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에서 하얀 세상을 읽다
  • 황정일(언론인) ()
  • 승인 2007.03.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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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마차메 루트 '희열과 고난의 96km 산행' 실패기

 
케냐의 나이로비를 떠나 카타르의 도하까지 5시간, 또 11시간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월28일 오후 6시 인천공항, 아내와 아들 내외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이번 원정에 참가했던 15명 전원이 입국장에 들어선 것을 확인한 산행 인솔자가 등정에 성공한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해 ‘킬리만자로 등정 확인서’를 나누어 주었다. 등정에 성공한 11명은 희희낙락.
 
별이 쏟아지던 자정쯤, 캠프를 출발해 돌너덜 비탈길을 오르면서 다섯 걸음 걷다가 쉬고, 세 걸음 걷다가 쉬고, 그러다가 두 걸음 걷고 고꾸라지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던가? 눈앞에 집사람과 아이들, 무사 산행을 기원해준 친구들 모습이 어른거렸지만, 숨이 차고 가슴이 쥐어짜듯 아픈 것을 어떻게 하는가? 출발 3시간 만에 해발 5천m 지점에서 되돌아선 내 이름은 당연히 호명되지 않았다. 개선장군을 맞으려던 식구들 앞에 졸지에 낙방생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챈 아들 또래의 인솔자가  미안했던지 내 손을 붙들고 울상인 채 놓지를 못했다. “킬리만자로 정상을 밟겠다”라며 장도에 올랐던 나의 초라한 귀국 모습이다.
킬리만자로까지의 여정은 길고도 고단했다. 그래도 투지만은 뒤지고 싶지 않았다. 30년 넘게 국내의 웬만한 산을 골고루 밟아본 처지가 아닌가.  밤 10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카타르항공 QR889편이 14시간을 날아 다음날 아침 6시40분 도하에 도착했다. 나이로비 공항까지 또 5시간 비행. 버스를 달려 케냐와 탄자니아를 가르는 국경 마을 나망가를 거쳐 6시간 만에 탄자니아 아루샤의 호텔에 도착한 것이 저녁 8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29시간. 정말로 먼 길을 왔다. 유럽에서는 수도 다르에스살람의 국제공항까지 직항로가 운행된다고 한다. 킬리만자로는 5천m가 넘는 고산 중에서 아마추어들이 특별한 장비 없이도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산이다. 낮에는 강한 직사광선이 내리쪼이지만, 밤이면 오리털 침낭 속에 더운 물을 채운 수통을 넣고 자야 할 정도로 춥다. 당연히 복장도 여름옷에서 겨울옷까지 골고루 챙겨야 한다. 
 
29시간이나 비행기와 버스에 시달린 나머지 이미 파김치가 된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튿날 새벽 4시에 눈을 떠야 했다. 호텔을 출발해 우리가 오를 마차메 루트의 산행기점인 마차메 게이트까지는 버스로 2시간. 차창 밖으로는 대규모 커피 농장과 바나나 밭이 펼쳐지고, 멀리 탄자니아의 또 다른 큰 산 메루(Mount Meru)가 구름 띠를 두르고 솟아 있다. 해발 1천8백m에 위치한 마차메 게이트까지 포장되지 않은 가파른 진흙 길을 오르는 낡은 지프가 헉헉대면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마차메 게이트 공원 사무실에서 입산 신고를 마치고 가이드와 포터들을 만나 산행을 시작했다. 포터들이 운반하는 짐은 20kg을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짐 무게를 막대 저울로 일일이 재느라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큰 짐들은 모두 포터들 차지가 되고 등산객들은 소형 배낭에 하루 필요한 물과 행동식, 날씨 변화에 대비한 겉옷만 꾸리면 된다. 포터 32명과 가이드·조리사 11명 등 모두 43명이 우리 일행 15명을 지원하기 위해 따라붙었다. 
 
비록 정상 등반에 실패했지만, 산행 진행 상황을 자세히 적어 뒷사람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 마차메 루트는 마랑구 루트와는 달리 산장 숙박이 아니라, 야영지에서 캠핑을 하게 된다. 길도 어찌나 험한지 가이드들은 마랑구 루트를 코카콜라 루트, 마차메 루트는 위스키 루트라고 불렀다. 산을 오른 후에는 음웨카 루트로 하산하게 돼 있어 산행 중 반대 방향으로 마주치는 등산객은 만나지 못했다. 전체 산행 구간은 무려 96km.  


하루 물 4~5 리터 마셔야 고산증 예방


 
산행 첫날, 해발 1천8백m에서 시작해 3천1백m의 마차메 캠프까지 오르는 15km의 길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고 곳곳이 질척거리는 열대우림 지대였다. 둘째 날, 3천8백40m까지 올랐다. 황량한 구릉지대로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고, 독수리만한 까마귀들이 주위를 맴돌면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셋째 날, 해발 3천9백50m에 위치한 캠프에서 묵었다. 오르내림이 심해 이날 고산 증세를 겪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넷째 날, ‘Breakfast War(아침식사 전쟁)’를 치렀다. 아침식사 후 출발하자마자 단애처럼 가파른 벼랑길을 2시간 넘게 전쟁 치르듯 올라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올라온 길만큼 다시 내려가 계곡을 건넌 후 급하게 치솟은 자갈길을 미끄러지면서 올라 해발 4천2백m에 있는 카랑가 캠프에 도착했다. 캠프 주변에는 물이 없었다.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 물을 머리에 이어 나르는 포터들 모습이 보였다.
 
다섯째 날, 정상 공격 전 마지막으로 묵게 될 바라푸 캠프가 위치한 해발 4천6백m까지 올랐다. 몰아치는 바람 사이로 구름은 저 아래에서 피어오르고, 날씨는 수시로 변해 햇볕이 따뜻이 비추다가도 갑자기 어두운 그늘이 드리면서 한기를 몰고 왔다. 몇 시간 후의 정상 등반에 대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바람 소리에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여섯째 날 자정쯤, 바라푸 캠프(해발 4천6백m)를 출발해 정상인 우후르 피크(5천8백95m)에 갔다가 캠프로 되돌아오는 데 12시간쯤 걸린다. 점심 식사 후 하산. 마지막 야영지 음웨카 캠프까지 5시간을 또 걸어야 한다. 실로 엄청난 강행군이다.
킬리만자로의 등정 성공률은 70%라고 한다. 등정에 실패한 사람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고산증 때문이다. 해발 3천m 이상이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산증세가 찾아온다. 고도에 빨리 적응해야 심한 고생을 피하고 계속 전진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천천히 걸으면서 고도를 높이고, 하루 4~5리터의 물을 마시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고산증 예방약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 이뇨제인 다이아목스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비아그라를 25mg씩 하루 두 번 복용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글도 읽었다. 나는 마지막 캠프에 오르기까지 구토나 두통 등 전형적인 고산증세를 겪지 않았다. 결국 출발 때부터 몸에 달고 간 감기가 결정적 원인이었던 것 같다. 산에서 지낸 1주일 내내 기승을 부리던 내 기침소리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잠을 설쳤을 정도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 마을 나망가에 마주한 두 나라의 출입국신고소 창구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주위에는 별별 조잡한 관광 민예품들을 팔려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일본말로 인사를 건네다가, 난데없이 “차두리, 홍명보” 하면서 관심을 끌려고 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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