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을 모르는 자들의 경거망동
  • 도종환(시인) ()
  • 승인 2006.12.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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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3.1운동이 일어난 1주일 뒤 이완용은 ‘황당한 유언(流言)에 미혹치 말라’는 글을 써서 매일신보에 실었다. 그는“조선독립운동이라 칭하여 경성 기타에서 행한 운동이라는 것은 사리를 불변하고 국정을 알지 못하는 자의 경거망동”이라고 질타했다. 그래도 만세운동이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황해도지사 신응희는 매일신보1919년 4월24일자에 이런 대민 경고의 글을 발표했다.

“지금에 제국 정부는 소요가 확대하여 양민이 그 도(堵)에 안(安)하지 못함을 우려하고 신속히 이를 진정하여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내지로부터 대부대의 병력을 증파하여 선내 각지에 배치하고…. 폭민에 대하여는 촌호(寸毫)도 가차 없이 단호한 조치를 하게 된지라, 이때에 만일 불온한 언동을 감행하는 자 있으면 곧 영어(囹圄)의 사람이 되며, 심하면 총환(銃丸) 검극(劍戟)에 일명(一命)을 잃을 뿐이어늘…. 그 손실이 이에서 큰 것은 없을지라.”

 도지사가 도민들을 대상으로 행한 이러한 협박조의 경고문을 신문에 게재할 수 있는 자신감은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신뢰를 저변에 깔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세계 5대 강국에 들어간다는 믿음이었다. 삼일만세운동의 지도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논리적으로 비판한 사람 중의 하나가 국민협회장 민원식이었다. 그는 매일신보에 연재한 글에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국제 정세와 일본의 위치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국제 정세는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것이라는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기간에 일본이 함정을 출동시켜 군수품 공급과 선박 제공 등을 통해 원조했기 때문에 국제회의에서 영국·미국·프랑스 등 연합국이 일본의 처지를 옹호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독립이라는 미명(美名)은 아름답지만 당시의 조선 현실이 독립과 관련하여 명실이 상부하지 않는 처지라고 보았다. “금일에 독립을 완수한다면 장래에 민족의 번영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며 냉정하게 현실을 보아줄 것을 요구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면 민원식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철저히 식민지 지배자의 시각이다. 일본의 무력과 경제력에 도움을 받지 않으면 성장과 번영은 없다고 보는 이런 현실 인식은 조선 민중이 겪는 고난의 원인이 식민지 자본주의 수탈 경제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3·1운동 정신도 뜯어고쳐 버릴 것인가

 친일 세력들이 아무리 내선 동화를 믿어도 조선은 식민지 타자에 지나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의 주체는 일본이고 조선인은 주변부, 피지배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선망했던 근대화, 그들이 누렸던 권력도 식민지 주변부 자본주의의 어설프게 반짝이는 외양에 지나지 않았고, 식민지 파시즘의 하위 권력을 얻어 들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식민지 근대화가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수탈이자 폭력이었다. 그게 식민지의 현실이다. “식민지 지배자의 목적은 식민지의 진정한 근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식민지의 영토와 민족을 지배하려는 데 있다”라고 한 바트 무어-길버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어야 한다는 것인가. 생산력이 높이지고 성장이 계속된다면 영원히 식민지 피지배자로 있어도 좋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각은 주체적, 자주적인 역사관이 아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근현대사 대안교과서 시안’의 문제점 중 하나가 자본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들은 식민지 근대화든 군국주의든 제국주의 침략이든 전쟁이든 개발독재든 경제 성장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다 용인한다. 4.19혁명과 5.16군사 쿠데타, 개발 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관계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4.19를 학생운동으로 격하시켜 보게 되고, 5.16을 혁명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교과서에 담아 가르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헌법 전문에 수록된 3.1운동과 4.19혁명의 정신도 뜯어고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3.1운동과 4.19혁명의 정신은 국민이 합의한 이 나라 정신사의 기록이다.‘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국정을 모르는 자들의 경거망동’이 만든 한시적인 문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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