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하늘에 시를 쓰다
  • 홍선희 편집위원 ()
  • 승인 2007.01.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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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디자이너 위베르 씨
 
남프랑스 마르세유에 사는 피에르 알렝 위베르 씨(60)는 건축을 전공했다. 20대 후반에 마르세유 공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해 건축 역사와 드로잉을 가르쳤다. 지난 30여 년간 틈틈이 불꽃놀이 작가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작업하다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불꽃놀이에 전념하고 있다.
“설계가 3D 작업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추세여서 학생들이 손으로 드로잉하는 것을 회피해 가르치는 보람이 줄었다. 정년 퇴직하는 것보다 연금이 적지만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지금이 더 즐겁다”라고 말했다.
위베르 씨는 창원시와 작업을 함께 하기 위해 지난 1월25일 방한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1~2년 간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불꽃놀이는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다. 2001년 제1회 전주소리축제 개막식에서는 전주 시청사의 기와로 얹은 옥상을, 2002년 수원월드컵문화축제 개막식에서는 수원성 봉수대를, 2005년 세계평화축제에서는 임진각 근처 평화의 동산을 활용했다. 원주 따투에서는 <물과 불 그리고 멀티미디어쇼>로, 평화축전에서는 <소리없는 불꽃/침묵>으로 수묵화 같은 이미지를 연출했다. 미국·캐나다·독일·불가리아 등에서 활동했고, 지난해 1월에는 ‘제로’를 주제로 인도의 과학자들과 공동 작업을 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인사동의 청국장집을 찾고 울진의 신광사에서 스님과 나물을 채취하며 한자와 그림으로 대화를 나눈다. 지난해 여름 수해로 신광사에 피해가 컸다며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그의 불꽃에는 우리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다. 지역 특성 및 행사 컨셉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불꽃을 만들어낸다.
 
기획 단계부터 각 나라에서 실력 있는 불꽃 연출자들을 발굴해 행사 컨셉트에 필요한 연출용 화약을 공동으로 개발한다. 지금까지 그와 국내외에서 호흡을 맞춰온 조충희 (주)파이로월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위베르 씨는 불꽃의 색과 불꽃 배경이 되는 피사체의 색을 중시한다. 불꽃이 연소되면서 나오는 연기조차도 자신의 불꽃 요소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고 요란하지 않아도 공간을 장악하는 연출을 통해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해 마음을 빼앗아버린다. 이렇게 되면 관람객들은 자신이 불꽃을 다루는 듯한 몽환적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위험한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위베르 씨는 “불꽃놀이는 수학이다. 정확한 계산에 의한 작업이라 관계자의 부주의만 없으면 안전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數)를 통해 시(時)를 펼친다.  또 그의 작업에는 음악이 있다. 전주에서는 베토벤의 5번 교향곡 4악장이 생연주로, 수원에서는 프랑스 70인조 그룹의 라이브 연주가, 임진각에서는 양방언의 <Echoes>가 쓰였다.
그가 한국에서 바라는 일이 하나 있다. 지하철에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저잣거리에서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스케치한 그림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고 싶어한다. 그 일에 관심을 가져줄 화랑을 열심히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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