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계자 4명 놓고 저울질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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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이해찬·유시민·김혁규 ‘관리’…비타협 노선 유지할 ‘순혈주의자’ 낙점할 듯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후보 관리는 뺄셈이 특징이다. 유력한 주자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설정한 시대 정신에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반열에서 탈락시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후계자를 지명하고 싶은 욕심이 있음에도 레임덕에 들어서면 한 발짝 물러서 대선 주자들을 관찰해온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도대체 누가 ‘노무현의 후계자’일까?
노대통령의 가지치기는 가차 없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여권에서 여론조사 1위였던 고건 전 국무총리도 ‘실패한 인사’였다는 한마디로 끝났다.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도 “입각시켰다가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라며 빗장을 걸었다. 꼭 노대통령의 견제 때문은 아니지만 정·김 두 사람의 지지도는 이후 단 한번도 5%를 넘은 적이 없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 대해서는 “보따리 장수”라고 일갈했다. CBS 조사에 따르면 탈당 직후 10%에 이르던 손 전 지사 지지도가 탈당 1주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서 7.6%로 나타났다.
노대통령의 손 전 지사 비난에 대해 청와대는 “낙선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3당 합당에 반대하고 부산에서 연거푸 출마하는 등 원칙과 소신을 지켜온 노대통령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예비 대선 주자를 비난하는 데에는 ‘신념’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 노대통령이 야권 후보를 그냥 놓아둘 리 만무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대해 “타당성이 있겠느냐”라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는 “시대 정신에 맞는다고 보느냐”라며 정면으로 공격했다. 게다가 범여권이 목을 매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에 대해서는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를 잘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폄하했다. 사실 정 전 총장은 노대통령과 궁합이 맞는다고 보기 어렵다. 노대통령의 철학인 교육 3불 정책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사사건건 노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전력도 있다. 그 밖에 박원순 변호사는 대선 출마를 고사하고 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지명도가 너무 떨어진다.
노대통령은 “정치인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노대통령 마음속의 ‘정치 대통령’을 찾으면 된다. 노대통령의 가지치기에서 아직 살아 있는 정치인들을 살펴보면,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대통령이 계획적으로 경력 관리를 해왔다는 점이다.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유장관은 열린우리당의 극구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케이스다.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역시 국회가 불신임했는데도 버티고 버티다 경질했을 정도다. 김혁규 의원은 최근까지도 총리 후보였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은 여성 첫 법무부장관을 지내고, 퇴임 후 인권 대사로 세계를 누볐다. 한때 정동영 전 의장을 통일부장관으로, 김근태 전 의장을 보건복지부장관에 기용한 것과 같은 방식의 경력 관리다. 비록 열린우리당은 탈당했지만, 열린우리당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자신이 낙점한 후보를 내세워 재집권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이 때문에 고건·손학규 같은 외부 인물이 열린우리당을 침범해 자신의 성역을 훼손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노대통령이 경력을 관리해온 인물 중 네 사람이 유독 눈에 띈다. 우선 한명숙 전 총리. 박정희 정권 때 남편과 감옥에 함께 갇히는 수난을 당했다. 남편은 대표적 좌익 사건으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래서 한 전 총리는 ‘박근혜 대항마’로 지목된다. 박정희 정권 시절 ‘가해자(박근혜)’와 ‘피해자 (한명숙)’ 대결 구도로 가자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히든 카드로 볼만하다. 이해찬 전 총리는 최근의 역할이 주목된다. 북한을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타진했고, 곧 2차 방북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충청권 출신이다. 노대통령의 궂은일을 떠맡았고, 총리 재임 중에는 보수 신문들과의 싸움에 앞장섰다. 노대통령이 전투적 후보를 원한다면 그를 배제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유시민 장관은 노대통령의 ‘심기(心氣) 경호실장’이다. 노대통령이 재집권을 추구하되, 만약 실패할 경우 노대통령의 분신인 열린우리당을 야당으로 지켜낼 적임자를 찾는다면 유장관만한 인물도 없다. 아마도 지금처럼 범여권 후보들의 지리멸렬한 상황이 계속되면, 노대통령은 불확실한 외부 후보보다 유장관 같은 ‘정치 동업자’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혁규 의원은 경남 출신으로 지역적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 만약 호남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가 필요하다면 그가 눈길을 끌지 모른다.
노대통령, 대선 ‘관객’이 아니라 ‘연출자’
노대통령의 차기 후보 선택에서는 분명한 원칙이 잡힌다. 우선 노대통령의 비타협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 동시에 재집권 가능성에 근접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재집권 가능성이 작다면 ‘야당’인 열린우리당을 이끌어갈 ‘순혈주의’ 후보여야 한다. 가장 근접한 후보는 한명숙·이해찬·유시민·김혁규 씨이다.
이들은 모두 지지도 면에서 형편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막판에 얼마든지 치고 올라올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때마침 한·미 FTA 협상과 한반도 평화협정 등 대형 이벤트가 대선 정국을 순차적로 강타할 예정이다. 성공하면 현재의 지리멸렬한 여권 상황은 급반전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싸움도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대선은 49 대 51 싸움이다. 승부욕이 강한 노대통령은 다시금 신발 끈을 조일 것이다. 대통령을 그만두고도 정치를 계속할 노무현 대통령, 그는 2007 대선의 관객이 아니다. 연출자이자 감독이다. 때문에 주인공 선정은 자신의 몫이며 권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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