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넘어 장벽 '새터' 못 찾는 새터민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1.3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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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입국자를 지칭하는 새터민이 1만명에 이르렀다. 최근에도 입국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남한 정착은 여전히 고단하기만 하다.

 
'새터민’ 1만명. 새터민이란 흔히 말하는 ‘탈북자’, 법적 용어인 ‘북한 이탈 주민’ 가운데 대한민국에 들어와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새로운 터에 자리 잡게 된 사람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 새터민이 머지않아 1만명을 넘어선다. 통일부에 따르면 1953년 휴전 이후 북한 주민으로서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새터민은 지난해 말까지 9천7백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귀순자·망명자 등 북한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포함된다(일부에서는 하나원 등에서 조사나 교육을 받고 있는 이들을 기준으로 하여 1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하기도 했다).
연간 새터민 입국자 수는 지난 1999년 1백48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급증해 지난 2004년에는 1천8백94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5년 1천3백83명으로 줄어들었다가 2006년에 다시 크게 늘어 2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숫자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 것은 실제 북한 주민이 맞는지, 북한을 탈출해 자유의 품에 안기려는 의사가 진실인지 등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인원이 항상 수백 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수치는 2006년 말 현재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9천2백65명과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등에서 조사나 교육을 받고 있는 4백여 명이다. 


100만원 안팎 수입이 다수


정부 당국의 한 관계자는 “2006년에는 2004년보다 많은 탈북자가 입국해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곧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머무르고 있는 탈북자가 10여 만명에 이르고 이미 외교 공관 등의 도움을 받아 입국을 기다리고 있는 탈북자도 수백 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단 구체적 분석이 가능한 2005년 말까지의 새터민 7천6백여 명을 성별로 나누면 남자 3천4백여 명, 여자 4천2백여 명이다. 2000년까지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2001년에는 비슷해지는가 싶더니 2002년부터는 여자가 앞지르기 시작해 2003년 이후 여자가 남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로 늘어났다.  
북한 이탈 주민이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경찰 등 관계 기관에서 합동 신문을 벌인다. 그리고 사회 적응 교육 시설인 하나원에 들여보내 3개월간의 적응 교육을 시킨다. 이 절차가 끝나게 되면 가족 수에 따라 정해진 정착 지원금·정착 장려금과 주민등록증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의 보호와 통제는 사실상 종료된다.

 
문제는 이후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과 후속 조처를 실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앞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한국인으로서의 모든 자유와 법적 대우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정착에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더 많다. 정착 자금을 받아 집을 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임대 아파트에서부터 거주하기 시작한다. 서울 양천구·강서구·노원구 등 임대료가 싼 지역이다.
취업 현황은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서의 무상 혜택을 받기 위해 취업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세대의 경우 올해에는 매달 37만2천원이 책정되어 있다. 이 돈을 받기 위해 가급적 정식 취업보다는 아르바이트를 선호한다고 한다. 하루 4시간 정도 일해 50만~70만원을 받고 기초생활 보장비를 받으면 100만원 넘는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게다가 의료보호 1종 수급권자로서 의료 혜택도 받게 되므로 취업 자체를 숨긴다는 것이다.


실업률·이직률 모두 높아


특히 정착에 성공한 사람들은 당국이나 탈북자 단체 사람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린다. “나 혼자 힘으로 잘 살아가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관계 당국과 단체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입국 시점에서의 연령은 10대 13.3%, 20대 30.3%, 30대 35.2%, 40대 11.6% 등으로 20대와 30대가 3분의 2를 차지했다. 새터민의 90% 이상이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이다.
하지만 취업률 조사 결과는 의외로 높은 실업률과 높은 이직률을 나타내고 있다.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2005년 70.3%, 2006년 72.0%로 파악되고 있다. 나이가 많거나 아주 어린 비경제 활동 인구를 제외한 수치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나라 전체의 일반 실업률이 2% 남짓인 것을 비교하면 이들의 실업률은 꽤 높은 셈이다. 이직률 역시 85% 수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아르바이트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어딘가에서 많든 적든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 내에서 별다른 재산 없이 놀고 먹기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통계를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2006년을 기준으로 자영업 종사자는 5.7%에 불과했다. 일용직 41.1%, 비정규직 27.4%로 전체 취업자의 68.5%가 앞에서 말한 대로 분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규직은 14.0%, 자영업은 5.7%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한 관계자는 “일용직과 비정규직이 많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단순 노무, 서비스, 판매직의 비중이 64% 정도로 높다”라고 말했다. 이는 고용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일용직과 비정규직은 아무리 오래 근무하더라도 보수가 늘지 않고 혜택도 없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에서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 무소득층으로 몰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술을 배우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월 보수는 50만~100만원 미만이 39.4%, 100만~1백50만원 미만이 38.7%로 전체의 78.1%가 100만원 안팎이다. 1백50만~2백만원 미만은 11.6%, 2백만원 이상은 7.5%이다. 50만원 미만은 2.8%에 불과해 실제 대부분의 새터민은 기초생활 보장비를 포함해 1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소득이 적기 때문에 저축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체 조사 대상자의 82.9%가 저축액이 50만원 미만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득이 적은 탓도 있지만 북한에서는 저축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고 저축하는 습관도 없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자기 소유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은 4.5%이고 나머지는 임대주택(79.6%), 전세(4.8%), 월세(3.5%) 등이다.


일부는 중국 오가며 돈벌이


 
새터민의 정착과 관련해 나타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의 새터민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해 새터민 2백8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취업 능력 부족(35.8%) △대인 관계 능력 부족(19.7%) △고향과 가족에 대한 걱정(15.8%) △경제적 어려움(14.3%) △남한 주민의 무시나 편견(10.0%) 등을 호소했다. 
새터민 보호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새터민 중 상당수는 여권을 발급받아 중국 등지를 오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 남겨놓은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또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생활했던 중국에서의 사업이나 돈벌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탈북 지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주는 정착금과 일해서 버는 소득을 합치면 중국 등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 과정에서 ‘탈북자 납치 조직’ 등에 의한 피랍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으나 예방책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또 새터민의 수가 늘어나면서 정치 세력화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탈북자 단체인 북한민주화동맹(위원장 황장엽)은 탈북자 1천여 명이 참여하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로 하고 지난해 말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새터민 돕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엄영수씨는 “새터민은 30~40년간 사회·문화 체제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다.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는 곱지 않은 시선 대신 한민족이고 같은 동포라는 뜨거운 감동으로 품어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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