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 길 맞아?"
  • 조재민(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3.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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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만드는 '새로운 국가' 놓고 정체성 고민

 
푸틴 대통령이 만드는 새로운 러시아의 진로를 놓고 말이 많다. 민주주의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옛 공산주의로 회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들은 도로의 좌측 차선을 달린다고 생각하는데 정부는 우측 차선을 가고 있다고 본다. 차선 변경이 쉽지도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중앙 차로를 질주하는 형국이 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티우스가 최근 쓴 칼럼에서 러시아의 진로를 고속도로에 비유해 풍자한 대목이다. 러시아 관리들은 공산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모스크바는 크리스마스 네온처럼 휘황찬란하다. 하지만 네온 불빛 뒤에는 옛 소련 시절의 경찰국가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질서를 사랑하는 국민들도 이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민주주의는 낯설고 과거 회귀는 싫고…


고유가로 돈을 번 러시아인들은 국가의 정치적 방향에 대해 잠시 무감각해졌다. 나라의 종착역에 대한 인식이 없다.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가? 중국, 미국, 스웨덴? 도대체 이 꼴이 무엇인가. 이대로 갈 수는 없다.” 한 기업인의 푸념이다. 러시아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싫증을 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 만개했던 완전한 민주주의 시대의 나쁜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광풍의 시대였다. 국민의 예금은 바닥이 나고 거리에서는 깡패들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정부는 술 취한 대통령에 의해 비틀거리고 그 대통령의 측근들은 부패의 꿀맛에 취했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향유할 준비가 안 된 러시아를 오염시키고 파괴했다. 그래서 푸틴이 러시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러시아의 정치적 수수께끼는 누가 푸틴의 뒤를 잇느냐 하는 문제이다. 푸틴의 2기 임기는 2008년에 끝난다. 그의 인기는 매우 높다. 그는 3선 출마를 할 수 있으나 3선 임기를 제한하는 새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말한다. 후계자로는 부총리 등 3명이 거론되지만 누가 되든 러시아의 체질에는 아직 맞지 않는 민주주의에 낯이 설다. 러시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로 한 푸틴의 결정이다. 크렘린의 일부 세력은 WTO 가입에 반대했으나 푸틴은 용단을 내렸다. 러시아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부패가 걸림돌이다. 푸틴의 한 측근은 “인내하면 서서히 변할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시사를 던졌다.
고유가는 소비 붐을 촉진했으나 축복만 따르지는 않았다. 거대한 국영 석유회사와 가스회사들은 경제와 정치를 좌우하고 그 중심에는 푸틴의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 에너지 정치와 민주주의 정치가 잘 조화되지 않는 것은 숙명이다. 푸틴의 1기 임기 중 총리를 역임하고 지금은 푸틴 비판자로 변신한 미하일 카샤노프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를 포기하지 말고 정상적인 민주국가로 대해달라”고 부탁한다. 민주화의 길로 가라는 서방의 압력이 일시 효력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의 어느 차선을 달리느냐 하는 문제는 어차피 러시아인들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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