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웃고 나니 새 세상이 보였다”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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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끊임없이 웃겼다. 말과 표정에 웃음이 배어 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말할 때는 막걸리와 된장국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전통 판소리를 웃음과 연결시킨 ‘판소리 웃음’은 그만의 작품이다. 그의 웃음에는 꽹과리와 장구가 동원되기도 한다. 그는 “개그맨도 10초 안에 웃길 수 있다”라고 큰소리친다.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 치료사를 웃게 만드는 한국웃음연구소의 김영식 소장(42). 전남 담양여중 체육교사가 그의 정식 직함이다. 
김소장의 웃음을 ‘하회탈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1년 내내 생활한복을 입는다. 목에는 한국적인 웃음의 상징이라는 목각 하회탈을 매달고 있다. 제자가 직접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의 웃음에는 또 불우한 가정사가 들어 있다. 한이 서려 있다. 교육계에서는 이색 수업, 이색 체벌을 하는 교사로도 유명하다. 10여 년 전부터 국악과 전통 민요에 맞춘 30여 종의 자세를 취하게 하는 ‘웃음 요가’를 개발했다. 이 덕분에 현대 인물사전에 ‘한국 웃음요가 창시자’로 올랐다. ‘웃음에는 돈이 안 든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개그맨과 당신의 웃음이 뭐가 다른가?
어떻게 나를 개그맨과 비교하는가. 개그맨이 만드는 것은 억지웃음이다.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이 개그이다. 나는 상대방을 자연스레 웃게 만든다. 개그맨과는 웃음의 차원이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
웃음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레크리에이션의 일종 아닌가?
‘웃음=레크리에이션’이라는 등식에는 반대한다. 최근에는 심신 수련을 위해, 또는 심신 치료를 위해 웃음 요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웃음을 만들어내면 치료할 필요가 없다. 웃음이 몸에 배면 일상생활도 긍정적이 된다. 심신이 건강해진다는 말이다. 내가 말하는 웃음은 치료를 위한 웃음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 없는 웃음이다.
웃음이 참 해학적이다. 억지인 듯하면서 아주 자연스럽다. 웃음의 실체가 궁금하다.
내 웃음은 꾸며진 웃음이 아니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즉 몸에 밴 웃음이다. 내 웃음에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들어 있다. 판소리, 탈춤, 해학과 풍자가 스며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웃음을 만들어낸다.
삶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라니, 이해가 잘 안 된다. 강의용 표현 아닌가?
나는 원래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았고, 가슴에 한도 맺혀 있었다. 태어나서는 아토피가 너무 심했다. 온몸이 붓고 빨갛게 부스럼이 생기고 혹이 났다. 한번은 어머니가 논물에 몸을 씻겼는데 철분에 감염되어 집에서도 포기할 정도였다. 갓난애가 집에서 죽으면 좋지 않다고 해서 산길에 버려졌다. 다음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까 죽을 목숨이 아니라며 다시 키웠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는데 너무 가난해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오죽하면 대학 입시를 앞두고 어머니가 ‘대학에 떨어지라’고 기도했겠는가. 대학 2학년 때 여동생이 고등학교 입학식 날 쓰러졌다. 빈혈인 줄 알았는데 급성 백혈병 말기 진단이 내려졌다. 몸이 바싹 마르면서 죽었다.
동생이 죽고 나서 우울증이 심했다. 매일 밤 꿈속에 동생이 나타났다.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손목을 긋기도 하고 목을 매달아도 봤지만 실패했다. 매일 술병을 달고 다니며 폐인처럼 살았다. 특전사에 가서는 낙하산 줄이 목에 감겨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군대에서 전역하기 직전 친형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때 형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형한테 “병은 마음이야, 그냥 놀아”라고 위로하며 나이트클럽에 다녔다. 그때까지 형은 자신의 병이 암인 줄도 몰랐다. 나중에 환자들이 알려줬는데, 그 후 2개월을 채 살지 못했다. 참 기구한 운명이었다.
전역하고 나서는 화병이 들었다. 그래서 판소리를 배웠다. 내 안의 한을 풀려고 목청을 돋우었다. 전통 사상을 공부하고 무술을 연마했다. 사람들 앞에서 박수 치고 신나게 웃고 노래하니 새 삶이 보였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어떻게 죽는 것이 아름다운지 해답을 얻었다. 그때부터 웃음을 주고 다녔다.
암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웃음 콘서트를 펼치는 이유를 이제 이해할 것 같다. 힘들지 않나?
나는 아버지와 형, 여동생을 모두 암으로 잃었다. 암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 병인지 잘 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암 환자뿐만 아니라 중풍·치매 환자들도 찾아다니며 웃음으로 봉사를 한다. 한번은 암 환자가 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는데 제자인 내 웃음 강의를 듣고는 고맙다고 했다.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암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웃음을 선물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따뜻함은 웃음이다.

 
학생들에게 ‘웃는 벌’을 준다는데,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는가. 
매를 때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가령 체육복을 안 가져오거나 숙제를 안 해오면 나는 아이들에게 벌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1분 동안 웃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한다. 대다수 아이들은 웃음을 선택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다가 그걸 보고 아이들이 따라 웃는다. 벌을 서는 학생이 다른 학생들까지도 진짜로 웃기는 것이다. 1분 전에는 혼나고 매를 맞아야 했던 아이가 1분 후에는 웃음을 주는 아이가 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웃고 나면 자신의 잘못을 알고 깨닫는다. 보통 문제 학생들은 스스로의 뇌리에 부정적 인식이 박혀 있다.
웃음은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꿔준다. 나는 학생들에게 ‘웃어라, 평생 살면서 가치가 있을 것이다’라며 웃음을 세뇌시킨다.  
요즘 왕따다 학교 폭력이다 해서 시끄럽다. 웃음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나?
웃음이 피어나는 학교, 웃음이 피어나는 가정에는 왕따나 폭력이 없다. 나는 학교에서 웃음을 만들어주자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친구가 외롭고 힘들 때 웃겨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선생님이나 학생들이나 웃는 방법을 잘 모른다. 학생들에게 웃으라고 하면 아이들은 대뜸 “선생님, 미쳤어요?”라고 한다. 나는 “그래, 미쳐야 산다”라고 받아넘긴다. 한 달쯤 지나면 “선생님, (웃는) 연습 많이 했거든요”라고 말한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독특하게 수업하는 선생일 것이다.
집에서는 어떻게 웃기는가? 가족들이 궁금하다.
우리 가족은 웃음 가족이다. 모든 게 웃음과 관련되어 있다. 오전 6시만 되면 내가 아이들 방에 가서 입을 양쪽으로 쫙 벌리고 한껏 웃으면서 ‘일어날 시간이야’라며 잠을 깨운다.
우리 집에는 ‘웃음 점수판’이 있다. 아이들이 한 번 웃는 데 50점, 남을 웃기면 100점을 준다. 물론 점수에 따라 선물도 준다. 아이들은 점수를 따기 위해 웃음 시합을 벌인다.
지난해 여름, 한 잡지사 기자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방문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새벽 3시쯤 되었는데 큰아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하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 기자는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의식 속에 항상 웃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대중을 상대하다 보면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섬뜩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제이유와 관련된 일이다. 지난해 초, 이름이 잘 알려진 저명 인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제이유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웃음을 가르쳐달라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어 흔쾌히 수락하고 두 번을 갔다. 가서는 청중인 제이유 회원들의 머리가 확 뒤집어질 정도로 웃겼다. 그런데 강의 후에 제이유측에서 나를 회원으로 끌어들이려고 몇 번 전화를 해왔다. 어느 날 방송 뉴스를 보니 제이유 문제로 떠들썩했다. 그걸 보고 아내와 함께 걱정을 많이 했다. ‘거기 가서 강의한 내 이름도 나오면 큰일이다’라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났다.
참 이상한 것은 온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이름이 나오는데도 제이유에서는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웃는 일보다 찡그리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웃음의 묘약은 없나?
대한민국이 잘되려면 이 세 마디만 하면 된다. ‘얼씨구’ ‘그렇지’ ‘잘한다’. 이게 추임새다. 칭찬의 문화다. 부부 사이에도 추임새만 잘하면 웃음이 넘치고 행복하다. 부부 관계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이 신경 써서 잘 해주면 ‘얼씨구’, 위에서 열심히 하면 ‘그렇지’, 끝나고 나면 ‘잘한다’만 외쳐봐라.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0100 웃음 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벌인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0세에서부터 100세까지 웃으면서 살자는 것이다. 나름으로는 뜻이 있다. ‘0100’은 우리 셋째아이의 태교를 하면서 발견했다. 태교를 웃음으로 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아내 뱃속의 아이를 향해 소리내어 웃어줬다. 7개월 되니까 아이가 내 웃음소리를 듣고 운동이 활발해지는 걸 느꼈다. 10개월째 초음파를 찍었는데 신기하게도 웃는 모습이었다. 엊그제 그 아이의 돌잔치를 했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주 잘 웃는다. 애나 어른이나 웃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겠나. 100세가 되어도 세상 떠날 때 웃고 가면 최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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