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개방'이 몰려온다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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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국회 비준이 통과되면 당장 국민들의 살림살이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태평양 사이로 뚫린 'FTA 로드'를 통해 어떤 모습의 미래가 다가올지 미리 들여다 보았다.

한·미 FTA 타결은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가정 살림과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협정이 국회 비준을 받아 발효되면 우리 일상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우선 동네 시장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 쇠고기·오렌지·와인·치즈 등을 미국산으로 사면 평균 25%가량 알뜰 쇼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세 폐지로 값이 싸진 미국산 먹을거리들로 식탁이 풍성해질 전망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수입되면 소비자들은 호주산보다도 저렴한 고기를 밥상에 올릴 기회가 잦아진다. 국산 쇠고기 값도 정육점·할인점 등에서 지금보다 10~20% 싸질 수밖에 없다. 또 비싸서 선뜻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한우 고기도 지갑을 크게 열지 않고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요즘 백화점에서 팔리는 최고 등급 한우 고기 1백g이 약 1만2천원, 호주산은 약 5천원, 돼지고기 삼겹살은 약 1천8백~2천원 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본격 수입되면 1백g당 4천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점쳐져 이 부문의 시장 판도가 확 달라진다. 쇠고기를 돼지고기처럼 부담 없이 먹을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갈비집·불고기집이 생겨나고 쇠고기 음식 체인점들까지 줄줄이 생겨날 것으로 창업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3년 12월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쇠고기 소비량의 43%를 차지했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도시 지역 상가의 LA갈비집들이 한동안 성업을 이루었다. 

 
먹을거리 상당수 가격 떨어질 듯


 
업계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우 값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어 수입 고기의 2~3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가 좁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호주산 대신 미국산 쇠고기로 메뉴가 바뀌는 등 외식 업소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맛볼 기회가 늘게 된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호주산 청정 소 1백% 냉장육으로 만드는 인기 메뉴 록 햄프턴 립아이(꽃등심) 스테이크를 미국산으로 바꿀 것을 검토 중이다.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특히 뼈가 들어 있는 부위의 수입을 반기는 분위기다. 외식 업체의 한 관계자는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미국이 광우병 통제 국가로 등급이 낮아져 수입 규제가 풀리면 호주산보다 맛과 질이 더 나은 미국산 고기로 바꾸고 티본 스테이크를 찾는 손님도 늘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국산 고기의 50~60%에 불과한 값싼 미국산 육류가 시장에 풀리면 최근 3~4년 사이 치솟았던 고기 값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촌경제연구원과 통상 전문가들은 쇠고기에 한정해 약 10%의 가격 안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쇠고기와 함께 돼지고기, 낙농 제품들도 값이 꽤 떨어진다. 신세대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미국산 치즈, 햄과 우유, 요구르트 등의 값이 내려 국산 제품들과 한판 시장 싸움이 예상된다. 돼지고기의 경우 매년 2.2~2.5%씩 관세율이 내려가고 값도 싸진다. 이에 반해 탈지분유와 전지분유(관세율 1백76%), 연유(관세율 89%)는 기존 관세를 유지해 당장 소비자 가격에는 변화가 없다.
이 밖에 식용 감자, 식용 대두, 천연 꿀 등 일부 품목은 관세는 떨어지지 않으나 일정 물량에 대해 낮은 관세율이 매겨져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
아직까지 비싸게만 느껴지는 오렌지도 부담 없이 사먹을 수 있게 된다. 시중에 팔리는 오렌지의 95%는 미국 캘리포니아산이다. 특히 지난 겨울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파로 작황이 나빠지면서 국내에서도 20~30% 오른 값에 팔리고 있어 지금의 절반 선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 돌(Dole) 오렌지의 경우 개당 평균 5백80~8백원에서 3백~4백원으로 떨어진다. 자연히 제주도 한라봉, 천혜향을 포함한 고급 국산 감귤을 찾는 고객들은 줄어들 수 있다. 관세가 50%에 이르는 오렌지와 더불어 45%인 사과·복숭아·포도도 비슷한 시장 흐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웰빙 바람을 타고 수요가 느는 와인 역시 소비자들이 FTA 협정 덕을 보고 값싸게 살 수 있다. 칠레와의 FTA 체결 뒤 칠레 와인 인기가 치솟았듯 미국 와인도 애호가들이 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와인 중 유명한 나파밸리 카베르네쇼비뇽 값은 10~15%쯤 인하 효과를 볼 수 있고, 다른 값싼 미국 와인들도 우리 시장을 파고들 전망이다. 나파밸리는 7만5천원대에서 6만3천원대로 싸진다. 그러나 와인은 주세·교육세를 포함한 세금이 워낙 무거워 가격 인하 폭은 기대치에 미치기 어렵다.
 
먹을거리와 달리 옷은 생각처럼 싸게 살 수 없을 것 같다. FTA 협정 타결로 폴로·리바이스·갭 등 미국의 유명 브랜드 옷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옷은 FTA 덕을 보게 되지만 생산지가 다른 나라로 되어 있는 제품들은 관세 혜택을 볼 수 없다. FTA 관세 철폐는 미국 안에서 만들어진 옷에만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미국 옷들 대부분이 저임금의 중국·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와 중남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팔리는 미국 옷이라도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제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키·리복 등의 운동화를 비롯한 신발 제품도 마찬가지다. 업체들의 대부분이 임금이 낮고 원자재 공급이 쉬운 해외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어 FTA 관세 철폐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FTA가 발효되면 국산 차 고객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2천cc 이상 승용차에 붙는 특별소비세가 반으로 줄고 보유세까지 낮아져 감세된 금액만큼 값이 싸진다. 특소세가 내리면 국산 자동차는 5.7%의 가격 인하 여력이 생긴다.
이럴 경우 현대자동차 쏘나타 F24 프리미어 모델 값이 2천6백28만원에서 2천4백76만8천원으로 1백51만원쯤 싸진다. 또 그랜저 Q270 모델은 2천9백여 만원에서 2천8백여 만원으로, 오피러스 GH330 럭셔리는 4천1여 만원에서 3천8백여 만원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보유세 감면 혜택까지 합치면 소비자들이 얻는 절세 효과는 더 커진다.
배기량별로 5단계인 국내 자동차 세제가 3단계로 줄어들면 2천cc 초과 승용차의 경우 한 해 자동차세가 적어도 4만원 이상 준다. 차종별 자동차세는 신차 기준으로 싼타페2.2(2천1백88cc)가 48만1천원에서 43만8천원으로, 그랜저(2천6백56cc)는 58만4천원에서 53만1천원으로 내려간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특소세 및 보유세 할인 혜택이 배기량 2천cc 이상 차에 몰려 국내 중·대형차 시장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들 차 수요가 느는 만큼 싼값에 자동차를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제 차를 타려는 사람들도 미국 차를 지금보다 훨씬 더 싼값에 살 수 있을 것 같다. 크라이슬러의 중형 승용차 PT크루저(2천4백29cc)는 국내에서 세금을 합쳐 2천8백50만원에 팔린다. 동급 경쟁차인 현대 쏘나타2.4 최고급형(2천8백76만원)보다 26만원 싸다. 2009년 FTA가 발효되어 수입차 관세(8%)가 없어지고 2천cc 이상 차의 특소세가 10%에서 5%로 떨어지면 현대차가 더 비싸진다. PT크루저는 2천4백88만원, 쏘나타2.4는 2천7백12만원으로 2백24만원이나 비싸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포드500은 3천9백80만원에서 3천6백86만원으로 내린다. 미국 차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거리에 외제 차 통행량이 느는 것은 당연하다.

 
약값 올라가고 휴대전화 등은 ‘별 무 영향’


 
다른 차종도 가격 흐름은 대동소이하다. 미국 차와 국산 차 값 차이가 크게 좁혀져 일부 차종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머지않아 국산 차와 수입 차가 가격보다는 품질·성능·서비스 내용 면으로 승부를 거는 시대가 오게 된다.
TV·세탁기·에어컨·식기세척기·냉장고 등 미국산 가전제품도 관세가 철폐되면서 관세 폭인 8%가량의 가격 인하가 기대된다. 서울 강남, 경기 분당을 비롯한 고소득층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이들 제품 판매가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값이 올라가는 품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양약이다. 국민 건강에 직결된 약은 당장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특허권이 끝나 국내 제약사가 제조법을 복제해 파는 ‘복제 약품’값이 주로 해당된다. 오리지널 신약을 베낀 제네릭(특허권이 끝난 원 제품을 복제한 제품) 의약품 시판 시기가 2~5년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허가받기까지 별도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하는 등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례로 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를 개량한 ‘아모디핀’이 그렇다. 값이 뛸 수 있는 요인이 생긴 것이다. 고혈압·당뇨병 치료제, 각종 항생제와 소염제 등도 값이 오를 확률이 높다. 신약에 대한 특허권이 강화되면 오리지널 약보다 20~30% 값싼 제네릭 약품 출시가 늦어져 외국 신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약값이 다 오르는 것은 아니다. 보험 적용을 받지 않고 수입되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좋은 예이다. 관세(6%)가 없어져 값이 오히려 내릴 것으로 보인다. 파란색의 정제(1백mg) 8개 기준으로 한 갑에 17만6천원 하는 소비자 값이 15만~16만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 물론 약을 사려면 의사 처방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황양수 웰빙팜코리아 회장은 “FTA 타결로 국내 제약사들이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고 약값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미국이 요구하는 CGMP(우수 의약품 제조 기준)에 맞추려면 해외 공장 신·증설 또는 개·보수에 엄청난 시설투자비를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이 약국에서 사먹는 약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황회장의 설명이다. 가정에서의 의료비 부담이 느는 것은 말할 것이 없다.
방송·영화·오락·게임·정보통신 분야도 시장이 열려 국민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들을 제공하게 된다. 여유를 누리려는 고객들의 선택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
인터넷 공유 사이트로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던 <프리즌 브레이크>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미국 드라마들도 공중파·케이블TV 채널을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방송 콘텐츠 의무 편성율도 낮추어져 미국 드라마 등 방송 프로그램 편성 비율이 높아진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음악 파일이나 영화를 불법 복제해서 보는 것은 곤란하다. IT(정보통신) 부문에서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화되어 음악 파일이나 영화 불법 복제로 저작권을 침해하면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 접속 서비스 업체를 통해 개인 정보가 저작권자에게 공개된다. 저작권자가 온라인 서비스 업체에 직접 저작권 침해자의 개인 정보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개인 정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정보통신부는 저작권자들이 개인 정보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법제화해 피해를 막을 방침이다.
FTA 체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품목들도 적지 않다. 우선 미국제 스포츠 브랜드는 별다른 값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텔 CPU·윈도 프로그램·반도체·휴대전화도 그렇다. 이들 품목은 1990년대 후반부터 관세가 면제되고 있다. 골프채는 8% 정도 관세가 인하되지만 가격 반영율은 점치기 힘들다. 고가의 사치품이어서 중간 마진이 높기 때문이다.
이 밖에 소비자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는 △인터넷 강의를 통한 성인 교육 시장 개방 △근로자 노동 기준 강화 △한국 기업의 미국 보험 가입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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