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의 끝은 이란 전쟁인가
  • 조홍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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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동의 반미 세력 제거 위해 이란 침공 '으름장'

 
2월4일 일요일, 바그다드 시내 시아파 주거지 슈퍼마켓에서 자살 폭탄 트럭이 터져 1백32명이 죽었다. 이라크 전쟁 개시 이래 단일 공격으로는 최악의 참사이다. 미국은 매주 20억 달러의 전비를 쓰면서도 이라크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새로운 전쟁을 위해 ‘개전 이유’를 찾고 있다면 부시 대통령이 미쳤다고 할지 모른다. 이라크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이란전이 이라크 사태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논리마저 나온다.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회견에서 미국이 중동에서 구상하는 새로운 ‘개편 전략’을 밝혔다. 이 전략의 요체는 이란이 주축이 된 중동의 반미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란은 오래 전부터 극단주의를 추구해왔다. 목적은 중동의 맹주가 되는 것이다. 유엔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강행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중동 지도에서 이스라엘을 없애려는 원대한 음모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테헤란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인(Holocaust Denial)’ 회의도 열렸다.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다. 온건 노선의 다른 아랍 국가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중동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정책과도 충돌한다. 물 밑에서 진행되던 패권 경쟁은 최근 레바논 전쟁 이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두 연합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란이 시리아·헤즈볼라·하마스와 연대하자 레바논·이라크·팔레스타인이 뭉쳐 대항 전선을 구축했다. 이 전선에는 사우디·이집트·요르단도 가담했다. 미국이 즉각 기회를 포착했다. 반이란 세력을 포섭해 대이란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해결책을 찾다가 이란을 주목하게 된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이란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를 훈련시키고 대량의 무기를 공급함으로써 이라크 내전을 장기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의도와 달리 미국과 이란의 대리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미국이 최근 이라크 내 이란 요원들을 사살 또는 체포하고 두 번째 항공모함을 걸프 만에 파견한 것은 새 전략에 따른 것이다. 핵을 보유하고 중동의 ‘대부’로 떠오르려는 이란을 견제하는 것은  이란을 곱게 보지 않는 친미 아랍국들에게 걸프 만에서의 미국의 건재를 보여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일이 잘 되면 이라크와 이란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고 북핵 제거까지 덤으로 이룰 수 있다는 것이 개편 전략을 입안한 사람들의 희망 사항이다. 이 전략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레바논과 그 저항 세력 헤즈볼라 간 평화 구축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분쟁의 배후에도 이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이란 작전은 포괄적 의미에서 북한 문제와도 연계된다. 이란은 북한으로부터 미사일 부품을 대량으로 수입해 중동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최신 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세 나라 가운데 이라크는 제거되었으나 이란과 북한이 손잡고 대량살상무기(WMD)를 확산하고 있는 현실을 미국은 방관할 수 없는 처지이다. 마침 6자회담에 긍정적 조짐이 보이지만 대량살상무기 제거 노력을 이 회담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미국이 이란 압박 작전을 가속화하는 데는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국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내 보수·실용주의 세력은 그에게 불만이 많다. 재정을 파탄시키면서 핵을 개발하고 대미 대결 전략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게다가 집권층 주변은 부패했다. 무조건적 극단주의 정책은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며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전략은 아직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놓고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이란이 화근이며 이 화근을 없애는 것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데는 공화·민주 양당이 공감하고 있다. 성공을 담보하는 최대 관건은 연합된 외교 전선을 형성하느냐이다. 이 점에서 이란의 핵 개발을 규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이란에 60일 내에 핵 개발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시한이 임박한 시기에 이란은 비동맹국 사찰단에 국내 핵 시설을 공개했다.
개편 전략을 부시의 또 다른 모험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이미 이라크 전쟁과 종족 분쟁으로 가뜩이나 양극화된 지역에서 이란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드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다가 자멸한 옛 소련의 교훈도 되새겨야 한다. 중동의 현상 유지에 만족하려는 사우디가 전폭적으로 미국 편을 들지 않는 것도 변수이다. 전통적으로 친미적인 일부 아랍국들도 중동을 시아파와 수니파 두 전선으로 양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비생산적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란이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일축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많다. 


이란, 미국의 군사 위협에 겁먹지 않아


 
개편 전략은 해답과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라크는 사실상 시아파와 수니파의 전쟁 상황이다. 두 종족 간 증오의 심도는 미국에 대한 증오를 능가한다. 미국은 안중에 없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를 지지하고 레바논에서는 수니파 편이 되는 미묘한 모순에 미국은 빠져 있다. 게다가 시아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임시정부는 국정 장악 능력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은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이라크에서 참담하게 패배했다. 지난 50년간 이슬람 국가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나라는 없다. 어쩌면 이란에 대해서도 같은 과오가 되풀이될지 모른다. 여기에 부시의 고민이 있다. 그러나 부시는 이란에 대해 또 다른 모험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국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진 이란이 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에 개입하면서 더 넓은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을 구경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란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겁을 먹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많은 분석가들은 미국과 이란 어느 한쪽에서 실수를 하는 날에는 미국·이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의회뿐이다. 그러나 의회는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개편 전략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 중 한쪽의 동반자가 될 판이다.
어쨌든 새로운 전쟁의 북소리는 이라크에 관한 부시의 최근 연설에서 들려왔다. 그는 반미 세력을 규합하고 훈련시키는 이란과 시리아 네트워크를 기어코 찾아내 파괴하겠다고 다짐했다. 부시의 전략을 이해하는 견해도 많다. 이란에 대한 위협 강도를 높이고 대결을 확대하면 이 지역에서 이란의 입지가 좁아지고 이란의 핵 야망도 저지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시는 최근 이라크 전쟁 비판자들을 향해 “내 아내와 애견만 곁에 남는다 해도 그때까지 이라크에서 승리를 관철하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강인한 의지가 중동 역사를 바꿀지 모른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이 이미 미국의 신뢰에 깊은 상처를 준 마당에 부시의 새로운 도박에 미국의 적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오히려 미국 국민과 미국 우방들의 눈이 더 휘둥그레지고 있다. 한 가지 위안받을 일이 있다면 얽히고설킨 중동 사태를 감안할 때 라이스의 개편 전략이 최소한 중동 출구를 향한 토론의 바탕은 마련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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