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니
  • 서종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3.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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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한국' 받쳐줄 신수종 산업 가물가물...주력 산업들도 휘청휘청

 
앞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분야는 무엇일까? 우리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신수종(新樹種) 산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종 산업 발굴에 실패할 경우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고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종 산업이란 나무에 비유해 말하는 것으로 여러 산업으로부터 자원(뿌리에 해당하는 정보·물재·인력·자본 등)을 공급받은 다음 한 개의 독창적인 ‘줄기’로 태어나 다시 여러 업종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산업을 가리킨다.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1980년대에는 자동차산업,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IT) 산업이 각각 수종 산업의 역할을 했다.
이 가운데 IT산업은 10년 이상 우리를 먹여살리면서 경제 성장의 공신이 되었다. 이 산업도 이제는 힘이 빠지는 기색이 역력한데 이를 이어받아 경제를 키워줄 새로운 수종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동차·조선 같은 전통 산업들은 경쟁력 저하로 인해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최근 재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삼성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 커다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말에는 삼성 자체의 위기 의식과 함께 신수종 산업 부재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59조여 원으로 2년 전보다 줄었고, 순이익은 지난 2년간 3조여 원이나 감소했다. 삼성 반도체 부문의 경우만을 보아도 매출은 2004년 대비 1조5천억여 원 증가했으나, 영업이익은 2조8천억여 원으로 15%가량 감소했다. 휴대전화와 LCD,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 등의 사업 부문은 이미 성장 모멘텀을 만들지 못하고 있어 4년간 적자 상태인 생활가전 사업을 개발도상국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 주력 사업이었던 휴대전화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1% 줄고 영업이익은 무려 28%나 감소했다. 이에 비해 노키아는 올해 시장점유율을 36%까지 높이고, 소니·에릭슨은 8%까지 확대하면서 ‘삼성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 전망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한국은행은 얼마 전 공개한 <주력 성장산업으로서 IT산업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들 IT 제조 업종이 1990년대 이래 주력 성장 산업으로 떠올랐지만 최근 경쟁력이 약화될 조짐을 보이는 데다 IT 수출 증대가 투자와 소비 등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어 새로운 주력 업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믿은 IT산업도 서비스업 취약해 ‘한계’


한국은행이 지적한 IT산업의 문제점은 △부품 소재 산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구조적으로 취약하고 △경제 전반에 걸쳐 IT 활용도가 낮으며 △생산·고용·소득 창출원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고 △반도체·휴대전화·LCD 등 주력 IT 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등 네 가지이다. 특히 우리나라 IT산업이 IT 제조업에 크게 편중되어 있어 통신·소프트웨어 등 IT 서비스업 발달이 미국 등 IT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약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IT산업 내에서 IT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부가가치 기준)은 미국이 73.4%, 일본이 61.1%에 달하지만 한국은 36.2%에 불과하다. 컴퓨터 등 제조업이 주력 업종이던 미국 IBM이 IT 서비스 제공 업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제조업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IT 자본이 실물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 또한 크게 낮아졌다. IT 수출이 늘어나면 중소기업의 매출과 고용 인원의 증가가 동반되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국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에 달했지만 실제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국내총소득(GDI)이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도 IT 수출 증가가 일반 국민들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IT 경기가 호조를 보여도 경제 전체로는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지 못하고 외부 여건 변화에 따라 쉽게 하강 국면으로 전환된다. 이같은 현상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IT 제조업을 특화한 타이완·싱가포르 등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된다”라고 말했다.
IT산업의 한계와 이에 따른 신수종 산업 발굴에 대한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초기인 2003년에도 정부와 기업은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한다며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정부는 디지털 TV 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하이브리드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4G 단말기, 홈 네트워크, 디지털 콘텐츠·SW 솔루션, 2차 전지, 바이오 신약 등을 10년 후 10대 신수종 산업으로 선정하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각자의 장기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03년 사장단 회의에서 “앞으로 10년 후가 고민이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핵심 역량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기존 사업에 대해 꾸준한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P램, 3차원 TV, 무선 주파수 인식장치(RFID) 등과 같은 첨단 제품들을 개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LG그룹도 매년 기술 개발 투자의 60%를 이동 단말기와 디지털 TV·평판 디스플레이 등의 중점 육성, 신규 사업인 홈 네트워크, 미래 사업으로 선정한 카 인포테인먼트, 모바일 AV 등에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은 미래형 자동차 개발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양산 기반 구축에 사활이 걸렸다고 보고 2010년 연료전지 자동차의 본격 상용화에 들어가 초일류 자동차 메이커로서 위상을 확고히 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금은 그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재계의 신수종 산업 프로젝트에 대한 중간 점검에 나서야 할 시점이지만, “앞이 캄캄하다”라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의 걱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프로젝트 추진이 신통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복합적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이 구두선에 그친 점을 꼽을 수 있다. 지원은커녕 오히려 반(反)시장 정책으로 기업의 뒷다리를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기업 내부 사정과 시장 환경도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게다가 원화 가치가 급등해 수출 경쟁력이 악화된 상태에서 일본 업체들의 거센 반격을 받아 해외 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당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미래를 이야기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지 모른다. 기업들은 지금 절박한 처지이다. 이제까지 성장을 이끌어왔던 산업은 머지않아 중국·인도 등 후발국에 넘겨주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다.
신수종 산업 발굴은 단순한 기업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 직결된 국가적 프로젝트이다. 늦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5~6년 후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커다란 혼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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