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 아줌마’ 그 미완의 아리랑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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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의 조선족 여성은 ‘옌볜 아줌마’로 통한다. 결혼과 나이를 떠나 조선족은 누구나 ‘옌볜 아줌마’이다. 한국에 입국한 중국 동포 여성의 70%가 중국 연변(延邊), 중국 발음으로는 옌볜 출신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농어촌 남성의 40% 정도가 조선족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 여성과 결혼했다. 농어촌 새색시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 여성인 셈이다. 한국으로 시집온 조선족 여성은 1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국제 결혼 10명 중 7명은 조선족 여성을 배필로 삼았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 비율이 조선족 여성을 앞질렀다. 
서울 가리봉동 지역에 ‘옌볜촌’ 형성
한국 사회에서 옌볜 아줌마는 도시와 농촌 어디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다. 말투만 들어도 ‘옌볜 아줌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농촌 지역에서는 조선족 출신의 여성 이장도 탄생했다. 옌볜 출신의 아줌마 선생님이나 중국어 강사들도 많다.
옌볜 아줌마의 파워도 커지고 있다. 옌볜 아줌마의 힘을 이용하려는 종교 단체도 생겨났다. 서울 가리봉동 중국인교회 최황규 목사가 중국계 결혼 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펼치는 유권자 운동이 그것이다.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계 이민 여성들이 힘을 합쳐 대통령을 선택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최목사는 “한국으로 시집온 중국계 여성들의 지위와 권리 향상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라고 강조한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는 조선족 여성이 없으면 일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식당 종업원과 파출부는 이미 옌볜 아줌마들의 전용 직종이 되다시피 했다. 목욕탕 때밀이, 안마사, 모텔 청소부, 공사장 인부 등도 옌볜 아줌마들이 차지했다. 퇴폐 업소로 불리는 안마 시술소, 퇴폐 이발소, 술집 등에도 조선족 여성의 진출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조선족 집단 거주지를 중심으로 조선족 여성을 고용한 유흥 업소가 성행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서울 금천구 가리봉동의 옌볜촌에는 야릇한 광고전단 수천 장이 뿌려졌다. 승용차 유리, 전봇대, 조선족들이 자주 이용하는 전화방 등에 도배하다시피 붙여놓는다. 중국 황실 마사지를 선보인다는 신종 업소의 광고이다. 업소 관계자는 “중국에서나 받을 수 있는 마사지를 선보이는 것이다. 한족과 조선족 안마사가 항시 대기 중이다.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퇴폐 업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옌볜촌 거리에서 만난 조선족 남성은 “조선족 집단 거주지에 이런 전단이 나도는 것은 조선족 남성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돈을 벌겠다는 얄팍한 상술이다”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조선족들 사이에 돈이 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에 온 조선족 여성들의 삶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한국인과의 마찰이나 갈등 또한 심각하다. 조선족과의 국제 결혼은 농촌 총각들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했다. 반면 위장 결혼에 의한 폐해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조선족 여성의 상당수가 한국에 입국하는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조선족 여성이 입국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조선족 여성이 다시 중국에 가서 한국 입국을 희망하는 여성을 모집한 후 한국 남성과 위장 결혼을 중개하는 방식이다. 또 조선족 여성을 속여 한국의 저학력자나 장애인, 고령자 등과 결혼시키는 사례도 없지 않다.
행복한 신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함으로써 결국에는 가정 파괴를 초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소송 당사자의 한 쪽이 한국인인 국가별 가사 소송을 보면, 중국 국적자를 상대로 한 소송이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조선족 여성들이 이혼 소송을 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적법상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 2년의 유예 기간이 지난 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데, 남편의 귀책 사유로 이혼할 경우에는 곧바로 귀화 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핏줄인데’ 하는 민족적 동질감으로 결혼했다가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의사 소통 문제·문화 차이로 갈등 빚기도
위장 결혼이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국제 결혼 가정이 의사 소통 불편과 문화적 차이로 갈등을 겪고 있다. 가정 불화와 2세 교육 부실, 사회 부적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조선족 여성들은 가정 불화의 불씨로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와 남존여비 사상, 잦은 집안 행사 등을 꼽는다.
옌볜대학 김호웅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조선족 여성은 한국 사회에 들어가면 안절부절못한다. 한국 남자들은 중국에 와서 청혼할 때는 극진한 태도를 보이면서 성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무서운 지아비로 변해 아내를 종처럼 부린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국제 결혼으로 꾸려진 가정이 모두 불화를 겪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의 국제 결혼 가정이 이런 문제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6월 옌볜에서 전북 고창으로 시집온 김길려씨(24)는 가정 불화 때문에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결혼 후 9개월 동안 두 번이나 가출했다.
스무 살이나 연상인 남편의 잦은 음주와 폭행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와 가족들의 무관심도 김씨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시댁에서는 가정 형편이 어렵다며 김씨를 일터로 내몰았다. 김씨는 “공장에서 한 달에 80만원을 받고 일했다. 집에 돌아오면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느라 하루 종일 중노동에 시달렸다. 더 이상 남편과 살고 싶지 않다”라며 울먹였다.
전북 익산의 전우영씨(41)는 조선족 여성과 결혼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전씨는 2005년 국제 결혼 중매 업체를 통해 옌볜 처녀 리종미씨(28)와 결혼했다. 리씨는 결혼 후에도 아이 갖기를 꺼려 했다. 3개월쯤 지나자 옌볜에 있는 가족들을 하나 둘씩 한국으로 불러들이더니 결혼 7개월 만에 가출해 행적을 감추었다. 전씨는 결혼 비용과 리씨 가족들의 초청 비용 등으로 엄청난 돈을 썼다. 한동안 우울증 증세를 보일 정도로 상처가 컸다고 한다. 
 

조선족 여성들이 취업한 일터에서 한국인들과의 마찰도 심하다. 조선족 여성들은 무시당한다는 피해 의식이 강하다. 같은 동포인데도 사사건건 차별과 무시를 한다며 불만을 쏟아놓는다. 동포를 껴안지 못할망정 툭하면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해대는 데 분노한다는 것.  
반면 한국인들은 일부 조선족의 촌스러움에 고개를 흔든다. 사소한 장난이나 농담에 화를 내는 것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조선족 여성은 자기 주장이 강하다. 자기가 할 일만 한다. 고분고분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 구의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씨는 “인건비가 싸서 조선족 여성을 고용했는데 도무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무얼 시켜도 가만히 서 있다. 손님들이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고, 상냥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조선족을 입주시켜 가정부로 쓰고 있는 한국인 가정의 불만은 더 심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양현아씨(31)는 지난 1월 인력업체를 통해 조선족 입주 베이비 시터로 성미화씨(43)를 고용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청소같이 간단한 가사 일을 하는 조건으로 한 달에 1백20만원을 주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성씨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씨에게 하는 말이 반말 명령조로 바뀌더니 아이를 본다는 핑계로 청소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씨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보면 성씨는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곧바로 자기 방에 들어간 후 아이가 울어도 본체만체 했다고 한다. “아이를 아줌마 방에 재우는데, 새벽에 아이 울음소리가 나서 들여다봤더니 내게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을 해댔다. 아이에게 화풀이할까 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입주 베이비 시터의 또 다른 문제는 아이의 정서와 언어가 조선족 여성을 닮아간다는 데 있다. 언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옹알이를 시작하는 갓난아이에서 한창 말을 배우는 유아까지 조선족의 언어 습관을 쉽게 몸에 익힌다는 것이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슴니다’ 억양을 쓴다. 
한국 내 조선족들이 늘면서 조선족끼리의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조선족 타운에 위치한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가리봉동 옌볜촌 등 조선족 거리가 왁자지껄해진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휴일에는 더욱 활기가 넘친다.
한국 문화에 동화되기보다는 자신들의 문화를 한국에 만들어놓고 살자는 인식이 강하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입국이 많아지면서 끼리끼리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입주 베이비 시터로 일하는 김선화씨(51)는 주말이면 대림동으로 나간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이다. 
‘중국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역사적인 단절과 체제가 다른 데서 오는 것이다. 조선족이 한국에 온 것은 잘살기 위해서이다. 우리 사회가 좀더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을 드나드는 조선족이 늘면서 중국 조선족 사회에도 적잖은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들에 따르면 한국에 갔다 온 부부 사이에 ‘과거는 묻지 말라’는 유행어가 생겼다고 한다. 부부 간에 성적인 갈등이 생겨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지 동포 신문에는 어머니를 빼앗아가는 한국이 싫다는 초등학생의 글이 자주 실린다고 한다. 부모의 한국행이 늘면서 아이들의 학력 저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동포 사회에서 한국은 빛과 그늘이 교차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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