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백병전' 끝없는 한, 중, 일 '역사 전쟁'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3.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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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왜곡 싸고 각국 해커, 네티즌 공방 치열

 
한국·중국·일본 3국 간의 사이버 역사 전쟁이 한창이다. 동북공정, 독도 영유권, 교과서 왜곡, 종군 위안부 등 역사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민족주의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평화 공존을 외치고 있지만 온라인에는 평화가 없다. 휴전도 없다. 사이버 역사 전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현재 네 개의 전선이 구축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자국을 알리고 지명 오류와 역사 왜곡을 바꾸는 ‘민간 외교사절단’, 해커를 통한 해킹과 서버 장애를 일으키는 ‘민간 해커부대’, 역사 왜곡 게임이나 UCC 동영상을 제작·유포하는 ‘게임·동영상 부대’, 사이버 개미군단으로 불리는 ‘네티즌 부대’ 등이다.
국내 사이버 역사 전쟁의 총사령부 격은 ‘반크’(www.prkorea.com)이다. 1999년에 출범한 반크는 조직적인 대응 체제를 갖추고 있다. 겉으로는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을 표방하고 있으나 대응력은 정부를 능가한다. 반크는 그동안 해외 유명 웹사이트와 교과서 등 3백 곳의 지명 오류 및 왜곡을 시정했다. 올해 들어서는 영국 BBC의 일본해 단독 표기 오류를 발견해 고치도록 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내세워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자 ‘고구려 부흥 프로젝트’로 맞섰다.
때문에 반크는 일본과 중국 해커들의 집중 표적이 되었다. 구글어스의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정정한 후 일본 네티즌들에게 난타를 당했다.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는 ‘반크와 싸우자’며 싸움을 부추겼다. 결국 반크는 일본 우익 단체로 보이는 해커들의 공격을 받아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수난을 겪었다.
3국 간 해커 전쟁은 조직적이고 파괴력은 엄청나다. 해커들의 싸움은 ‘너 죽고 나 살자’식이다. 서버가 마비되면 중요 자료가 손실되고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 기간이 걸린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의 해커들은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일 양국 정부도 중국 해커들을 경계 대상 1호로 삼고 있다. 중국 민간 해커들은 ‘홍커’라는 명칭을 내걸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1980년에 탄생한 ‘중국 홍커 연맹’은 10만명에 이르는 해커를 거느리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일본과 중국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 반크뿐만 아니라 독도 관련 홈페이지가 공격 대상이 되면서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중국의 해커들은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국방연구원·원자력연구소 등을 집중 공격했다. 공공 사이트뿐 아니라 민간 단체·대학·기업체 사이트 등이 중국 해커들의 무차별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역사 왜곡 교과서를 펴낸 일본 후쇼샤 출판사 등 우익 사이트도 중국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 일본 해커들의 반격도 잇따랐다. 아직 일본 해커들의 정확한 규모가 파악된 것은 없다. 다만 독도 관련 우익 단체 사이트가 1천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북도에서 운영하는 ‘사이버 독도, 독도는 우리땅’ 홈페이지(www.dokdo.go.kr)가 일본 해커 그룹에 의해 해킹을 당했고, 독도본부의 홈페이지(www.dokdocenter.org)가 해커들의 공격을 받고 다섯 차례나 다운되었다.


 
한국, 반크·515 부대 등 민간 조직 맹활약


독도본부는 해킹에 대비해 서버의 성능을 강화하는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독도본부 서영하 국장은 “일본 해커들의 공격에 대응해 철저를 기했다. 신 한·일 어업협정 파기 운동을 벌이면서 일본과 대립이 불가피했다. 온·오프 라인을 병행해 반드시 협정 파기를 이끌어내겠다”라고 말했다. 2001년에는 중국과 일본 해커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515 부대’가 창설되었다. 부대원은 대학생과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515 부대는 소스분석팀, 침투팀, 보안관제팀으로 팀을 꾸려 중국과 일본의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고 있다. 반크 박기태 단장은 “해커들을 통해 상대국의 서버를 공격하는 것은 비신사적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안 되고 명분도 잃게 된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싸워야 승산이 있다”라고 말했다.
예비군 부대로 일컬어지는 3국 간 네티즌들의 싸움은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한다.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가 싸움이 발발하면 총동원령이 내려진다. 최근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위안부 망언을 놓고 한·일 네티즌들이 격돌했다. CNN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양국 네티즌들이 총동원된 것은 물론이다.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각종 포털 사이트와 메신저, 쪽지, 방명록 등을 통해 투표를 촉구했다.
지금도 일본 네티즌들은 아베 총리의 망언을 옹호하는 패러디물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시키고 있다. 주로 한국인을 혐오 캐릭터로 묘사해 조롱하는 게시물들이다. CNN의 인터넷 설문 조사는 한국은퇴자협회(KARP, 회장 주명룡)가 CNN을 항의 방문한 후 철회되었다.
KARP 주명룡 회장은 “CNN 설문 조사는 민족 감정에 불을 질렀다. 아주 무책임하고 국수주의 색채가 짙게 깔렸으며 인종 차별적이다. 여론 호도로 양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나서면서 한·중 네티즌 간에도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지난 1월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시상식장에서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세리머니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이를 지켜본 중국 네티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고구려사를 다룬 한국 드라마까지 거론하며, ‘백두산 세리머니’를 비하하는 보복성 패러디물을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다. 이같은 중국 네티즌의 도발에 한국 네티즌이 대반격에 나서면서 반중국 감정이 확산되었다. 영화 <괴물>과 <일본침몰>을 놓고도 한·일 네티즌들이 표절 논쟁을 벌였다. 이것이 사이버 역사 전쟁의 현주소다.
최근 사이버 역사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일본은 UCC 동영상을 이용해 ‘독도 점령’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UCC 열풍을 틈타 일본의 영토 침탈과 역사 왜곡 기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동영상들이 미국의 대표적 UCC 업체인 유튜브(www.youtube.com)를 통해 전세계에 무차별 배포되고 있다. 이에 국내 네티즌들은 UCC 사이버 의병 활동으로 맞섰다. UCC 동영상 포털 사이트의 한 직원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영문 동영상 UCC’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며 역공을 취했다. 
3국은 온라인 게임을 놓고도 전쟁한다. 역사 왜곡이나 침략 역사를 미화하고 상대국을 비하하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포스터로 만든 중국 동북공정 패러디, 고이즈미 부수기, 고이즈미 멀리 차기 등이 인기를 끌며 사이버상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향후 사이버 역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예화된 블로거들을 양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크는 20만 블로거를 키울 계획이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이율곡 선생이 내놓았던 ‘10만 양병설’과 흡사하다. 반크는 정예화된 블로거들을 통해 세계의 영향력 있는 웹사이트를 조직적으로 관리할 생각이다. 한국을 알리고 왜곡된 것은 과감하게 시정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해외 동포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에서의 역사 전쟁은 한국이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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