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장이다” 독 오른 ‘필살기 전쟁’
  • 오윤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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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찬 폭로’로 이명박-박근혜 ‘검증 공방’ 점입가경…양쪽 모두 위험부담 커 당분열 재촉할 수도

오윤환 (자유 기고가)

 
ⓒ연합뉴스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의 검증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선제 공격을 퍼부은 박 전 대표 쪽이 앙칼지다. 아예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 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는 한때 총동원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쪽은 애써 확전을 외면하지만 위기감이 상당하다. 한편으로는 박 전 대표를 향한 ‘필살기’를 가다듬고 있다.
이 전 시장의 10여 년 전 흠결을 끄집어낸 박 전 대표측과 여차하면 박 전 대표의 ‘X파일’을 까발릴 것 같은 이 전 시장측, 양쪽의 기세가 마치 이혼 판결을 기다리며 법정에 서 있는 부부 같아 보인다. 더구나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0% 가까이가 “대선 지지 후보를 바꿀 뜻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특히 이 전 시장 지지층 가운데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이 더 많다. 검증 여파에 따라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한순간 내려앉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후보 검증 갈등으로 이 전 시장과 한나라당 지지도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한나라당’은 공멸로 가는 ‘환(患)나라당’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이-박 진영의 사생결단 필살기를 들여다보았다.
이명박 전 시장측은 당초 정인봉 변호사가 ‘이명박 X파일’을 꺼내 흔들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996년 총선 때의 선거법 위반 판결문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준비위도 “모욕당했다”라며 불쾌해했다. 그러나 수그러들던 검증 공방은 이 전 시장의 보좌관 출신인 김유찬씨의 기자회견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이 전 시장이 자신에게 선거법 위반에 관한 위증을 교사하며 20여 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을 주었고, 해외 도피 자금으로 거액의 달러도 주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 전 시장이 간접 화법으로 ‘살해 위협’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 전 시장측은 김씨를 고소하겠다고 별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하지 않겠다”라며 우물쭈물이다. “고약하게 걸렸다”는 낭패감도 없지 않다.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소하자니 위증 교사 여부와 금전 제공 여부를 조사받아야 하고, 만에 하나 그 흔적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후보고 뭐고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관하다고 밝혀져도 조사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 전 시장측 캠프 ‘분노 반 걱정 반’
이 전 시장 캠프 분위기는 ‘분노’와 ‘걱정’이 뒤섞여 있다. 분노는 박 전 대표측을 향한 것이고, 걱정은 김유찬씨 폭로가 몰고 올 여파와 추가 폭로에 맞춰져 있다. 박 전 대표와 싸우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김씨 폭로에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후보 검증 여론을 타고 무차별 폭로가 자칫 여론에 먹혀들어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형편이다. 이 전 시장측에서는 김씨 행적으로 볼 때 그의 진술을 유권자들이 믿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씨가 여야를 넘나들며 폭로를 전문으로 해왔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그의 말을 신뢰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김씨의 ‘폭로’와 이 전 시장의 ‘과거’가 악성에 속한다는 것이다. 선거법 유죄 판결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를 폭로한 김씨를 해외로 도피시키고, 위증을 교사하며 1억여 원을 준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도덕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시장은 선거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직도 상실되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법을 어겨 국회의원 직을 상실한 사람이 과연 대통령감이냐” “돈 주고 위증을 교사하고 달러로 증인을 외국으로 빼돌린 사람이 후보 자격이 있느냐”라는 식의 여론이 일어나면 예선 탈락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유찬씨 해외 도피에 이 전 시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당시 이광철 비서관 등 핵심 측근들이 달러를 건네고 외국으로 피신할 것을 종용한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이 전 시장이 이를 몰랐다는 주장이 얼마나 먹힐지도 미지수다. 김유찬씨의 추가 폭로도 거침이 없다. 여자 관계, 재산 문제, 현대와의 관계, 종교 문제 등 향후 터뜨리겠다는 폭로 리스트가 길다.
뿐만 아니다. 정인봉 변호사는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말을 소개했다.
당시 선거법 위반 등이 사실로 밝혀지자 강총장은 이 전 시장을 당에서 ‘축출’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전 시장은 “다른 후보들의 선거 자금 내역을 밝히겠다”라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총선 자금으로 유입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통치 자금을 건드리겠다는 얘기다. 정변호사는 “강 전 총장에게 이 내용을 폭로해달라고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이 취재해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은 후보 검증으로 상처를 입었다. 지지율에 변동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있지만 검증 파동 후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결과도 있다. 미디어 다음과 리서치앤리서치가 공동으로 지난 2월14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전 시장은 41.0%의 지지율을 보였으나  18일에는 37.1%로 3.9%포인트나 하락했다.
지난 2월1일 조사 때의 50.2%와 비교하면 보름새 10%포인트 이상 폭락한 수치다. 문제는 40%를 넘는 한나라당 지지도 역시 이 전 시장 검증이 시작된 후 30%대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전 시장 때문에 당 지지도가 추락하면 당대의원들의 이 전 시장에 대한 사퇴 공세가 가열될지 모른다. 분명히 위기다.
이 전 시장측으로서는 지지율 추락도 문제이지만 폭로 기자회견을 갖는 김씨를 주저앉힐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섣부르게 손을 썼다가는 또 “돈으로 매수한다”라는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상호 검증을 통해 박 전 대표에게도 유사한 상처를 입히는 길밖에 없다. 자신의 지지도가 반 토막 나면 상대 지지도를 깎아내릴 수밖에 없다는 다급한 위기감이다.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하지 말라”고 했지만 캠프는 다양한 검증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의 재산이 문제된다면 박 전 대표의 재산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다. 우선 박 전 대표가 10·26 직후 살았다는 성북동 저택이 타깃이다.
박 전 대표가 소득이 없었으면서 최고 부자촌 저택을 소유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후원금 덕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정수장학회, 영남대 등 부친이 총칼로 빼앗은 재단에서 박 전 대표가 수령했다는 급여도 시비거리다. 박 전 대표와 최태민 목사 간의 관계도 검증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또 박 전 대표가 2002년 2월 한나라당 내부 개혁을 요구하면서 탈당한 후 ‘미래연합’을 창당해 2년 가까이 대표로 지낼 당시 창당 자금 등의 출처도 검증해야 한다는 태세다. 뛰쳐나갔던 한나라당과 다시 합당 형식으로 한나라당에 복당했고, 복당 대가로 한나라당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된 사실도 도덕적으로 스쳐 지나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측 “검증 시작되면 한달 내 지지도 역전”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바지 차림을 하고 언론에 나선 박 전 대표의 첫 일성은 ‘후보 검증’이었다. 지난 1월19일 새벽 미국에서 귀국한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측이 정변호사의 주장과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는 데 대해 “억지로 지어내서 하는 것도 네거티브”라고 반박했다. 정변호사의 검증 자료가 코미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자 “가치 판단은 국민의 몫”이라고 당차게 치고 나온 박 전 대표다.
당내 경쟁자인 이 전 시장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정변호사 폭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이 전 시장에게 더블 스코어로 밀리는 박 전 대표로서는 위기 상황이기도 하다. 설 민심을 겨냥했지만 여론을 근접시키거나 뒤집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설을 앞둔 결정적 시기에 미국을 방문한 것도 패착이 아니냐는 지적이 캠프에서조차 나오는 실정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지만 그것으로 국내에 얼마나 감명을 주었는지도 의심스럽다. 기대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 면담도 힐러리 쪽에서 거액의 헌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미국 체류 12일간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 전 대표가 국민 여론에서 이 전 시장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얼마 전부터는 당내 대의원 지지도에서도 이상 기류가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대의원들 사이에서는 강세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한나라당을 살려냈고,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전승을 거둔 성과가 당 대의원들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후보 경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의원 쪽에서조차 밀리게 되면 더 이상 손을 쓸 곳이 없는 처지다. 측근 참모 유승민 의원이 이 전 시장을 향해 “현대건설을 망하게 한 실패한 CEO”라고 헐뜯은 것도 이런 조바심의 산물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이명박 검증론’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캠프는 정변호사와 김유찬씨의 폭로가 이명박 검증의 시작일 뿐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나름으로 수집한 ‘이명박 X파일’의 개봉 시점과 방식을 예의 검토하는 눈치다.
참모들은 “검증이 시작되면 한 달 내로 지지도 역전이 가능하다”고 장담하기도 한다. 과연 박 전 대표측의 ‘이명박 필살기’ 전략은 무엇이며, 확보했다는 ‘이명박 X파일’은 무엇일까.
박 전 대표측 전략은 ‘이명박=이회창=본선  필패’이다. 정변호사의 폭로처럼 이 전 시장에게 약점과 비리가 많다면, 이회창씨처럼 본선에서 필패한다는 논리다. 특히 이 전 시장의 재산 형성에 대해서는 ‘서초동 부동산’을 태풍의 눈으로 간주하는 눈치다. 과거 ‘꽃마을’이었던 서초동 노른자위에 위치한 이 전 시장의 빌딩 등이 특히 꽃마을 영세 화훼업자의 피와 눈물을 가로채는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꽃마을 철거 당시 주민들이 퇴거를 거부하자 철거반원들에 의한 것으로 짐작될 만한 방화가 여러 차례 저질러졌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불에 타 숨졌으며 일부가 분신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캠프 쪽은 이 전 시장의 부동산에 얽힌 스토리를 깊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과의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할 정도로 부동산 투기가 금기시된 우리 사회에서 이 전 시장의 막대한 부동산은 아킬레스 건이 될지도 모른다.
또 김유찬 전 보좌관의 폭로는 이 전 시장의 사람 됨됨이를 알게 해주는 상징적 사례로 보고 있다. 당초 김 전 보좌관은 1996년 총선 당시 개인적으로 충당한 선거 비용 1억여 원을 갚아달라고 요구했으나 이 전 시장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선거 자금 폭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재산이 수백 억원대인 이 전 시장의 사람 관리·돈 관리의 한계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검찰이 한때 ‘황제 테니스’와 관련해 내사를 벌였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열린우리당이 황제 테니스와 관련해 ‘경천동지할 비리’라고 했다가 망신만 당했지만, 검찰이 황제 테니스 멤버들의 ‘청평 파티’를 샅샅이 뒤졌다는 점에서 뭔가 있지 않나 하는 확신을 굳히고 있다.
국민 60% “한나라당 쪼개진다”
현재 박 전 대표 캠프에는 이 전 시장의 비리 의혹 등 약점과 관련한 각종 제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전 시장의 현대건설 재직 당시와 서울시장 재임시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제보자들이 언론 기관을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흘러나왔다.
박 전 대표 역시 이 전 시장측이 반격할 가능성에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사생활과 재산 관계로 맹공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 이런 각오가 없으면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을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분위기다. 무기는 박 전 대표가 ‘남편도, 자식도 없다’는 것이다. ‘홀몸으로 나라와 민족에 헌신하겠다는 것’ 이상의 반격 카드가 없다는 판단이다.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함으로써 10년 야당 신세이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영원한 야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지금 이명박-박근혜 전면 전쟁으로 그 가능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만년 야당으로 가든, 정권을 되찾든,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는 국민들을 점점 지치게 할지 모른다. 국민의 60%는 이미 한나라당이 쪼개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두 사람의 ‘검증 필살기’가 독하면 독할수록, 민심은 그만큼 싸늘하게 식어갈 것이다. 어느새 환(患)나라당이 되어버린 한나라당. 분열의 서곡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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