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외래 ‘1조원’ 대결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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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들, 공익기금 조성 놓고 찬반 맞서…시민단체도 극력 반대
 
생명보험협회의 공익기금 조성 문제를 놓고 보험업계가 시끄럽다. 생명보험사들의 모임인 생보협회가 최근 1조원대 공익기금을 만들려고 하는 데 대해 ING생명보험 등 외국 생명보험사가 반기를 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협회가 기금 조성 추진에 나선 것은 올해부터이다. 삼성생명·교보생명 등 일부 상위 랭킹 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상장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사회공헌 사업 차원에서 안을 만들어 밀고 온 것이다.
협회 주관 부서(연구조사부)를 중심으로 회원사들에게 기금 조성을 언급하며 의견 제시와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보험업계 이미지 개선 및 신뢰도 구축에 재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생명보험사들이 기업 공개를 할 경우 주식시장 상장에 따른 자본 차액을 보험 계약자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시중의 여론도 작용했다.
기금은 △저소득층 자녀 무료보험 가입 △실직자 대상의 소규모 창업 지원 △장애인을 위한 보험 상품 개발 등에 쓰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필요한 돈은 국내에서 영업 중인 22개 협회 회원사가 참여해 각 사에서 매년 이익금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내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세전 이익의 5%에다 회사별 납부율을 적용할 것이라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이익금이 1천억원인 보험사의 경우 50억원을 기준 금액으로 해서 해당 회사 적용 비율을 곱해서 내게 되므로 이익금과 회사 규모에 따라 액수가 각기 달라질 전망이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될 기금 목표액은 약 1조2천억원. 이는 협회 기초 안에 따른 것으로 진행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보험업계 한 전문가는 “기금 조성은 보험업계의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일로 증권선물거래소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가 기업 공개로 생기는 차액을 계약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가능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당수 회원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삼성생명·교보생명 등을 비롯한 몇몇 대형사들을 제외한 상당수 회원사들이 기금 조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회원사 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외국 생보사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분위기다.
국내 생보업계 4위이면서 국내 진출 외국계 회사 중 가장 큰 ING생명보험은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ING생명은 지난 3월13일 보험업계 출입 기자와의 간담회 때 반대 의견을 드러냈다. 론 반 오이엔 사장은 이날 생보협회 공익 기금 조성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기금 출연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했다.
반 오이엔 사장은 “ING생명은 생보협회와 사회 사업 참여 내역을 일일이 협상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협회에서 진행 중인 사회사업기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은 공익 사업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해 이해를 구한다”라고 덧붙였다. 목돈을 내고 협회 사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자체 공익 사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이 회사 관계자도 “론 반 오이엔 사장의 말처럼 불우이웃을 돕는 ‘나커나(나눌수록 커지는 나)’ 행사, 교사 연수 프로그램, 서울·부산·광주에서의 ING페스티벌 등을 통해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라며 협회 기금 조성에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AIG·알리안츠·푸르덴셜·메트라이프·라이나 등 나머지 외국 생보사들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문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세는 ‘반대’로 요약된다.
네덜란드·미국·독일 등 본사가 있는 곳에서 이미 상장되어 있어 한국에서 굳이 기업 공개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자체적으로 공익 사업을 벌이고 있거나 계획 중이어서 협회에 매년 큰돈을 내어가면서까지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견해다. 또 회원사들 간의 공감대 형성도 부족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푸르덴셜생명보험의 경우 지난 3월6일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푸르덴셜투자증권, 푸르덴셜자산운용 3사 공동으로 사회공헌재단을 세워 자체 공익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으로 이름 붙여진 이 단체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계열사로서는 첫 사회공헌재단 설립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재단 출범 배경은 기업 가치와 이익을 좀더 체계적으로 사회에 돌린다는 목적에서다.
하는 일은 △전국 중·고생 자원봉사 대회 △장학 사업 △난치병 어린이 지원 사업 △미아 찾기 사업 등 다양하다. 황우진 푸르덴셜생명보험 사장이 재단 이사장을,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전국 중·고생자원봉사대회장을 맡고 있다. 외국계 생보사의 한 간부는 “협회가 추진 중인 기금 조성은 모든 회원사의 협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도 구체적인 내용의 공문이나 서류를 받아보지 않아 불만이다. 협회가 일방으로 몰아붙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생보사 ‘빅 3’(삼성·대한·교보)가 상장으로 얻을 수 있는 차액은 2006년 말 기준 약 42조4천9백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을 재평가했을 때 예상되는 액수다. 이처럼 협회와 외국 생보사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보험 관련 시민단체인 보험소비자연맹(회장 유비룡)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금 조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생보사 이익의 90%는 계약자에게 돌아가야 하며 기업 공개로 얻는 차액으로 기금을 만드는 일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장 후 이익 계약자에게 환원하라”
조연행 연맹 사무국장은 “보험사의 재평가 차익 내부 유보액은 계약자 몫의 자본금에 해당된다. 기금 조성을 하려면 상장과 관계 없이 보험사 주주들 돈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는 △경실련(공동대표 김성훈·법등·홍원탁)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참여연대(공동대표 임종대·청화)도 연맹과 같은 시각이다. 이들 단체는 논평을 내고 2천만 보험 계약자 권익 보호에 필요한 조처와 절차상의 잘못이 있는 생보사 상장자문위 상장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생보사들의 기업 공개로 얻어지는 차액을 기금 조성에 쓸 것이 아니라 계약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들은 협회가 끝까지 밀고 갈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금 조성을 막겠다며 일전을 벌일 태세다. 연맹은 실천 방안으로 지난 2월8일 ‘생명보험 상장 계약자 공동 대책위원회’를 결성해 1백만명 서명 운동을 벌이며 협회 기금 조성에 제동을 걸고 있다. 시위·가두 서명·추가 성명 발표 등 다양한 방법도 마련 중이다.
연맹은 이와 함께 “올 1월 일부 언론 보도로 불거진 생보협회의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 대한 로비 의혹은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생보사 상장 문제의 투명한 처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실 관계가 확인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기금을 둘러싸고 생보업계가 시끄러워지면서 불똥이 국회 쪽으로 튀었다. 국회의원들이 법 개정에 나선 것이다. 열린우리당 이상민·박영선 의원은 생명보험사 공개로 인한 차액을 보험 계약자에게 나누어주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지난 3월5일 국회 재경위원회 주최로 열린 생보사 상장에 관련된 공청회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자리에서 나동민 상장사 자문위원장은 “지난 1월8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낸 상장안이 과거 어느 때보다 논리적으로 우수하다”라며 어떤 형태로든 계약자에 대한 상장 차액 배분이 필요 없다는 견해를 거듭 내놓으면서 시민단체들과 다른 입장임을 드러냈다.
회원사들의 거부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자 협회는 아주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생보업계의 기금 조성과 관련된 보도 자료를 내고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과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외국 생보사들의 반대 기류로 인해 성과는 거의 없는 상태다.
설득이 부족한 데다 국내 생보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없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회원사들의 참여를 최대한 끌어내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기금 조성 바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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