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들, 합법 체류자로 만들어야 한다"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3.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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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성 목사(45)는 한때 오랜 방황을 했다. 1980년 광주항쟁 때 사망한 친구를 버려둔 채 도망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았다. 죄책감과 자괴감 때문에 갈팡질팡 허송세월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투사가 되었다. 정치적 성향에 따른 이념적인 투사가 아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법 체류자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문제와 인권 문제에 헌신했다.
공권력이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행하려 하자 온몸으로 막았다. 경찰의 손에 머리카락이 뽑히고 특수공무방해죄로 구속되는 ‘훈장’을 달기도 했다. 이국 땅 한국에 와서 망자가 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저승길도 직접 챙겼다. 최근 여수에서 벌어진 외국인 노동자의 참사를 보고 그는 분노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김목사는 불법 체류자를 없앨 수 있는 특단의 해법을 제시했다.

여수 참사를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중국 동포에 대한 차별이 어느 정도인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자’라는 멍에를 안고 산다. 한 번은 중국 동포인 김 아무개씨 부부가 동포의 집에 찾아왔다. 회사에서 월급을 못 받았다며 상담을 요청해왔다. 상담 카드를 작성하고 안양노동사무서에 진정서를 냈다. 얼마 후 회사의 여사장이 찾아왔는데 참 가관이더라. 김씨 부부의 진술서를 보자마자 불법 체류자라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김씨 부부가 갑자기 여사장 앞에 무릎을 꿇고 ‘월급을 받지 않겠다’며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닌가. 김씨 부부는 노동부 근로감독관 앞에서 체불임금 포기 각서를 쓴 후 눈물을 흘리며 갔다. 이런 걸 보면 대한민국이 민주국가인지 의심스럽다. 인권은 온데간데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폭행이나 사기, 임금 체불을 당해도 신고를 못한다.


이렇게 당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텐데.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나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도 많다. 문제는 한국 땅에 와서 일하다가 반한 감정을 갖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네팔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행 세 명이 길을 가는데 자전거를 탄 현지인들이 지나쳤다. 한참을 가던 현지인들이 갑자기 돌아서서 멈추더니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라고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말로 말할 테니 들어보라’고 했다. 이 사람들 얼굴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이 ×××야, 죽을래”라고 하더라. 그런 봉변을 당하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가는 곳마다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주면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차마 한국인이라고 말을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국제 결혼이 증가하면서 외국인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하는데.


한국 사회는 지금 격변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2100년에는 남한 인구가 2천3백만명으로 줄어든다. 인구 부족·노동력 부족 현상이 도래한다. 50만 외국인 노동자가 1천만명이 되는 시대로 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국제 결혼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농촌에서는  신혼 부부 세 쌍 중 한 쌍이 국제 결혼이다. 이젠 단일민족 깃발을 내릴 때가 됐다. 다민족·다문화 사회가 성큼 다가왔다. 여수 외국인노동자보호소 참사는 망신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정부 정책을 점검하고 다민족 미래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를 막는 방안은 없는가?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불법 체류자를 없애면 된다. 허나 우리 정부는 단속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전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강압적인 방법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언제까지 이런 방법을 지속할지 정부에 묻고 싶다. 2005~2006년에 중국과 옛 소련 동포들에 대해 자진 출국하는 정책이 시행된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 출국했다. 다시 들어오면 3년 동안의 체류와 취업을 보장해줬다. 이때 중국 동포 중에서 불법 체류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 국내에는 20여 만명의 불법 체류자가 있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남아 있는 동포에게도 비슷한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자진 출국한 후 재입국할 경우 3년간 취업을 보장해준다면 나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또 이 사람들이 다시 들어올 때는 100% 오지 않고 상당수는 떨어져나간다. 현지 정부가 내보내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국내 산업 현장에서 3D 업종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산업 현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산업 현장에서 3D 기피 현상은 심각하다. 사업주들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불법으로라도 외국인을 쓰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차별을 당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100만~1백50만원 정도다. 건설 현장의 경우 2백만~3백만원 이상을 받는 곳도 있다. 기업주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자진 출국 후 재입국 정책을 환영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말에 능숙하고 숙련공들이다. 이 사람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당장 수출에 문제가 생긴다. 시급한 문제는 불법 체류를 합법 체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고용 관계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기업주가 처벌받는데.


현행법상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기업인은 3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사법 당국은 그걸 적용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엄격한 사법적 잣대를 대면서 사업주는 처벌하지 않고 있다. 형평성을 잃고 있다. 사업주와 노동자는 공생 관계인데 일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만 체포·수용·추방하고 있다. 이건 잘못이다. 강력한 단속으로는 문제가 절대 해결이 안 된다. 자진 출국과 기업주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을 해야 한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도 많지 않은가.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음 한국에 오면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게 바로 ‘문화 갈등’이다. 그중 하나가 언어 문제다. 4, 5년 전 여의도에 있는 공장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이 진화하고 수색하는데 2층 구석에서 새까맣게 탄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이야’라는 말을 몰랐던 것이다. 김포에서는 네팔인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펜잘’을 먹으라고 했는데 ‘벤졸’을 먹고 쓰러진 적도 있었다. 위 세척을 해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농담 같은 실화다. 말 한마디 못해서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당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한때는 심한 착취와 차별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악덕 기업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친절하고 형제처럼 대해주는 기업주도 많다. 단지 이해관계가 서로 맞닥뜨리면 악랄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몇 사람의 기업주들이 미꾸라지처럼 방죽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사람 하나를 두고 마치 전체 기업주가 다 그런 것인 양 침소봉대한다. 한국의 인권 유린이 심하면 왜 다시 오려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코리안 드림’을 이룬 외국인 노동자들은 얼마나 되는가?


상당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 간다. 돈을 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돈 벌고 돌아간 사람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오게 해달라고 한다. 중국에서 받는 한 달 월급을 한국에서는 하루면 벌 수 있다. 그러니 기를 쓰고 한국에 오려고 한다. 숱한 사기 피해를 당하고 밀입국까지 하면서 말이다.


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토록 헌신적인가?


1980년대 말에 수출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대체 노동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취업이 빈번했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취업하고 있는 현장에서 인권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외국인 노동자들이 나를 찾아왔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소문이 퍼졌다. 갑자기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혼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주변의 뜻있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만든 게 1994년 10월에 설립된 ‘외국인 노동자의 집’이다. 본격적인 활동은 이때부터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100건 해결하면 1천 건의 문제가 생겼다. 법을 만들거나 제도를 바꾸어야지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전국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지원 단체들을 소집하고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 단체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은 어떻게 운영하는가?


대다수 불법 체류자들은 병에 걸려도 병원을 이용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없을뿐더러 비싼 진료비를 낼 만한 여유가 없다. 병에 걸릴 경우 대책 없이 몇 날이고 앓고 난 후에 자연 치유되기를 바라다가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게 된다. 실제 한 중국 동포의 경우 못에 찔린 후에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채 파상풍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일요일마다 진료소를 열어 무료 진료와 무료 투약을 했지만 응급 환자나 입원 환자, 수술 환자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병원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모든 직원이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에서 의사가 병원을 차려도 망하는데, 목사가 병원을 차리면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7월22일 ‘외국인노동자 전용 의원’을 설립했다. 현재 병원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만 받는다. 진료에서 수술까지 모두 무료이다. 현재 전문 의사 5명을 비롯해 직원 20여 명과 자원 봉사 의료진 100여 명이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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