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고 부르터도 임은 먼 곳에?
  • 오윤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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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탈당 사태에 국민 다수가 냉담...'헤쳐서 다시 모여' 시나리오도 '첩첩산중'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 사태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명분이 없다. 정치는 명분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가치를 추구해야지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열린우리당에서 뛰어내리는 탈당파들에 대한 섭섭함과 분노가 뒤섞인 반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서 탈당한 김한길·강봉균 의원 등 23명은 “통합의 바다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라고 했다. 비장감을 찾기 어렵다. “노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돕겠다”라고도 했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아무튼 해괴하기 짝이 없다. 한쪽은 화내고 다른 쪽은 미소를 지으며 이별을 고했다. ‘위장 폐업’은 아닐까?
노대통령은 탈당파들을 향해 “당을 쪼개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색깔을 지우려면 덧칠을 하는 게 효과적이지 세탁을 하면 색깔이 없어지느냐”라고 힐난도 했다. 열린우리당을 리모델링하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고집스러운 믿음이다. “정치 원칙을 지키면 (열린우리당도) 금방 뜬다”라는 단정도 흥미롭다. 집권당 지지도가 10%에 불과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는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를 ‘코미디’쯤으로 여기고, 이를 짜증스럽게 보는 국민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청와대와 탈당파가 상호 긴장을 조성하는 눈치다. 노대통령의 탈당파 비난에 이어 이병완 비서실장이 “탈당파들은 한나라당 2중대냐”라고 쏘아붙이는 단계까지 왔다. 탈당파들도 여기에 맞서 노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반기를 들 태세이다. 여차하면 노대통령의 현실 정치 개입에 대한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대통령 연임제 개헌안이 발의되면 거부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노대통령에 대한 전의를 서서히 불사르는 모습이다.


신당 창당해도 재집권 가능성 희박

 
그러나 이들의 분당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 이미 틀렸다. <시사저널> 여론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16%에 불과하다. 부정적 의견이 무려 74.1%다. 탈당파들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32% 이상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으로 뿔뿔이 흡수될 것”이라고 보았다. 통합신당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에는 27%만 동의했다.
국민들이 냉소하면 이들이 대선 직전 통합신당 창당에 성공한다 해도 재집권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사수파와 탈당파가 후보를 단일화하더라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은 40%에 그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50%에 달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들은 집단 탈당을 택했다. 곧 또 한 차례의 집단 탈당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엄동설한에 당을 뛰쳐나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탈당파들이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는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탈당파를 향한 노대통령의 비난과 이병완 비서실장의 공격을 보면 겉으로는 짜고 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잔류파들과는 상당한 정보 교환과 작전 공유가 있었다는 흔적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김근태 의장 등이 탈당파들을 비난하지만 당직자들이 ‘통합의 바다에서 만나자’는 탈당파들의 말을 받아 ‘다시 만날 날을 믿는다’고 맞장구친 것은 탈당파나 잔류파가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김근태 의장 계파인 유선호 의원이 단독 탈당한 것도 뒷그림을 공유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과연 이들의 구상은 무엇일까? 일단 청와대를 배제한 시나리오를 들여다보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대통령 측근 몇몇을 제외하고 노대통령이 당에서 떠나주기를 바라왔다. 국정 실패 책임을 공동으로 져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노대통령이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여당 지지도가 추락하는 상황에서 노대통령과의 ‘결별’은 불가피하다고 여겨온 것이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은 탈당파들을 ‘지역주의’라고 비난하고 탈당을 거부해왔다. 때문에 누군가 노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공감은 오래전부터 당내에 뿌리를 내렸다. 노대통령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에서는 대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선 직후 실시될 18대 총선에서 전멸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엄습한 것이다. 노대통령의 스타일로 보아 퇴임 이후에도 감 놓아라 배 놓이라 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았다. 결국 죽을 때 죽더라도 재집권을 위한 몸부림이라도 쳐보아야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분당이 감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대통령 그림자 지우기’ 발등의 불


 
그래서 위장 이혼 또는 기획 탈당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탈당하는 세력이 당 밖에서 노대통령 및 측근들과 각을 세우고, 노대통령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 얼개다. 먼저 탈당파들이 노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작하고, 노대통령 색깔을 지우면 사수파들의 열린우리당 ‘간판 내리기’도 수월해질지 모른다. 노대통령 측근들과 마찰이 있겠지만 그때는 노대통령이 당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과 정면 충돌하지 않아도 탈당파들이 노대통령 직계들을 무력화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사수파와 탈당파들 사이에 언쟁이 오가지만 긴장감이 전달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그 다음 수순은 탈당파들이 먼저 기존 후보 아닌 ‘외부 선장’을 모시는 작업이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방금 내린 사수파보다는 노대통령과 싸늘한 관계를 형성한 탈당파들이 새 인물을 영입하는 데 적합하다는 판단인 것 같다. 또 탈당파들은 외부 선장을 앞세워 노대통령 및 참여정부와 일종의 ‘전쟁’을 전개할지도 모른다. 또 노대통령을 철저히 밟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위장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국민들이 탈당파들을 ‘열린우리당 2중대’로 지목하는 상태에서는 세탁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국민 시선을 끌면 열린우리당 사수파와의 물밑 교감을 통해 ‘통합의 바다’로 나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함직한다. 열린우리당 사수파가 내세우는 후보와 탈당파가 영입한 인물 간의 오픈 프라이머리가 기다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해체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다. 탈당파들의 추락한 도덕성 때문에 누가 그 배에  올라탈지는 별개 문제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나라당과 건곤일척의 싸움이 가능하다고 보는 절박한 처지들이다.
만약 노대통령의 영향력을 허용하면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나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같은, 민심이 수용하기 어려운 인물을 후보로 밀어붙일지 모른다는 걱정도 깔려 있다. 4년 전 밑바닥에서 기사회생한 노대통령으로서는 누구든 자기가 후보를 만들면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노대통령, 최후 순간에 신당파 지원할 수도


노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의 ‘왕따’ 전략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하다. 일단 노대통령은 탈당파에 대해 몹시 서운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대통령 퇴임 후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지켜줄 열린우리당이 사라진다는 것도 괴롭지만 이른바 지지 세력들의 활동 공간이 위축된다는 데 대한 불만도 없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사수파와 탈당파의 협공에 정면 저항할 기력도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탈당한 상태에서 뭔가 입김을 넣어보겠지만 노대통령을 싸늘하게 외면하는 분위기에서 고집을 앞세우기도 멋쩍을 것이다. 인기 없는 대통령이 ‘빠져야’ 그나마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분위기가 사수파와 탈당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대통령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을 링 밖으로 밀어내는 세력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정권을 넘겨주는 것보다는 이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가운데 정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마음을 비울 여지도 없지는 않다. 임기 막판이 되면 누구나 의기소침해지면서 현실을 바로 볼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임기 내내 발목을 잡아온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가 앞서면 현직의 이점을 살려 통합신당을 돕겠다고 나설 수 있다.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 카드’ 같은 위력적인 수단으로 자신을 배척하는 신당파들을 지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럴 조짐도 보인다. 임기 1년을 남겨둔 정부가 10년, 20년 후의 정책을 쏟아놓는 것은 이미 노대통령이 그러자고 작심했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노대통령을 대열에서 배제한 채 등장할 열린우리당 후속 부대는 대통령 선거 직전의 깜짝 통합을 위해 정교한 각본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각본은 탈당파들이 먼저 선수를 치는 것으로 순서가 잡혀 있는 듯하다. 요체는 노대통령과 결별한 마당에 한발 더 나아가 매정하게 차별화하는 노선을 걷고, 이를 실천하는 인사를 내세운다는 얘기다. ‘새 인물’은 노대통령에게 부채가 없는 인물로 노대통령의 기존 정책을 뒤집는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 분당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되었다. 그런 대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한나라당 ‘빅 3’가 차지해온 언론 보도를 양분하는 데도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일부에서는 “국민을 우습게 본다”라고 분노하는 소리도 전달된다. 탈당파나 사수파가 이런 여론을 극복하는 것은 열린우리당 분당이 ‘위장 폐업’이나 ‘위장 이혼’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거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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