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정복하리라”
  • 최민규 (SPORTS2.0 기자) ()
  • 승인 2006.12.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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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쓰자카, 미국 야구 평정할 힘과 기술 지녀

 
노모 히데오가 ‘토네이도 투구 폼’을 앞세워 미국 서부 지역에서 ‘노모 열풍’을 불러일으키던 1994년, 미국 내 일본 야구 전문가들이 주목한 투수가 있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등번호 18번을 달고 있던 구와타 마스미(38)가 그 주인공이다.

구와타는 절정의 에이스였다. 14승, 방어율 2.52, 탈삼진 1백85개로 센트럴리그 MVP를 따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영원한 라이벌인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세이부 라이언스를 꺾는 기쁨도 누렸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구와타가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라는 루머가 흘러나왔다.

루머는 루머로 그쳤다. 이듬해 구와타는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그 뒤로는 평범한 베테랑 투수로 전락했다. 구와타는 올해 12월20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하고 12년 지각한 끝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아직도 일본 팬들은 ‘구와타가 전성기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한다.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투수가 있다. 지난 12월6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총액 5천2백만 달러(교섭권 획득 비용 5천1백11만 달러 별도)에 6년 계약한 마쓰자카 다이스케(26)이다. 마쓰자카 이전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마쓰자카는 특별하다. 미국 언론은 그를 ‘내셔널 트레저(National Treasure)’라고 부른다. 일본의 국보. 바로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할 때 들었던 칭호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일본 투수로는 노모 히데오(통산 1백23승)와 사사키 가즈히로(통산 1백29세이브)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사사키는 선발보다 격이 떨어지는 마무리 투수였다. 노모는 ‘반 영웅’의 이미지가 강했다. 인기가 떨어지는 퍼시픽리그 출신에, 일본 야구인들이 싫어하는 ‘삼진 아니면 볼넷’ 스타일의 투수였다. 긴테쓰 버팔로스 시절 스즈키 게이시 감독과 불화를 일으켰고, 미국에 진출하는 데도 편법을 썼다. 노모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뒤 LA 다저스에 입단했는데, 이 사건 뒤 일본 프로야구(NPB)는 규약을 바꿨다.

일본인들 “이치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반면 구와타는 명문 요미우리의 18번을 단 투수였다. ‘18번 에이스’는 ‘4번 타자 3루수(나가시마 시게오의 포지션)’와 마찬가지로 일본 프로야구의 상징이다. 구와타 이전에 18번을 단 투수는 호리우치 쓰네오였다. 호리우치는 감독(2004~2005년)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투수로는 요미우리 사상 최고를 다툴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다. 그의 커브볼은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품 구질이었다. 구와타의 위상을 알려주는 대목이 있다. 구와타는 올해 요미우리에서 퇴단한 뒤 공개 테스트를 열었다. 테스트가 열린 야구장에는 개장 이래 최다 관중이 몰려들었다.

‘메이저리그를 이겨라’는 쇼리키 마쓰타로(일본 프로야구의 아버지로 알려진 요미우리 신문 전 사장)의 유언은 여전히 일본 야구의 꿈이다. 구와타는 그것을 실현할 적임자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마쓰자카는 일본 팬들이 구와타에게서 끝내 보지 못했던 ‘메이저리그를 넘어서는 일본 에이스’가 될지 모른다.

메이저리그 정복을 이끌 타자로는 이치로 스즈키(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가 있다. 이치로는 신인왕, MVP, 메이저리그 시즌 최다 안타에 빛나는 대스타다. 아마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최초의 일본 출신 선수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팬들의 성에는 차지 않는다. 너무 일본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세기’가 아닌 ‘힘’으로도 메이저리그를 평정할 수 있는 스타를 원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전까지 일본인들은 이치로보다는 마쓰이를 응원했다. 그가 요미우리 출신이기도 하지만, 다름 아닌 홈런 타자였기 때문이다. 원로 야구인 장훈은 마쓰이에 대해 “그저 그런 선수로 그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이 마쓰이에게 거는 기대는 30홈런, 100타점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마쓰자카는 타자로 치면 이치로의 기술과 마쓰이의 힘을 모두 갖춘 투수다. 시속 1백50km대 강속구, 강력한 슬라이더와 포크볼, 연투 능력. 여기에 신인 시절 약점이던 컨트롤마저 가다듬었다. 데뷔 2년째이던 2000년 마쓰자카는 1백67과 ⅔이닝 동안 볼넷 95개를 내주었다. 그러나 올해는 186과 ⅓이닝 동안 34개에 그쳤다.

마쓰자카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일본 팬들의 기대를 안다. 다른 일본 스타들과는 달리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3월 WBC에 모두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이 그 방증이다.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의 불평에도 연평균 1천만 달러에 못 미치는 계약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보스턴에서 마쓰자카의 등번호는 구와타와 같은 18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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