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백색 테러리스트' 소금을 제압하라
  • 이준상 (고려대 의대 교수) ()
  • 승인 2007.04.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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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륨은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다. 혈액을 비롯한 체액의 양을 적당히 유지하고, 산과 염기의 균형을 조절해 체액을 중성으로 유지하며, 세포가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을 돕는다. 또 강력한 천연 항히스타민제로서 천식을 완화시키거나 몸을 위한 강력한 스트레스 저항 요소로도 작용하고, 신경이 신호를 전달하거나 근육이 수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체내 전해질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세균을 죽이는 역할도 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나트륨의 최소량은 하루 2백~4백㎎이다. 이것은 소금 0.5~1g에 들어 있는 양이다. 나트륨이 갑자기 부족해지면 혈압이 떨어지거나 근육 경련이 일어날 수 있고, 뇌세포가 부어 식욕 부진·구역·구토·혼미·무기력·집중 곤란·두통·흥분·경련 발작 등의 증상이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더라도 여분의 나트륨은 콩팥을 통해 배출되므로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좋게 하고 식품을 오래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세계 각국의 전통 식품 중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이 꽤 많다.


찻숟가락 하나가 1일 권장량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은 13g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인 5g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어린이(7~12세) 10g, 청소년(13~19세) 12g, 30~39세 성인은 15g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소금 섭취량에 대해 WHO는 하루 5g 이하(나트륨 2g 포함), 미국과 영국에서는 6g 이하로 권하고 있다. 소금 5~6g은 찻숟가락으로 하나 또는 2분의 1 큰술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보건 당국에서는 나트륨 권장량을 하루 3.5g에서 2.5g으로 낮춰 고시했다. 식품 업체들은 오는 12월부터 새로운 기준치에 의거한 나트륨 함량 비율을 제품에 표기해야 한다.
가공 식품과 인스턴트 식품에는 소금이 많이 들어가고 전통 식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배추김치·소금·된장·간장·총각김치·라면 등을 통해 나트륨을 섭취한다. 이들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나트륨 양이 전체 섭취량의 62.8%에 달한다. 그리고 섭취량의 16.5%를 조리 과정에서 사용하는 소금을 통해 먹는다.
소금은 인체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너무 많이 섭취하면 여러 심각한 병증을 일으키고 건강을 해친다.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와 젓갈을 넣어 푹 삭힌 김치, 고추장에 박은 장아찌, 짭짜름한 조개젓…. 일단은 콜레스테롤이 걱정되지 않는 건강 식단이다. 하지만 ‘짠맛’에 주목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소금(나트륨)의 과잉 섭취가 한국인 사망 원인의 1, 2, 3위를 다투는 암·뇌졸중·심장병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금 과식, 어떤 질병 유발하나


심혈관 질환:음식을 짜게 먹으면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즉 혈관에 나트륨이 많아지면 다량의 수분이 혈관 안으로 들어가 압력이 높아진다. 따라서 짜게 먹으면 혈관의 압력이 높아져 혈압이 치솟아 고혈압이 되는 것이다.
고혈압은 뇌졸중·심근경색증·신장 질환 등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사망하게 하는 심각한 병이다. 소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사람 중에는 고혈압 환자가 없고, 조금 섭취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혈압 환자가 많지 않다. 하지만 소금을 많이 먹는 사람들일수록 고혈압 환자가 많다. 순환기내과 분야의 한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8백만명 가까이가 고혈압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로, 수년 내 고혈압 환자 1천만명 시대가 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나트륨과 염소로 구성된 소금이 몸에 들어가면 소변으로 나가야 할 콩팥 속의 물을 체내로 가져와 체액의 볼륨을 높이고, 이것이 심장과 혈관에 부담을 주면서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된다”라고 말했다.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나트륨이 혈관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혈관을 부식시켜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의 위험이 커진다. 소금의 이런 부작용은 혈압이 높아지는 것과는 별도로 나타난다. 즉 소금을 많이 섭취해도 혈압이 높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소금을 많이 먹으면 뇌졸중의 위험이 높아진다. 심장이 커지면 급사와 심근경색의 위험도 커진다. 심장이 커지는 가장 흔한 원인은 고혈압이다. 그러나 소금을 많이 섭취해서 혈압이 높아질 때뿐 아니라 혈압이 상승하지 않더라도 심장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암:감염성 질환이 줄어들면서 암의 원인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 중에서 소금 섭취와 가장 관련이 큰 것은 위암과 코 인두 암이다. 많은 연구에서 소금을 다량 섭취하면 위암이 잘 생긴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피클(절인 음식), 또는 소금 자체가 위암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위에 들어 있는 음식물의 소금 농도가 높아지면 위를 보호하는 보호막이 파괴되고 염증이 생기며, 광범위하게 위가 헐면서 위축성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상태는 위암이 생기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발암 물질이 작용하기 쉽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본인 약 4만명을 11년 동안 조사한 결과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염분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암 발생률이 2배 정도 높았다. 소금 섭취량이 많고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된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하므로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세인트 조지 의대 그라함 맥그레거 교수는 “위암 발병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소금 줄이기 캠페인’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 중국·일본·한국은 세계에서 소금 섭취가 가장 많은 나라들이다”라고 지적했다. 입·목·인후부에 생기는 암은 선진국에서는 담배와 술이 가장 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음식이 더 크게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 소금에 절인 생선을 많이 섭취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소금에 절인 채소와 피클을 많이 먹는 사람에게도 코 인두 암이 잘 생긴다는 보고가 있다.

 
신장병:염분을 많이 섭취하면 콩팥에서 칼슘이 빠져나가므로 몸에 칼슘이 부족해 골다공증이 잘 생기거나 칼슘이 돌을 만들기 쉬워 요로결석이 발병하기 쉽다. 이런 현상은 나이 든 사람에게서 더 흔하다. 또 콩팥이 정상적인 사람의 소변에는 단백질이 아주 조금 섞여 나온다. 하지만 콩팥의 기능이 나빠져서 소변에 단백질이 많이 섞여 나오는 상태를 단백뇨라고 하는데 콩팥 기능이 나쁜 사람 가운데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에게서 단백뇨가 더 심하다. 그런 사람이 소금 섭취를 줄이면 콩팥 기능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그 밖의 질환: 기관지 천식 환자가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증상이 더 심해지고 소금 섭취를 줄이면 가벼워진다. 기관지 천식은 기관지가 좁아지는 것이 특징인데 소금은 기관지 벽의 체액을 늘리고, 따라서 기관지를 좁아지게 해 천식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소금을 많이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백내장이 더 잘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소아 비만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맥그레거 교수는 “소금을 많이 먹으면 목이 마르고 아이들의 경우 콜라 같은 청량 음료를 자주 찾게 된다. 콜라 한 캔에 설탕 8숟가락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가. 또 소금을 과잉 섭취하면 체내 수분이 2㎏ 늘어나 몸무게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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