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화 적정화 방안' 시행하지 말라!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12.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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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립대 이형기 교수 “문제 많다”…“약제비 늘고, 제약사 연구 개발 위축”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시행하려는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약가 대비 약효를 따져 보험 대상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등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강력한 태클’이 들어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 분교의 이형기 교수(약학대학 디렉터, 의약품개발과학센터)가 ‘의약품 정책의 중심은 제품이 아니라 환자’라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2월2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약과건강사회포럼’ 준비 모임에서였다.  
 
곧 시행을 앞두고 있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요지는 간단하다. 날로 늘어나는 (건강보험 총 진료비 중) 약제비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모든 의약품의 약가와 약효를 따져 ‘값싸고 질 좋은 것’만 보험 급여를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건강 보험 약제비는 2001년 4조1천8백4억원에서 20 05년 7조2천2백89억원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인이 약제비 지출을 감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경제적인 가격으로 우수한 의약품을 제공하고 약사에게 관리 의약품 수를 감소시켜 구매 및 재고 부담을 덜어준다고 주장한다. 또 의사들은 비용에 대비해 효과적인 약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어 의약품 선택 부담이 줄어들고, 제약사는 기업 간 품질 경쟁이 촉진되어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그같은 홍보 덕에 약제비 적정화 방안은 일단 반대보다 찬성 의견이 훨씬 더 많은 듯하다.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곳은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국내 제약사는 수많은 영세 제약사가 줄줄이 도산할 위험이 있다며 ‘제도 보완과 유예’를 요청하고 있고, 다국적 제약사들은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떨어지고, 자신들이 판매하는 신약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지난 5월부터 줄기차게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얼핏 보면, 이교수의 문제 제기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그래서 다국적 제약사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지 않으냐는 오해도 산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 국내 제약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단지, 학자로서 있는 자료를 토대로 ‘제도’를 분석했다는 것이다). 포럼에 참가했던 한 교수는 이교수의 발표를 듣다가 불쾌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그 교수는 이교수의 주장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극단적이다”라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그렇지만 포럼에 참가한 또 다른 교수는 “정책 담당자들이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교수의 주장은 그냥 외면하기 어려웠다. 논리도 정연한 데다 입증 자료도 충실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의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태클’에 야유를 보낼지 환호를 보낼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약제비 적정화 방안 운용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수혜자는 건강보험공단”

 그의 주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①약가 통제 정책으로 약제비 지출이 감소한다는 근거(자료)는 없다 ②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환자가 아니라, 건강보험공단(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다 ③약가 통제 정책은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④비용 대비 효과성 평가는 타당한 포괄적 기준이 못 된다 ⑤의약품 정책의 중심은 의약품이 아니라 환자가 되어야 한다.

 이 가운데 ① ② ④번은 그가 처음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조동근 교수(명지대·경제학)가 이미 지난 6월부터 꾸준히 강조해온 내용이다. 조교수는 우리나라의 약제비 비중이 높은 이유가 잘못된 약가 정책(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 탓인지, 또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약제비 문제가 해결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추정만 가능하다. 그는 여러 자료를 근거로 “약제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취약하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보기에 약제비의 감소 여부는 약가 통제 정책이 아니라, 총 진료비에 달려 있다. OECD 국가의 약제비 지출과 1인당 총 진료비 관계를 분석한 결과, 총 진료비가 늘면 늘수록 약제비 비중이 낮아졌다. 의료비 지출이 많은 선진국의 약제비 비중이 낮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형기 교수의 주장은 그와 조금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는 약제비를 줄일 수 없다.” 우선, 이교수는 약가 통제로 약제비 지출이 감소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약가 통제의 효과를 검정한 문헌(논문·보고·요약 등)을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약가를 통제해 가격을 낮추면 오히려 약제비가 더 늘어난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이렇다. 약제비 지출은 ‘약가×소비량’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약가를 통제해 약제비 지출을 줄이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환자가 가격이 인하된 제품만 써야 하고, 다른 하나는 약 소비량이 약가 통제 이전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즉 약품 소비량이 전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국내외 사례를 보면, 환자 또는 환자 가족은 가격이 인하된 약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아무리 비싸더라도 자신의 질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보험 급여가 안 되는 비싼 약일지라도 찾아서 사용한다. 그 바람에 환자의 약제비 지출은 오히려 더 증가하는 양상을 띤다.

 두 번째 전제 조건인 ‘약품 소비량 유지’도 어렵다. 거의 모든 시장 제품이 그렇듯 의약품도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량이 늘어난다. 유럽 국가들에서 이미 그 사실이 확인되었다. 프랑스·스페인·그리스 등은 약가를 강력히 통제해온 나라들인데, 그 덕에 이들 나라의 처방 약가는 독일의 약가를 100으로 했을 때 각각 69~98이었다. 반면 벨기에(122), 덴마크(107), 네덜란드(106), 스위스(160), 영국(110) 등은 독일보다 더 높았다(Ess SM, 2003년).

A약이 B약보다 낫다는 식의 평가 무모해

이 자료에 근거한다면, 약가 통제를 받은 나라의 약제비 지출은 다른 나라들보다 적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런던 대학 므라제크(Mra zek)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1999년 프랑스의 1인당 공공 약제비 지출은 2백83달러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약가를 유지한 덴마크는 97달러, 네덜란드는 1백60달러에 불과했다. 1996년 자료는 더욱 극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저약가 국가인 프랑스·그리스 ·스페인의 1인당 약제비 지출은 각각 6백32달러·3백89달러·3백51달러였는데, 고약가 국가인 네덜란드나 덴마크 등은 각각 1백50달러, 1백56달러였던 것이다. 

 ②번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가장 큰 수혜자는 보험공단과 심평원’이라는 주장도 조교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조교수에 따르면, 심평원 같은 정부 기관이 국민이 먹을 약을 골라주겠다는 것은 ‘임상의사 사이에 사적으로 흩어진 환자 개개인에 대한 현장 지식을 모두 모을 수 있다는 오만 내지 착각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같은 약일지라도 환자 개개인의 몸에서 다르게 효과가 나타나는데, 그것을 정부 기관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것이다.

 이형기 교수는 보험공단이 국민의 의약품 선택권을 빼앗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 보험자가 보험공단뿐이어서 일방적이고 편중된 급여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국민은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험공단과 심평원 등이 영원한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패자일 수밖에 없다. 재정 운용의 효율성과 관료적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번 상실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정해주는 의약품만을 사용해야 하므로 가장 큰 피해자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정부의 ‘면피 작전’에 이용당할지도 모른다. 이형기 교수가 보기에 정부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하려는 목적은 분명하다. 선심용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건강보험 구조가 ‘저비용 고급여’로 바뀌었고, 그 결과 재정이 모자라다 보니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약가를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족분을 잘못된 정책을 바꿔 메우려 하지 않고, 엉뚱하게 약가 통제 정책을 통해 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의약품 선택권이 제한되고, 신약에 대한 접근성도 크게 떨어진다. 신약은 효과가 명확히 나타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통제의 장벽’에 가장 취약하다. 따라서 환자는 신약의 여러 이점을 비교적 값싸게 누리기 어려워진다.  조동근 교수는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약을 누가 선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형기 교수는 “아무리 효과가 뛰어나도 비용이 비싸면 보험 대상에 등재되기 어려울지 모른다”라고 걱정했다.

 제약 기업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약가 통제가 연구 개발에 필요한 이익 축적까지 막기 때문이다. 통제가 심하면 이익이 줄고, 그 결과 연구 개발도 부실해질 수 있다. 연구 개발이 약화된다는 말은 곧 제약사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부가가치 일자리 상실·연구 개발 투자 기회 상실· 특허 출원 기회 상실·고용 창출 기회 상실 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

 이교수가 보기에 약제비 적정화 방안으로 여러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그 제도가 본질적으로 ‘환자 중심’이 아니라 ‘제품 중심’인 탓이다. “약가는 비용과 효과를 따져서 정할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예상하고 검토해야 한다. 이것이 환자 중심적 제도다”라고 그는 말했다. 예컨대 ‘이 약의 치료율은 49%이기 때문에 비용-효과성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A약이 B약보다 낫다’는 식의 평가는 수많은 퍼즐 조각을 고려하지 않고 내리는 결론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태클’이 겨냥하는 것은 하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시행 금지’이다. 그의 주장이 제도의 내용이나 방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인터뷰 기사 참조). 그러나 자료를 토대로 한의학자의 소신을 무조건 비난하고 외면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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