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탈당 혹은 위장 이혼
  • 오영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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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당' 열린우리당 의원들, '반 한나라당' 세력 규합 후 재결합 가능성 배제 못해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 3인방 중 한 명인 천정배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자 노무현 대통령 직계인 이광재 의원은 “정치 이전에 인간 도리에 어긋난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천의원이 원내대표를 맡은 동안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43.5%에서 22.3%로 떨어졌다”라고 책임도 물었다. 청와대 이병완 비서실장도 ‘안타까운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의원의 독설이 노대통령의 심중과 더 가깝게 느껴졌다. 천의원에 이어 염동연 의원도 1월31일 탈당했다.
몸담았던 정당을 떠나는 것은 극약 처방이다. 특히 천의원이나 염의원처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의 이탈은 치명적이다. 노대통령은 신당파를 ‘지역주의자’라고 매도했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지역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라며 비켜섰지만, 현재로서는 지붕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열린우리당은 잔존 세력으로 집을 수리하고 간판을 바꾸면서 생존에 몸부림치겠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일단 이들이 당에 돌아온다거나 다시 손을 잡기는 힘들어 보인다. 퍼부은 막말이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앞서 탈당한 이계안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죽었다”라고 단언했다. 법무부장관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사학법 개정을 주도했고,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불구속 수사 지휘로 논란을 일으킨 천의원의 탈당은 아예 열린우리당-참여정부의 상징성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퇴출 명령을 내렸다”라는 것은 염의원식 재 뿌리기다.
이렇게만 보면 탈당파들은 열린우리당과 죽어도 다시 마주할 일조차 없어 보인다. 집권 기간에 여당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일이 어찌 예사로운 일인가. 그러나 참으로 묘하다. 오가는 말만 험악했지 이들이 서로 바라보는 눈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먼저 나가 보금자리를 꾸밀 테니 뒤따라오라”거나 “엄동설한에 나가 고생할 터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믿으리…” 같은 신파조의 읊음도 들린다.


시민사회와 연대해 ‘새로운 가치 창출’ 나설 듯


이광재 의원이 거친 말을 퍼부었음에도 천정배 의원은 “어느 위치에 있든 노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 하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라고 했다. “앞으로 협력해 민생 개혁 세력의 전진을 위해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은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을 향한 말이다. 염의원 역시 “길게 보면 이 길(탈당)이 결국 노대통령을 돕는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탈당’이 장난이 아니라면 긴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떠나는 자와 남은 자 사이의 미움과 막말에 작위적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만약 집에 불이 났다면 가족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더구나 불탄 집이 30년, 100년간 끄떡 없는 집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면 불이 났다 해도 그 자리를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100년 정당을 염원한다던 열린우리당은 이제 창당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집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무너져가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집 식구들이 밥 먹다 밥상을 내던지고, 발로 벽을 걷어차 기울게 만들었을 뿐이다.
천의원과 염의원은 열린우리당을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존재다. 끝까지 열린우리당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당을 떠났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과 남은자들을 향해 ‘덕담’을 남겼다. 그래서 ‘위장  이혼’이라는 의심을 사게 된다.
천의원, 염의원, 앞서 탈당한 임종인·이계안·최재천 의원의 탈당의 변을 되짚어보자. 탈당 명분은 의원 성향에 따라 당의 개혁성이 부족해, 기득권을 버리기 위해, 민주당과의 대통합을 위해 등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 5명 의원의 목표는 다르지 않다. 드라마틱한 범여권 대통합을 통한 12월 대선 승리다. 열린우리당 잔류파들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아마도 여기에 노대통령과 그의 직계들과도 합치점이 있지 않을까.
각각 제 성향대로 열린우리당 밖 시민사회  세력을 규합해 천하무적 ‘로마 보병 군단’을 꾸리겠다는 뜻이다. 임종인 의원은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위해 법조계·학계 인사들을 만나고 있으며, 최재천 의원은 ‘공화주의에 입각한 민주 진보 정당 출현’을 , ‘렉서스를 꿈꾼다’는 이계안 의원은 중도·실용주의 세력 규합이 목표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해온 염의원은 민주당을 아우르는 호남 세력 단일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민주당이 기피하는 천의원은 “각계각층의 뜻있는 인사들과 협력해, 중산층과 서민을 비롯한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 비전과 정책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들을 찾고 있다”라며 역시 시선이 시민사회에 닿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정적인 것은 이들이 당분간 ‘인물’ 즉 ‘대선 후보’에 몰입하지 않겠는다는 점이다. 일단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좌파에서부터 중도·실용주의 세력을 아우르며 세를 확대해 반 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함으로써 누구를 내세워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얘기다. 그 ‘가치’는 한나라당을 전쟁 세력, 반 서민 집단, 부동산 투기당으로 낙인찍겠는다는 작업이 될 가능성이 짙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향한 국민들의 미움을 지우고, 그것을 한나라당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가치 창조’라는 얘기다.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는 여권으로서는 2002년 대선처럼 인물이 아닌 이미지 대결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을 할 만하다.
노대통령은 이미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갖는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별것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치하에서 저질러진 인혁당 사법 살인에 대한 친여 언론의 규탄이 시작되었다. 막 새로 진영을 짜고 있는 ‘신 여권’으로서는 특정 후보를 앞세울 이유가 없는 시점이다. 한나라당 유력 후보만 적정선에서 관리하면 그만이다.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않는 90% 이상의 서민과 중산층이 품고 있는 불만이 한나라당과 그 후보들에게 돌아가도록 물꼬만 서서히 터주면 된다고 믿을지 모른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이 교묘하게 정립한 ‘가치’를 내세운 정치 세력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출현할지는 단정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오는 6월 대선 후보 경선에서 후보를 확정하면 실체가 단번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이탈리아 반도 중부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 보병 군단’을 궤멸시켰듯이 배후와 측면을 기습하고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노대통령 최측근과 열린우리당 창당 핵심들의 열린우리당 탈당이 ‘위장 이혼’이며, ‘기획 탈당’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은 바로 칸나에 전투를 준비하는 듯한 비장함과 초조함이 집권 세력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선거 구도 바뀔 수 있다” 자신감 내비친 까닭


세계 모든 사관학교 교재에 등장한다는 ‘칸나에 전투’를 노대통령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나 하고 궁금증을 가져볼 만한 증거는 있다.  노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지지율 1위 후보가 끝내 떨어진 사실을 예로 들며 “2002년 대선 이맘때 지지율 5% 아래 있던 내가 후보가 됐다”라고 상기시킨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내가 후보가 된 게 (2002년) 2월 말, 3월 초인데 그 뒤 내가 바닥까지 갔다 올라왔다”라며 “이제는 막판에 바로 올라가도 되지 않나. 선거 구도는 바뀔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지금이 바로 ‘바닥’이다. 그 바닥에서 그는 ‘막판’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들은 ‘위장  이혼’이라고 하면 발끈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 계획이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위장 이혼일지라도 사실 이혼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의도했건 안 했건 결과는 위장 이혼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천정배 의원이 시민사회 단체와 반 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하고, 염동연 의원이 민주당과 합쳐 호남 단일  대오를 형성하면 어떤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 여기에 열린우리당 잔류파와 임종인 의원 등의 좌파 세력까지 합하면 한나라당은 고립무원이 되기 십상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정치적 손질도 가능하다. 위장 이혼을 통해 반 한나라당 세력이 힘을 합할 때 노대통령은 의도하든 안 하든 거의 장막 뒤로 물러설 것이다. 그 모습은 “나를 밟고 정권을 다시 잡으라”는 메시지로 전달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가운데 추대되는 신 여권의 후보는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를 점할 것이다. 그의 실정으로부터도 자유롭고, 따라서 심하게 노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공격해도 그 후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부동산이고, 교육 정책이고, 과거사 문제이고, 외교 및 대북 정책이고 간에 노대통령이 비난받는 모든 정책을 깔아뭉개는 식으로 돌파한다면 누가 그를 사실상의 노대통령 후계자로 생각하겠는가. 동시에 노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이라도 개최하고, 한반도 평화 체제의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며, 병역 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제시하면 재집권 구도를 펼칠 무대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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