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끓는 영종도 '돈 화산'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1.1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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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토지 보상금만 4조5천억원 가까이 풀려...인근 지역 땅값도 들썩

영종도·이재명 편집위원

 
기온이 영하 6도로 내려간 지난 1월7일 낮 영종도 삼목선착장. 바닷바람에 입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위가 매웠다. 선착장 안에 들어서자 매점의 주인 아주머니가 대뜸 물었다. “땅 사러 가세요?”
“땅 사러 가는 사람이 많아요?” “많죠. 지난해 12월부터 부쩍 늘었어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서울이나 인천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영종도 사람들도 땅을 사러 끊임없이 와요.”
일요일인데도 배를 타는 사람들 가운데는 외제 혹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삼목선착장에서는 승선권을 팔지 않는다. 그냥 배를 타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왕복 운임을 내게 되는데 요금은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신도가 3천원(승용차는 2만원), 장봉도가 4천6백원(승용차 3만원)이다. 운항 시간도 신도까지 10분, 장봉도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소요 시간으로 보나 운임으로 보나 적지 않은 부담인데도 그곳에까지 가서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섬의 토지를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한미공인중개사 차병수 대표는 “보상금을 받은 영종도 주민들이 대토를 구하는 경우와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려는 서울·인천 등 외지인 수요가 각각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영종도에서 가까운 신도의 경우 전답이 평당 50만~65만원에 거래된다. 지난해 12월 이후 불과 한 달 사이에 20~30% 오른 값이다. 장봉도도 관리 지역은 40만~50만원, 절대농지는 20~30만원으로 뛰었다. 한 부동산 중개사는 “1년 전에 비하면 2배 이상 오른 값이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도 늘어나 현재 신도에 13개, 장봉도에 3개가 성업 중이다. 화산의 폭발이 일으킨 용암 분출 현상처럼 영종도 토지 보상에 따른 돈 때문에 주변 섬들의 부동산값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영종도 동쪽, 행정구역으로 말하면 인천직할시 중구 운서·운남·중산동 일대 땅 5백70만 평에 대한 1차 땅값 보상금은 모두 4조3천억~4조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판교 보상금 3조3천억원을 능가하는 엄청난 규모다.
인천시와 한국토지공사는 이 땅에 9조8천억원을 들여 인천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업무 지원 단지와 공항 종사자 주거 지역 및 상업 지역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번에 보상금을 받는 사람은 모두 5천4백20명. 이 중 10억원 이상을 받는 사람만도 7백12명에 이른다.
 제5공화국 시절 이 일대를 매립해 땅을 취득한 한진중공업과 대한항공은 각각 1천억원 이상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3백10억원의 보상금을 받은 한 염전 주인은 50억원을 들여 아들에게 주유소를 사주고 1백26억원으로 영종도 인근 섬의 땅을 샀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 엄청난 규모의 돈이 일시에 지급된 것은 아니다.  전체 보상 대상자 중 29%를 차지하는 영종도 주민의 경우 현금 40%, 채권 60%로 나누어 은행 또는 증권 계좌로 입금되었다. 하지만 채권은 증권사 창구를 통해 바로 환금이 가능하므로 사실상 일시에 받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인근 증권사들에 따르면 채권을 현금화한 사람은 절반 정도이고, 채권을 그대로 맡겨놓고 있는 사람도 절반 정도라고 한다.

 

전체 보상 대상자 중 외지인 71%


전체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외지인 지주들의 경우는 일단 1억원만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금액은 3월이 되어야 채권으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1월10일 현재 풀려나간 보상금은 전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3천억원 정도여서 소문만큼 ‘돈 화산 폭발’이 시끄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토지공사는 지난 12월15일부터 보상금 신청을 받아 소유권 이전이 이루어지는 지주들에게 현금과 채권을 계좌로 입금해주고 있다. 보상금이 적은 주민들은 대토를 사는 데 그치고 액수가 큰 주민들은 상가를 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아직 계좌에 돈과 채권을 넣어놓은 채 관망중이다. 원주민들 가운데 발 빠른 사람들이 그 이전부터 ‘보상금 수령 후 결제’를 조건으로 대토를 사들이면서 인근 섬의 땅값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종도 안에서는 연결 도로가 없는 맹지의 논이 평당 80만원을 호가하지만 매물이 없어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보상금이 적은 주민들은 주로 강화도에 몰리고 있다.
 토지거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강화도는 절대농지가 평당 10만~20만원으로 다른 섬들에 비해 싼 편인 데다가 영종도 주민들의 대토 구입은 간단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싸고 좋은 땅을 구하기 위해 안면도 등 충청도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파트 분양에 몰리면서 집값도 폭등했다. GS건설이 중산동에 짓고 있는 영종자이아파트는 34~97평형 1천22세대가 분양되고 현재 땅파기가 시작된 단계인데도 4천만~6천만원씩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운서동 신도시 내의 금호아파트 32평은 2억8천만~3억원으로 평당 1천만원 가까이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영종도에서는 ‘땅 가진 사람이 모두 부자’라는 말이 실감난다. 보상금이 책정되면서 보상 대상이 아닌 주민들과 인근 섬 주민들의 자산까지 모두 불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종도 안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이면 위치가 나빠도 평당 2백50만~3백만원을 호가한다. 영종도에서의 이런 변화를 업고 재미를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보상사무소 건너편 해장국집 주인은 “지난해 12월 보상사무소가 신청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손님들이 몰려 정신없이 바빴다”라고 했다. 고급·외제 승용차도 크게 늘었다. 월미도와 영종도를 운항하는 보성해운의 김인덕 주임(51)은 “에쿠스·체어맨 같은 고급 차종과 외제 승용차가 많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증권 회사들, 보상채권 유치 경쟁 치열


 
보성해운은 영종도 주민들에게는 운임 6천5백원을 4천원으로 할인해주는 차량용 스티커를 발부해주고 있는데 지난해 말 이후 새 차 구입으로 인한 교체 신청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산동에서 미소철물건재와 미소건설을 운영하는 김영환 사장(50)은 “올해가 나로서는 가장 기쁜 해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토지정리구역에서 제외된 주민들이 도로 확장 등에 맞춰 신·개축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사장은 “최근 몇 년간 건축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 장사가 잘 됐다. 올해는 지역개발 붐이 일 것으로 예상되어 건설회사까지 차렸다”라고 즐거워했다. 김사장의 부인은 “당장 손에 쥐어진 것은 아니지만 땅값까지 올라서 기쁘다”라고 했다.
보상금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했는데 지금은 거의 장사가 끝난 상태다. 토지개발공사 보상사무소가 입주해 있는 운서동 화평빌딩에는 모두 7개사의 증권사 지점이 입주해 보상채권 유치 경쟁을 벌였었다. 하지만 1월10일 현재 신한·현대·우리·미래에셋증권이 철수하고 농협과 삼성, 동양만 1~2명의 직원을 남겨놓고 있다.  
배가 운항되고 있는 월미도 일대 상인들도 영종도 돈바람이 훈풍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월미도 발전추진협의회 원성기 회장(69)은 월미도 지주 공동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영종도 토지보상금이 밀려들어 월미도 경기를 되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아직 보상에 따른 특수 경기를 실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토지공사 보상사무소와 같은 빌딩에서 영업하고 있는 ‘바다이야기’ 게임장 주인은 “와보지도 않은 일부 기자들이 ‘보상금 타서 도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경찰의 단속까지 받았다. 보상금 탄 사람들이 오는 경우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둘러본 게임장에는 게임기가 65대이고, 단골인 듯 보이는 손님 12명뿐이었다.
영종신도시에 지난해 말 문을 연 롯데마트의 정재걸 매니저도 “보상금이 풀리면 대형 가전제품이 잘 팔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의외로 판매가 저조하다. 보상받은 분들 대부분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후에 구입을 검토하려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보상금에 따른 특별한 사건·사고는 아직까지는 없는 상황이다. 영종지구대의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는 보상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보상사무소 건물에 몰려가 시위를 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 보상과 관련한 사건·사고는 아직까지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보상금을 노린 사기 사건 이 발생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감정평가 인정 못한다” 주민 반발도 거세


인천공항지구대의 경찰 관계자는 최근 지역 주간지인 <인천공항영종뉴스>를 통해 “지난해 12월 인천공항 신도시, 인천시 중구 등에서 전화 금융사기가 발생했다. 영종 지역이 언론을 통해 수조원대의 토지 보상금이 풀린다는 소식이 전해진 터라 이를 노린 신종 전화 금융사기가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라고 당부했다. 
또 1월 말부터 시작되는 지장물(건축물이나 수목 등) 실사를 둘러싸고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도 예상된다. 지주와 지장물 소유자가 다른 경우도 많은 데다가 보상금을 노리고 급조한 지장물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장물 보상과 관련해 지주와 임차인, 보상 관계자 간에 분쟁이 잦을 것이다”라고 염려했다.
한편 보상에 반발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아직도 시끄럽다. 영종도 곳곳에는 ‘영종 570만평 토지수용반대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토지주 주민 추천 없는 감정평가 인정할 수 없다” “선보상 수령하는 순간 여러분은 망한 것이다” “농민·서민 죽이는 인천시장·토지공사 박살내자” “정책 사기꾼 인천시장 탄핵하자”라는 등의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영종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원회 회원 5백여 명은 지난해 토공의 토지 수용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영종지구 ‘소지주 모임’은 “40% 보상금 타고 소유권 이전해주면 우리는 어디 가서 무엇으로 살란 말이냐? 3, 4월에 감정 평가를 받으면 더 받을 수 있다”라며 ‘뭉치자! 절대 보상금을 수령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의 벽보를 붙여놓고 있다.
중산동에 사는 김인택씨(61)는 “대한민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가족 간의 다툼을 피하기 위해 보상 신청을 하긴 했지만 다른 땅을 구하려고 해도 값이 치솟아 사기 힘들고 그동안 해온 고기잡이 일도 생활터전이 없어져 하지 못하게 됐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웃 김 아무개씨(66) 역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잃게 된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2천 평의 땅을 내놓고 받게 되는 보상금은 20억원 정도. 액수로 보면 큰돈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 딸의 의견이 엇갈려 싸움이 잦아지고 이웃 주민들과도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 농지를 사려고 해도 영종도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영종도 안에서는 대토를 구하려고 해도 땅이 없는 상황이다. “농토가 없는데 무얼 하겠습니까? 인천국제공항 주변에서 일하는 잡역부나 일용직밖에 없고 그나마 나이가 많아 써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영종도의 봄은 더욱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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