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파 초생달' 중동 하늘에 뜨나
  • 서정민(중앙일보 중동전문기자, 카이로 특파원) ()
  • 승인 2007.01.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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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사형 집행 이후 이라크와 이란, 미국의 행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죽지 않았다.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지난 1월3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알아즈하르 사원에서 열린 반미 집회에서 한 연설자는 강조했다. “이번엔 부시를, 블레어를, 그리고 올메르트를.” 연사의 발언에 군중은 구호를 외쳤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은 미국과 맞서 싸운 중동과 이슬람권의 ‘순교자’로 떠올랐다. 반면 미국·영국·이스라엘의 지도자는 ‘전범’으로 몰리고 있다. 알쿠드스 알아라비 등 범아랍 일간지들도 ‘이제는 전쟁을 일으킨 세력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심판이 필요한 때’라는 내용의 사설을 일제히 게재했다.
후세인의 죽음을 환영한 중동 국가는 단 세 나라뿐이었다. 후세인 정권의 침공으로 8년간 전쟁을 치른 이란, 점령을 당한 쿠웨이트, 아랍권의 맹주가 사라진 것을 기뻐하는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아랍권은 아직 흥분 상태다. 후세인이 지난 12월3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연일 반미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조국과 알라(하나님)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겠다.” 지난해 11월5일 사형선고를 받은 후세인은 이같은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사형 집행일에 그는 사형수에게 씌우는 두건을 거부하고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며 죽음을 맞이했다. 후세인의 이런 모습은 이라크 수니파뿐만 아니라 아랍권을 움직였다. 그의 시신이 매장된 티크리트의 후세인 무덤에는 연일 수천 명이 찾아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나의 희생을 통해 이라크인들이 단결해 미군과 싸울 것을 촉구한다”라는 그의 유언도 즉각 실행에 옮겨졌다. 후세인이 이끌던 바트당 저항위원회는 그가 처형된 당일 이자트 이브리힘 알두리 전 이라크 혁명위원회 부위원장을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했다. 후세인 정권 당시 최고령 원로 정치인으로서 제2인자로 불렸던 알두리는 지난 1월2일 “범수니파 저항 기구를 창설하겠다”라고 답했다. 곧 대대적인 반정부·반미군 공세가 진행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미 3천명 이상의 미군 그리고 많게는 24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이라크 사태는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조차도 1월1일 ‘후세인의 사형 집행은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것과 동시에 이라크의 새로운 불길한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후세인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3년여간 지속된 혼란을 수습하는 ‘전환점’을 모색하려던 누리 알-말리키 총리는 사형 집행으로 곤경에 빠졌다. 후세인 제거로 인해 권력 기반을 굳힐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사태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미 말리키 총리의 사임설이 등장하고 있다. 총리 자신도 1월3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임기 만료 전에 사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형 동영상’ 유포 후 혼란 가중
지난해 초부터 불타오른 종파 간 분쟁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나약한 지도자라는 압박감 속에 이번 후세인 처리 문제는 말리키 총리에게 결정적인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형 집행이 불법적인 것이라는 아랍권과 국제 사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다. 이라크 형법상 사형 집행은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으로 구성된 대통령위원회가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후세인 처형의 경우 말리키 총리의 서명만으로 처리되었다. 월권이자 이라크 헌법을 무시한 조처라는 비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후세인의 마지막 처형 순간을 담은 휴대전화 동영상이 촬영·유포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후세인 교수형 집행 장면이 담긴 이 동영상에는 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후세인을 조롱하는 처형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형 집행인이 반후세인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폭군에게 알라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사형 집행을 촬영해 공개하는 것 자체가 국제법 위반 사항인데, 사형수를 모멸하는 언행까지 담겨 있어 더 충격적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12월4일 “미군과 이라크 정부 관리들이 엄중하게 감시하는 형장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이라크 정부 관리들이 방관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주권정부는 관련자를 체포하고 휴대전화 반입 경위와 후세인 조롱의 배경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협상을 통해 시아파와 화해를 추구했던 중도 수니파 단체들마저 강력한 비난과 함께 이라크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또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성지 순례 기간 중의 희생제)에 이루어진 사형 집행  시점에 대해서도 아랍 및 이슬람권의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서방 범아랍 알아라비야 방송조차 1월4일 ‘복수심에 눈이 먼 일부 시아파의 행동이 후세인을 범죄자에서 순교자로 만들었다’고 보도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말리키 총리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방송은 분석했다.
이슬람 최대 명절에 후세인이 처형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휴대전화 동영상까지 유포되어 ‘후세인 후유증’이 증폭되자 미국은 “후세인 처리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발을 빼고 있다. 대신 “처형을 15일 늦출 것을 말리키 총리에게 요구했었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후세인 처형 뒤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충돌의 책임을 은근히 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
그러나 후세인 재판과 처형 과정에 미국이 개입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죄 입증 과정에서는 미국의 변호사와 보좌진 그리고 조사관 수백 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미국 보스턴 글로브가 지적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 판사 훈련, 증거 수집 등 업무에 1억3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도 밝혀졌다. 처형 장소도 미군과 협의해 결정되었고 처형장  경계도 미군과 이라크군이 공동으로 담당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잠을 자고 있었지만 후세인 처형 시간에 대해 정확히 보고를 받은 이후였다.
이라크 주권정부도 그렇지만 미국의 조급증도 이번 후폭풍의 원인이 되었다. 알자지라 방송은 “군사 법정이 아닌 이상 일반인도 사형 확정 후 나흘 만에 교수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없다”라며 “미국이 지나치게 서둘렀다”라고 평했다. 이라크 사태로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부시 행정부는 패배의 원인인 이라크 정책의 수정이 필요했고, 후세인 사형을 그 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제거라는 전리품을 챙기면서 2007년부터는 새로운 이라크 카드를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금명간 발표될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이라크 전략은 이라크에 수만 명의 병력을 증파해 수니파 저항 세력을 완전 소탕하고 올해 말까지 치안권을 이라크에 이양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후 이라크에서 본격적인 철수 작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수니파가 저항을 위해 더 강력히 결집하고 있고 아랍권도 크게 반발하고 있어 부시의 새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해 초부터 불타오른 종파 간 분쟁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나약한 지도자라는 압박감 속에 이번 후세인 처리 문제는 말리키 총리에게 결정적인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형 집행이 불법적인 것이라는 아랍권과 국제 사회의 반발이 거세지면서다. 이라크 형법상 사형 집행은 대통령과 2명의 부통령으로 구성된 대통령위원회가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후세인 처형의 경우 말리키 총리의 서명만으로 처리되었다. 월권이자 이라크 헌법을 무시한 조처라는 비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여기에 후세인의 마지막 처형 순간을 담은 휴대전화 동영상이 촬영·유포되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후세인 교수형 집행 장면이 담긴 이 동영상에는 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 후세인을 조롱하는 처형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형 집행인이 반후세인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폭군에게 알라의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사형 집행을 촬영해 공개하는 것 자체가 국제법 위반 사항인데, 사형수를 모멸하는 언행까지 담겨 있어 더 충격적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12월4일 “미군과 이라크 정부 관리들이 엄중하게 감시하는 형장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은 이라크 정부 관리들이 방관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주권정부는 관련자를 체포하고 휴대전화 반입 경위와 후세인 조롱의 배경에 대해 조사 중이지만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협상을 통해 시아파와 화해를 추구했던 중도 수니파 단체들마저 강력한 비난과 함께 이라크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또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성지 순례 기간 중의 희생제)에 이루어진 사형 집행  시점에 대해서도 아랍 및 이슬람권의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서방 범아랍 알아라비야 방송조차 1월4일 ‘복수심에 눈이 먼 일부 시아파의 행동이 후세인을 범죄자에서 순교자로 만들었다’고 보도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말리키 총리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방송은 분석했다.이슬람 최대 명절에 후세인이 처형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휴대전화 동영상까지 유포되어 ‘후세인 후유증’이 증폭되자 미국은 “후세인 처리 문제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발을 빼고 있다. 대신 “처형을 15일 늦출 것을 말리키 총리에게 요구했었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후세인 처형 뒤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충돌의 책임을 은근히 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그러나 후세인 재판과 처형 과정에 미국이 개입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죄 입증 과정에서는 미국의 변호사와 보좌진 그리고 조사관 수백 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미국 보스턴 글로브가 지적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 판사 훈련, 증거 수집 등 업무에 1억3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 것도 밝혀졌다. 처형 장소도 미군과 협의해 결정되었고 처형장  경계도 미군과 이라크군이 공동으로 담당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잠을 자고 있었지만 후세인 처형 시간에 대해 정확히 보고를 받은 이후였다.이라크 주권정부도 그렇지만 미국의 조급증도 이번 후폭풍의 원인이 되었다. 알자지라 방송은 “군사 법정이 아닌 이상 일반인도 사형 확정 후 나흘 만에 교수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없다”라며 “미국이 지나치게 서둘렀다”라고 평했다. 이라크 사태로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부시 행정부는 패배의 원인인 이라크 정책의 수정이 필요했고, 후세인 사형을 그 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 제거라는 전리품을 챙기면서 2007년부터는 새로운 이라크 카드를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다. 금명간 발표될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이라크 전략은 이라크에 수만 명의 병력을 증파해 수니파 저항 세력을 완전 소탕하고 올해 말까지 치안권을 이라크에 이양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후 이라크에서 본격적인 철수 작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수니파가 저항을 위해 더 강력히 결집하고 있고 아랍권도 크게 반발하고 있어 부시의 새 전략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미국, ‘후세인 처리’ 왜 서둘렀나


미국이 후세인 처리를 서두르게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후세인의 쿠르드족 학살 재판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란 침공 죄목에 대한 재판도 예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이를 막아야 했다. 미국이 개입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이란 정권이 붕괴한 1979년 권좌에 오른 후세인은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 12월31일 ‘후세인은 미국이 키운 괴물’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 초기부터 그를 지원했다. 이란군의 이동 정보는 물론 무기까지 이라크에 제공했다.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후세인과 만나 군사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당시 지원된 화학무기는 이란뿐만 아니라 쿠르드족 주민들에게도 사용되었다. 군비를 더 늘린 이라크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기까지 했다.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후세인 처형 다음날 “1991년 걸프전쟁 직전까지 미국 군수 지원의 전말을 알고 있는 후세인이 영면함으로써 이 은밀한 거래가 세간에 알려질까 초조해했던 워싱턴 인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인도적 독재자 후세인의 심판은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다. 이라크로서는 수니파 독재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미국은 패권국가로서 한 나라의 독재와 반인권적 행위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국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에 대해 무한정 조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량살상무기 등 이라크 전쟁 초기의 명분을 상실한 미국은 ‘독재자 제거와 민주주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명분을 제시했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앞으로 중동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대중동 민주화 구상’뿐이다. “저항하거나 밉보이면 비참한 말로를 각오하라”는 식으로 아랍권의 민주화 개혁을 압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후세인 처형을 지켜본 아랍권 집권자들 사이에서도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친미가 최선’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친미 집권 세력 벨트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과 친미 아랍 정권들 사이에는 허점이 있다. 아랍 정권과 기득권층은 미국과의 우호 관계 유지를 원하고 있지만 대중은 그렇지 않다. 미국의 ‘이중 잣대’가 너무 명확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걸프 산유국의 절대왕정 혹은 입헌군주제는 세습제로 유지되고 있다. 부분적인 총선 등 정치 개혁이 점차 확산되고는 있지만 민주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중동 최대 정치 대국으로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이집트의 경우도 현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6년째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의 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는 미국은 그의 권력 유지를 도와주고 있다. 그가 차남인 가말에게 대권을 물려주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지만 미국은 방관하고 있다. 최근 친미·친서방으로 돌아선 무하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도 그렇다. 1969년 무혈 쿠데타에 성공한 카다피의 집권은 38년차로 들어섰지만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은 채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있고, 결국 아들에게 권력을 넘길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이중 잣대와 대중의 불만을 배경으로 최근 급부상하는 나라는 이란이다. 이란 최대의 적 후세인 정권을 몰락시키고 처형까지 미국과 이라크 과도정부가 담당해주니 이란으로서는 ‘어부지리’다. “후세인 처형으로 이란이 가장 큰 덕을 볼 것이다.” 범아랍 알아라비야 방송이 지난해 12월 31일 마련한 ‘포스트 후세인’이라는 좌담 토론에서 나온 결론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대통령의 사형 집행은 시아파와 그 종주국 이란의 ‘상징적인 승리’라는 분석이다. 핵 개발로 서방은 물론 중동권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이란의 영향력 확대가 2007년 중동의 화두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이란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2월30일 후세인이 처형된 지 세 시간 후인 오전 9시. 이란의 다우드 자파리 경제·재정부 장관은 이란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대상은 이라크였다. 이라크 재건을 위해 1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란과 이라크는 정치적으로도 급속히 결속을 다지고 있다. 이라크 주권정부 지도자들 상당수가 친이란파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속한 다와당은 이라크 내에서 가장 오래된 시아파 정당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라크 제2인자인 압둘 아지즈 하킴의 이라크 최고이슬람혁명회의는 이란으로부터 무기 및 경제적 지원을 받아온 과격 단체였다.

 
   

이란-이라크-시리아 삼각 벨트 형성 가능성


이란-이라크를 넘어 전세계 모슬렘 인구의 15%인 시아파도 뭉치고 있다. 요르단의 압달라 국왕이 2004년 12월 경고한 ‘시아파 초생달’ 시나리오가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동권 내 중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이란-이라크-시리아의 ‘동맹 결성’이었다. 이란을 중심으로 3국이 번갈아 정상회담을 갖고 ‘포스트 후세인’ 중동 패권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로운 시아파 정권이 탄생한 이라크,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 출신 아사드 가문이 통치하는 시리아, 시아파 최대 국가 이란이 전략적인 제휴에 나선 것이다.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중동의 최대 군사 대국 이란에 이라크와 시리아를 보태면 다른 수니파 아랍권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단지 3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란의 지원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지난해 여름 한 달여간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을 견뎌낸 레바논 헤즈볼라의 배후에도 이란이 있었다. 미사일 등 무기 지원은 물론 강력한 정치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 인구 75%가 시아파지만 수니파의 지배에 살아온 바레인에서도 지난 12월 첫 시아파 부총리가 탄생했다. 이란으로부터 물심양면 지원을 받은 시아 정파 전국이슬람화합연합(INAA)이 지난해 11월 말 총선에서 하원 40석 중 17석을 차지해 최대 의석을 보유한 정파로 부상하면서다.
후세인 처형과 이란의 득세는 우리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다. 세계 10위권 내 매장량을 가진 이란과 이라크가 경제 공동체로 나서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란은 서방이 지나치게 압박할 경우 ‘석유의 무기화’를 경고하고 있다. 한국은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이란과 서방 간 갈등을 우려해 2006년 이란산 석유 수입을 줄였다. 반면 중국은 한국과 일본의 감소분을 흡수하면서 가스전 등에 대규모 사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북한 핵 사태도 이란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다.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이란에 대한 서방의 핵 포기 압력이 점차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시아파의 패권 국가 그리고 중동의 최대 강자로 나서고 있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제재도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란 공격은 시아파에 대한 도발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장 직접적인 사안은 이라크 북부에 주둔  중인 자이툰 부대의 안전과 철수 문제다. 후세인 제거 이후 이라크 내 종파간 갈등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쿠르드 지역과 접한 중북부의 수니파 저항 세력이 쿠르드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이다. 이라크 사태가 미국의 계획대로 안정되지 못하고 종파 간 충돌이 거세질 경우 미국은 주력군을 북부 쿠르드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다. 자이툰 부대의 철수도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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