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빠진 로또 복권에 대박 거품을 띄워라"
  • 로스앤젤레스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3.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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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 판매 실적 줄자 대책 찾기 고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사는 애크리지 씨는 자칫했으면 5천만 달러(약 5백억원)를 휴지로 만들 뻔했다. 그는 지난 2005년 9월24일 캘리포니아 주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으나,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로또 복권을 사면 항상 자신의 컴퓨터에 번호를 입력해놓고 당첨 발표를 기다렸던 그는 발표 당일 실망했다. 그러나 당첨 복권 판매소가 자신이 복권을 구입한 장소와 같은 것을 신문에서 보고 로또 번호를 재확인하다가 자신이 당첨된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에 로또 번호를 틀리게 입력했던 탓이다. 애크리지 씨는 당첨금으로 큰 집을 사서 이사하고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 펀드를 만드는 등 갑자기 부자가 된 기회를 마음껏 활용했다.
애크리지 씨의 경우는 로또에 매달리는 미국 대다수 국민이 꾸고 있는 가장 환상적인 꿈 가운데 하나다. 물론 로또에 당첨된 후 패가 망신하거나 오히려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빠져 더욱 불행해진 경우도 많지만 매주 두세 번씩 주어지는 이같은 일확천금과 벼락부자의 행운은 다수 미국인들에게는 버리지 못하는 유혹이다.
특히 이번 주같이 메가 밀리언 로또의 당첨금이 3억7천만 달러(약 3천7백억원)를 넘어서는 등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할 경우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지역의 리커스토어 등 로또 판매소에는 때 묻은 1달러 지폐 몇 장을 꼬깃꼬깃 꺼내 들고 떨리는 손으로 로또를 구입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로또를 향한 신판 아메리칸 드림은 도박이 연방 차원에서 합법화된 지난 1990년 이후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이제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유타·플로리다·하와이를 제외한 47개 주에서 도박을 허용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를 두고 ‘도박 합중국’이라고 불렀다.


 
판매액으로 충당되는 교육 예산도 덩달아 줄어


로또의 경우는 주정부가 주민들을 상대로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카지노가 아닌 로또 형태의 도박은 주정부가 직접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로또 합중국’에서 요즘 로또 개혁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곳은 캘리포니아 주다. 주 로또위원회는 최근 긴급 이사회를 열고 로또 개혁안을 토의했다. 지난 6개월간 캘리포니아 로또의 판매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주정부 예산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또 판매액은 지난해 36억 달러에 달했으나, 실적이 저조해짐에 따라 올해 예산을 32억 달러로 내려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같은 실적 저조는 캘리포니아 주만이 아니라 로또를 실시하는 미국 각 주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캘리포니아 로또는 판매 대금의 34%를 주 교육 예산에 할당해 교육 재정을 돕고 있다. 따라서 지난해 교육 재정 지원금은 12억9천만 달러에 달했으나 올해에는 11억3천만 달러로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주 교육청은 갑자기 4억 달러(약 4천억원)의 예산 삭감이라는 파편을 맞은 셈이다.
로또 판매가 저조해진 것은 지난 6개월 동안 거의 매주 당첨자가 나오면서 당첨금 누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로또는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당첨금을 다음 회로 이월한다. 따라서 기본 7백만 달러의 당첨금은 몇 차례에 걸쳐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슈퍼 로또 플러스는 이번 주 당첨금이 4천만 달러에 달했고 13개 주가 연합해 주관하는 메가 밀리언은 이번 주 2억7천만 달러로 급상승했다. 따라서 이번 주 로또 판매 실적이 다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언제 다시 로또 열기가 식게 될지 몰라 걱정하고 있다. 로또는 당첨금 액수가 크지 않으면 구매 의욕을 별로 자극하지 못한다. 당첨금 액수가 크면 몇 달러의 투자를 별로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또 주 교육 재정에 기여한다고 자위도 한다. 그러나 액수가 작으면 그 몇 달러도 아까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첨금 액수가 크든 작든 당첨 확률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첨금 액수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로또를 구입하는 구매자는 기본 당첨금 7백만 달러도 큰돈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대신 이들의 로또 구입액은 크지 않다. 그러나 당첨금이 많아지면 한 번에 몇 백 달러씩 쓰는 투기형 로또 마니아도 늘어난다는 것이 로또 판매소측의 분석이다. 당첨금의 액수는 구매력과 1인당 구매액 상승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지난 1992년 버지니아 주 로또에서는 호주 사람들로 구성된 로또 구입 컨소시엄이  전체 숫자 조립 가능 7백10만 개 가운데 34%에 달하는 2백40만 개 번호의 로또 티켓을 한꺼번에 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 로또위원회는 최근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당첨금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는 획기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또 현재의 슈퍼 로또 플러스와 메가 밀리언 외에 또 다른 방식의 로또를 도입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 교육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이고 있다.
학계에서도 로또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매사추세츠 주 윌리엄스 칼리지 경제학과의 빅터 매티슨 교수나 일리노이 주 레이크 포리스트 칼리지 경제학과 켄트 그로우트 교수 등은  최근 미국 로또의 실적 저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첨금을 통한 구매자 이익 환원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로또가 다른 도박 게임에 비해 당첨금을 통한 이익 환원 비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구매자가 의욕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매티슨 교수와 그로우트 교수는 미국 34개 로또의 1만8천 개의 당첨 번호를 분석한 공동 논문에서 로또의 당첨금 비율이 최저 40%에서 최고 60%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다른 도박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티슨 교수 등은 또 일부 주의 현행 로또 판매는 개인이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형 투기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의 로또는 판매소에서 컴퓨터로 찍어내는 티켓 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방식으로는 호주인 로또 구매 컨소시엄 같은 대형 구매자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대형 구매자가 참가해야 판매 실적을 올리고 당첨금 액수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매티슨 교수 등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비판자들은 그럴 경우 로또가 가지는 ‘만인에 대한 공평한 기회 부여’라는 공익적 부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도구밖에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매티슨 교수의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구매자를 개인으로 볼 경우에 그렇기는 하지만 구매자가 사는 번호나 티켓 한 장은 가난한 작은 손이나 부유한 큰손에 상관없이 똑같은 기회를 가진다고 반박한다.
이번 캘리포니아 주 로또 개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새롭고 획기적인 방안이 모색 중인 것은 사실이다. 로또의 대변혁이 기대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새로운 로또 골드 러시가 전국으로 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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