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에는 '코드'가 숨어 있다
  • 조철(출판 기획자) ()
  • 승인 2007.01.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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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코드>/삶과 비즈니스를 새롭게 보는 시각 제시

조철 (출판 기획자)

 
지난 1월 23일 통계청이 최근 3년 동안 나온 국내 주요 사회 및 인구 통계를 분석해 ‘한국의 블루슈머 6’을 선정해 발표했다. 블루슈머란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의미하는 블루오션(Blue Oce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블루오션의 새로운 소비자를 뜻한다. 올해 떠오른 6개 블루슈머는 이동족(Moving Life), 무서워하는 여성(Scared Women), 20대 아침 사양족(Hungry Morning), 피곤한 직장인(Weary Worker), 3050 일하는 엄마(Working Mom), 살찐 한국인(Heavy Korean)이다.
통계청은 새로운 소비자와 시장을 찾기 위해 소비자들 생활의 미세한 변화까지 읽었고, 국가 통계를 활용해 ‘블루슈머 6’으로 구체화했다. 틈새시장을 찾아 헤매던 사업가라면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통계청의 발표에 깔린 독특한 분석이 새롭게 보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 시장과 대다수 소비자의 변하지 않는 어떤 속성을 분석해 새로운 마케팅 기회를 제시하는 이론들은 많고, 이미 많은 기업이 마케팅 기획에 타깃 고객의 심리와 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통계청의 발표를 두 손 들고 반기지는 않을 듯하다.
출판가에도 연일 쏟아지는 경제와 경영 서적뿐 아니라 비즈니스 카테고리 속에서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고 시장을 새롭게 분석하는 마케팅 관련서가 풍성하다. 최근 나온 <컬처 코드(The Culture Code)>도 ‘세상의 모든 인간과 비즈니스를 여는 열쇠’라는 부제를 달고 문화의 속성을 파악해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짜는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무의식’ 분석해 문화 재발견


 
 
이 책도 통계청의 발표처럼 뭔가 획기적인 내용인 것처럼 선언하고 있지만 얼핏 보아서는 기업의 기획회의에 바로 가져갈 보고서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제목에서 암시하듯 문화에 숨겨진 ‘코드’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통계 수치에 근거해 새로운 전략을 짜라고 하거나 구호만 늘어놓는 식의 마케팅 지침서가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 현상을 깊고 넓게 분석해낸 것을 근거로 기존 전략을 수정할 것을 제의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지난 30년간 세계 유명 기업과 CEO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해온 클로테르 라파이유 박사가 자신의 고객 기업들에게 매출 증대와 수익 향상을 위해 수행했던 ‘각인 발견 작업’이라는 경험을 총결산해 저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컬처 코드란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이다. 이 코드는 각자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경험한 문화를 통해 획득되며, 따라서 어린 시절을 어떤 문화 속에서 보내느냐에 따라 코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 문화에서 자란 사람과 프랑스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 똑같은 땅콩 버터와 치즈를 보고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다. 이것은 왜 미국에서는 축구가 아닌 야구가 국민적 스포츠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이며,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가, 프랑스에서는 슬로푸드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또 라파이유 박사는 어떤 문화이든 고유한 정신적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미국인을 미국인답게, 프랑스인을 프랑스인답게,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일본인을 일본인답게 만들어준다. 컬처 코드는 어떤 의미에서 각 나라 사람들의 서로 다른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컬처 코드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은 왜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가 되어준다고 설명한다.
라파이유 박사는 사람들의 뇌에 각인된 무의식의 구조를 분석해서 코드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코드를 다른 문화에서 찾아낸 코드와 비교함으로써 동일한 사물이 다른 문화에서는 어떻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밝혀냈다. 이런 독특한 작업은 인류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정신의학·문화인류학·심리학을 아우르고 여기에 방대한 실증적 관찰을 뒷받침해 뛰어난 통찰력과 현실적인 해결책을 함께 주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현상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은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데 이 책의 장점이 있다. 단순히 마케팅 전략서로 읽히지 않고 문화 평론서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 현상 분석하는 새 틀로도 유용할 듯  


라파이유 박사의 작업에 호평을 하는 것은 단순히 문화와 마케팅을 결합하지 않고 치밀한 분석과 다양한 실례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미국 문화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 다른 나라의 문화까지 알게 해주겠다는 지은이의 의도가 덜 전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컬처 코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쇼핑·사랑·건강·직업·정치 등 삶의 곳곳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드를 알고 나면 왜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지, 왜 각국의 사람들은 그토록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나라에도 다양한 문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소수의 문화에도 숨겨진 코드가 있을 테니 편견과 무시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칫 컬처 코드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을까 염려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차이’를 국경으로 가를 수 없는 것이고, 한국인 중에도 햄버거를 주식으로 하고 축구보다 야구에 열광하고 김치보다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블루슈머 6’을 결코 폄하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이다. 
또 사회를 잘못 짚고 잘못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 ‘악성’ 코드를 잡아내는 일에도 이 책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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