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 논쟁’ 서천 갯벌, 제2의 새만금 되나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12.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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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장항국가산업단지 조성 놓고 찬반 대립

 
충남 서천군 마서면 남전리 백사마을. 조개를 씻고 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 앞 갯벌에서 뭐가 나옵니까?” “많이 나오지, 가무락·맛살·게지·물배꼽·게맛·동죽….” 할머니가 씻은 조개를 트럭에 싣던 아들이 말을 끊었다. “갯벌이 썩어서 나는 게 없어요. 이거 다 군산 앞바다에서 사온 거예요.”

마을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조개가 거의 나지 않는다. 바다에 나가는 사람도 할 일 없는 나이든 노인들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아저씨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이 앞 갯벌은 축복받은 땅으로 없는 조개가 없고 양도 많다. 힘이 없는 노인들이 못 벌어도 하루에 3만~4만원 번다”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는 조개가 ‘있다’와 ‘없다’로 편이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지난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마을에 다녀간 후로 이 싸움이 더 치열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충남 서천의 갯마을에서는 어디나 나타나고 있다. 장항읍 장암리 정계홍씨(72)는 “바다를 매립해서 마을이 발전하면 좋지. 그런데 개발이 되기 전에 싸우고만 있으니 걱정이야. 우리 마을은 나은 편이지만 옆 마을은 심각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부터 장항국가산업단지(장항산단)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장항국가산업단지(장항산단)는 1989년 군산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충청권 배려 차원이었다. 선거를 의식한 노태우 정권이 내건 정치적 결정이었다. 어민들에게 피해 보상을 해주고 도로도 닦았다. 그러나 정부는 곧 사업을 유보했다. 사업 전망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정부, 개발 강행 순서 밟기에 들어간 듯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업은 축소되었다. 사실상 구석에 처박아둔 사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탄력을 받아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29일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장항 갯벌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 갯벌을 삽으로 몇 번 파본 노대통령은 서천군민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소열 서천군수는 “대통령이 ‘서천군민이 일방적 정책의 희생물이 되면 안 된다’ ‘인접한 전북 군산과 균형적 발전을 이뤄야 한다’ ‘장항산단 조성이 중단될 때는 명확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추진 여부는 서천군민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방문한 이후 군수와 군의회 의장 등이 단식에 들어갔다. ‘장항산단 착공을 위한 대정부 투쟁 비상대책위’는 마서면 도삼리 금강하구원 사거리에 천막을 치고 군수를 따라 릴레이 단식에 들어갔다. 지난 12월13일에는 봉사단체 한마음회, 14일에는 서천군 새마을부녀회, 15일에는 송림동 어민회가 단식에 참여했다. 충남·북 도지사와 대전 시장이 모여 공동 방침을 발표했고, 충청권 기초단체장들이 결의문을 채택했다. 서천군민들이 서울에 상경해 대규모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개발 강행 순서 밟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 공동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장항산단 개발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마친 뒤 발표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2000년대 이후 국무조정실이 재검토하던 국책 사업들은 하나같이 강행하는 절차를 밟았다. 북한산국립공원 관통도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새만금 간척사업, 한탄강댐 건설사업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서천군 “장항산단 효과, 갯벌 가치의 80배” 주장

환경부도 환경영향평가 결론을 발표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발을 빼기 시작했다. 그동안 환경부는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이치범 환경부장관은 장항 갯벌과 관련해 “해안 생태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생태 보고로서 갯벌이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서남해안 갯벌 파괴는 심각하다”라고 밝혔다.

애초 장항산단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정부 부처의 판단은 회의적이었다.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경제성이 떨어져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장항 인근에 산업단지가 남아돈다. 군산산업단지는 분양률 54%에 입주율은 10% 남짓이다. 장항산단 지구와 규모가 비슷한 충남 당진군 석문산업단지는 방조제만 막은 상태에서 10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공장이 없는 공단은 지자체의 골칫거리다. 대불공단에는 공장보다 유흥가가 밀집해 있다.

서천군은 산단 조성 효과가 갯벌 가치의 80배에 이른다고 말한다. 수산물 생산·오염 정화·여가 등 갯벌의 가치가 연간 3백33억원인 데 비해 산업단지 생산 유발 효과는 2조6천억원에 이른다는 수치까지 내놓았다. 서천군청 담당자는 “중앙정부에서 만든 군산광역권 종합 개발 계획에 근거해 직접적 생산 활동 효과만 따져도 2조6천억원이다. 파급 효과를 고려하면 5조4천억원의 생산 증대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소열 서천군수는 “2015년 완공되는 장항산단의 분양을 지금부터 걱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충남권에는 공단 부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단 강행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어민들은 “산단의 생산 유발 효과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과장됐다. 서천군이 3천억원에 이르는 어업 생산액을 41억원으로 평가했다”라고 말했다. 장항 갯벌을 끼고 연매출 10억원이 넘는 김 공장과 어패류 가공 공장이 많이 있었다. 장항읍 장암리 이장 방훈규씨는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서울에 있는 건설회사에서 다 가져가고 정작 군민 몫은 거의 없다. 2조6천억원을 주민에게 나누어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바다에서 하루에 5만원씩 버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시민·환경단체, 장항산단은 제2의 새만금 주장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충청도 정치인과 서천군청 공무원들은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든다. 충청도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다. 동일한 사업임에도 군산지구는 올해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장항은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 17년째나 표류하는 것은 정부가 충청도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충청권에 대한 노정권의 푸대접이 극에 달하고 있어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라고 주장했다. 이완구 충남도지사는 “최근 서남권 개발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22조4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장항산단 개발이 추진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지역 차별이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장항 갯벌 방문은 나군수와의 청와대 면담 이후 1주일 만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정치적 산물인 장항산단이 다시 정치적 의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나군수는 1998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부총재 특별보좌역과 2001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무보좌역을 역임했다.

 
개발을 주장하는 서천군민들은 중앙 정부를 향해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충남 서천군 주민 3천명은 12월14일 금강하구둑을 트랙터로 막고 장항국가산업단지의 조속한 착공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한 참가 주민은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행정수도 이전에 버금가는 경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는데 행정부에서 안 따라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반면 서천군 어민들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 단체 회원들은 지난 12월12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제2의 새만금, 장항산단 중단’을 주장했다. 집회에 참가했던 한 서천군민은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모든 농촌에서 겪는 문제다. 서천은 3천억원이 넘는 정부 예산으로 길을 닦았으니 그나마 혜택을 본 것이다. 무작정 매립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 장항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대형 환경 분쟁으로 커지고 있다. 장항은 새만금이 가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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