원 판매 관련 기사의 삭제가) 우리 매체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일간지에서도 가판에서는 실린 기사가 본판에서 빠지는 일이 잦다”라고 말했다.
LG파워콤은 원래 한국전력 자회사로 전국 케이블망을 갖춘 초고속 도매 사업자였다. LG그룹 계열사인 데이콤이 인수한 직후인 지난해 9월 초고속 인터넷 소매 시장에 진출했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레드 오션’이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1천3백94만명(올 10월 말 기준)을 넘었다.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사업자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LG파워콤은 의욕적으로 영업에 나서면서 KT나 하나로텔레콤 고객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경쟁 업체는 반격에 나섰지만 LG그룹 계열사 지원에 힘입은 LG파워콤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원 판매나 협력 업체를 상대로 한 강제 판매 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와 동법 시행령(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이 금지하는 불법 영업 행위이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룹 차원에서 강제적으로 계열사 임직원에게 판매 할당을 지시했다는 공문 같은 증거 서류를 확보하거나 강제 할당에 반발한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의 불법 행위를 증언하지 않는 한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 경쟁과는 지난 9월 ‘LG파워콤이 사원 강제 판매를 시행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LG파워콤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 차례 현장 조사를 실시했으며 지금은 제출받은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임은규 공정거래위 서울사무소 경쟁과장은 “LG그룹 주요 계열사가 사원 판매를 실시했다는 정황은 파악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LG 계열사 직원인 이 아무개씨는 지난 9월 공정거래위 서울사무소 경쟁과 소속 직원이 회사를 방문한 것을 지켜보았다. 이씨는 “공정위 직원 몇 명이 3일가량 현관에서 자리만 지키다가 가더라. (공정위 직원들이) 한 일이 없다. 조사 나오기 전에 ‘공정위에서 감사 오니 관련 자료를 모두 삭제하라’는 명이 내려진 탓이다”라고 말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해당 업체가 공정위 조사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증거 자료를 폐기한 셈이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이처럼 사업자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갖 불법과 편법이 벌어지는 아수라장으로 바뀌고 있다. LG파워콤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KT나 하나로텔레콤 같은 경쟁 업체도 사원 판매·사용료 과다 할인·경품 과다 제공이라는 불법 영업 행위에 나서고 있다. 단지 불법에 그치지 않고 제 살 깎기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업체를 출혈로 인해 초고속 인터넷 시장은 붉은 빛이 완연한 잔혹한 레드 오션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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