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로 되살아온 몽골의 영웅
  • 조철 (출판 기획자) ()
  • 승인 2007.02.2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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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복자 대 칭기즈칸>/사실에 밀착해 쓴 ‘역사가 있는 역사소설’

 
최근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에 고대사를 다룬 드라마물이 인기를 얻고 있듯이, 몽골도 기어이 통일 몽골 칭기즈칸의 역사를 되찾고 있다. 2006년은 칭기즈칸이 제국을 출범시킨 지 8백 주년 되던 해였다. 탄압받고 훼손되었던 몽골의 역사를 온전하게 복원하려는 열망이 봇물 터지듯 했던 한 해였다. 그 결과물의 하나로 칭기즈칸의 생애를 그린 일본과 몽골의 합작 영화 <푸른 늑대>가 오는 3월3일 몽골과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다. 한국의 신세대 배우 고아라씨가 출연해 국내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국내 거리에 칭기즈칸을 추앙하는 내용의 가요가 들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칭기즈칸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소설뿐 아니라 그의 리더십과 전략을 다룬 경제 경영서도 하나 둘 나오면서 칭기즈칸에 대해 관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근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인 소설가 구종서씨가 장편 역사소설 <세계의 정복자 대 칭기즈칸>을 펴냈다. 이 책은 인구 2백만으로 수억 인구의 땅을 정복하고 지배한 칭기즈칸의 전략과 실천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몽골 하면 고려를 침공해 우리 조상을 능멸한 ‘오랑캐’로 여겨 그 역사를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잔인한 학살을 일삼은 야만 민족으로만 말하기에는 한 세기 이상을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을 정복해 통치한 역사가 걸린다. 그래서 21세기를 전후해 떠오른 글로벌리즘과 정보 네트워크의 원조였다는 학계의 평가와 마주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그동안 칭기즈칸이라는 영웅을 조명한다며 역사소설뿐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도 나왔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의 경우 작가나 프로듀서가 작품 속 칭기즈칸이 되어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보다 허구로써 그의 활약상을 묘사하는 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독자나 시청자 또한 그 내용을 진실한 역사의 일부로 여겨 이해하고 기억하며 주변에 전파하기도 했다. 역사학자나 역사 전문가가 아니면 어디까지가 실재했던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창작인지 알 길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구종서씨는 이런 문제 제기에 답하듯 <세계의 정복자 대 칭기즈칸>을 엮었다. 작가는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당시의 상황에서 판단해야지 현실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역사소설을 ‘소설적 방식으로 서술하는 역사’라고 보고, 그런 원칙에 따라 역사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작가는 검증된 역사적 사료와 실제 상황이 벌어졌던 현장을 직접 다니며 찍은 사진과 설명을 함께 담아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여준다. 전세계의 참고 문헌을 동원해 지도와 함께 역사적 사실에 밀착시켜 ‘역사가 있는 역사소설’이라는 작가의 취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칭기즈칸으로부터 배울 점 남도록 장치했다”
작가는 “우리가 몽골에 입은 피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사실에 충실하여 칭기즈칸이나 몽골의 모습을 파악하여 서술하였다. 낯선 몽골의 고비 사막과 험난한 부르칸 칼둔, 칭기즈칸의 출생지인 다달, 대외 정벌 몽골 군사들의 진군 코스와 격전지, 내몽골의 유적지, 그리고 몽골족의 발상지인 바이칼 지역을 답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소설 형식이지만 책 구석구석에 역사적 사실을 촘촘히 기록하고, 중간중간에 칭기즈칸의 전략과 전술을 정리했다.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각주를 달고,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을 답사한 여행기도 각 권 뒷부분에 첨부했다.
화려하고 떠들썩한 영웅담들이 이 책에서는 잔잔한 물줄기처럼 담담하게 흘러간다. 미사여구도 거의 없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담백하다. 이 또한 역사에 충실하려고 작가가 애쓴 흔적이다. 대신 굵직한 알맹이들을 건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면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독자들에게 칭기즈칸으로부터 배울 점들이 남도록 장치했다.
 
애쓴 보람이 있는지 이 책은 몽골에서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그렸음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칭기즈칸은 권력사관과 영웅사관을 설명하는 적절한 인물이다. 실제로 칭기즈칸은 역사 추동의 요소인 정신과 지혜를 갖추고, 그의 추종자들을 동원해 생산력을 통제하고 초원의 권력을 장악한 뒤, 자기가 뜻하고 계획한 것을 실행해 초원을 통일했다.
8백여 년 전 초원에서 말 달리던 소년 테무진의 기개를 알아가는 일은 한국인의 몸속에 잠자고 있는 유목민의 근성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책의 취지를 담은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내가 쓴 글들은 발과 손으로 나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썼다. 그 역사는 어두웠기 때문에 나의 발길 또한 무거웠다. 그러나 그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재발견해야 한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고 우리 역시 정복당했지만 그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도 패배자이다. 칭기즈칸을 철저히 안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용트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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