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둘러본 아시안게임
  • 공숙영(퍼슨웹 대표·변호사) ()
  • 승인 2006.12.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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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중국의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세계(世界)>(2004)는 북경의 테마파크 세계 공원 이야기이다. 공원 안에 미국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영국의 런던탑 등 세계의 명소를 복제해 놓아 북경 안에서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고 중화(中華)적이다. 영화 속 ‘동경 이야기’라는 소제목의 에피소드는 공장 노동자가 사고로 죽자 시골의 부모가 올라와 보상금을 받는 내용으로, 제목과 소재를 일본의 명감독 오즈 야즈지로의 영화 <동경 이야기>(1953)로부터 따왔다. 동경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시골의 부모가 올라오지만 바쁜 자식들은 부모를 제대로 대접하기가 어렵고, 부모가 시골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의 부음 소식이 자식들에게 도착한다.

오즈 야스지로 탄생 1백주년 기념 영화 <카페 뤼미에르>(2003)는 대만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비정성시>(1989)로 잘 알려진 대만 영화감독 허우샤우시엔이 만들었다. 주인공 여성 작가는 일본에서 활동했던 대만인 음악가의 자취를 찾아 동경 안을 헤매는데, 대만에 사는 대만인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지만 결혼하거나 같이 살 생각은 없다. 부모는 그녀가 털어놓은 이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고 걱정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녀의 몫이다.

이채롭게도 허우샤우시엔이 주연하고 동료 에드워드 양이 감독한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1985) 속 주인공은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는 전직 야구선수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은 계속 미국으로 오라 하고, 유능한 커리어우먼인 오랜 애인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어느 쪽에도 선뜻 응할 수 없어 망설이던 그는 결국 전혀 뜻하지 않은 길로 간다.

올 여름 서울의 한강에는 괴물이 출몰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는 괴물에게 끌려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삼촌고모까지 한 가족 전체가 분연히 떨쳐 일어선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장렬히 ‘전사’하고, 결국 아이도 죽고, 그 아이 대신 다른 아이가 온다. 한편, 영화 <후회하지 않아>(감독 이송희일) 속 남성들은 몸을 팔아야 살 수 있다.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로서거나 호스트바의 남창으로서. 계급의 차이는 동성애 안에서도 여전하며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서울에서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돼.” 영화 속 서울은 고난과 사랑, 절망과 희망을 번갈아 선사하고 뭐가 더 우세한지 쉽게 말할 수 없다.

<괴물> <후회하지 않아>에 비친 한국의 현재

가장 가깝고도 먼 도시 평양은 어떤가? 재일조선인 2세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에는 가족과 역사와 이념이 모두 들어있다. 아들 셋을 다 북송선에 태워 보냈다가 이산가족이 되고 만 조총련 간부 아버지는 여전히 ‘장군님’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그 때 내가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카메라를 든 딸 앞에서 고백한다. 영화는 북한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지만, 전력난으로 컴컴한 평양의 밤거리 장면에 흐르던 쇼팽의 피아노곡 <혁명>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이 영화들은 시차가 있고 나라와 체제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동아시아의 ‘현대인’들이 현재진행 중인 숨가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우리들이기도 한데, 과거의 유산 속에서도 전세대가 알지 못한 전대미문의 어려움을 겪는다. 다시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역사는 반복과 차이를 함께 선사하므로, 차이를 몸소 겪어야 하는 개인에게 그 차이란 매우 크고 중요하다. 어쨌거나 삶은 늘 현재적이고, 늘 낡고도 새로운 자문자답을 요구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시안 게임 중이다. 북한을 이긴 우리 대한민국 축구는 이라크에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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