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외교는 이렇게 하는 거야"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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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석방하며 큰소리...겨결 일변도 정책 펴는 미국에 '한 수' 훈수

 
 
1979년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란 혁명 정부는 눈을 가린 인질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에 공개하면서 미국의 굴복을 강요했다. 당시 카터 행정부는 이란의 고압적 자세에 인내심을 잃었다. 1980년 4월 카터는 인질 구출 작전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인 인질들은 1년 만에 이란의 관용 조처로 풀려났다. 이 사건 때문에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무능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의기양양해진 이란은 미국에게 ‘외교는 이란에서 배우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이번에는 15명의 영국 해군과 해병대가 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은 유엔평화군 임무를 수행 중이던 3월23일 걸프 만에서 영해를 침범한 혐의로 이란 혁명수비대에 체포되었다. 여군 1명을 포함한 영국군은 이란 TV에 끌려나와 영해 침범을 자백했다. 이란 정부는 이들을 간첩 활동 혐의로 재판에 회부한다고 발표했다. 흥분한 이란 군중이 영국군에게 돌을 던지는 장면도 이란 TV로 중계되었다.
영국이 다급해졌다. 미국·유엔·유럽연합(EU)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유엔을 통한 제재를 모색했다. 이란은 영국의 움직임에 동요하지 않았다. 이란의 핵 개발로 미국의 이란 공격설이 나오는 가운데 터진 이 사건은 자칫 걸프 만에서 제3의 전쟁을 유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냈다. 이란과 수교 상태에 있는 영국은 이란의 강경 태도를 보고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국면은 12일 만에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이란은 4월2일 영국군의 간첩 행위를 용서한다며 석방을 발표했고, 영국 군인들은 4월5일 런던에 무사히 귀환했다. 30년 전 미국인 인질 사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건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이란은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대결에는 대결, 대화에는 대화로 응수하는 것이 이란의 외교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압력도 있었지만 영국의 차분한 외교와 이란의 실익 챙기기가 맞아떨어져 인질들은 풀려났다. 미국에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이란이 결국 미국에 두 번씩이나 외교를 가르쳤다는 풍자가 외교가의 화제가 되었다. 
이란이 공짜로 영국 군인들을 석방한 것은 아니다. 영국 해군이 석방된 날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두 달 전 이라크에서 납치된 이란 외교관 1명도 귀국했다. 지난 1월 이라크에서 미군에 체포된 이란 관리 5명의 석방도 추진되었으나 미국의 반대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전후 사정을 보면 이란은 겉으로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뒤로는 은밀한 외교를 통해 실익을 챙겼다. 
강온 양면 전술을 교묘히 구사한 이란의 메시지는 미국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영국군이 체포된 타이밍도 묘하다. 이란 핵 시설을 사찰하는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고 미국의 두 번째 항공모함이 걸프 만에 파견된 직후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대결 정책이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이란의 행동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만약 영국이 이 사건에서 미국의 선례를 따랐다면 사태는 악화되었을 것이다. 유엔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의하고 미국은 걸프 만 병력을 증원했을 것이다.
미국은 이란 핵 문제에서 지난 두 달 동안 압박 전술을 사용했다. 영국군 석방을 이끌어낸 것도 이 전술의 성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란의 기본 노선은 변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거부하는가 하면 핵 표시가 들어간 새 화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이란 견제 작전, 28년간 아무 소득 없어


 
미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란과의 대결 강도를 높이든가 화해 정책을 펴야 한다. 대결은 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미국의 걸프 만 주둔을 장기화할 수 있다. 미국이 중동에 오래 남으면 남을수록 이념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은 더욱 거세진다. 대이란 강경책은 이라크 사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이란 견제 작전은 28년간 계속되었다. 그래도 이루어진 것은 없다. 이란은 4월10일 농축 우라늄의 양산 체제를 갖추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제 압력만으로는 일이 안 된다는 교훈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이란은 이념과 실용주의가 혼합된 극단주의 정부다. 인내심을 갖춘 화해 정책만이 이란의 본질을 바꿀 수 있다. 영국군 석방이 바로 이 점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에서 이란이 국위를 선양하고 혁명 정부의 장악력을 확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란 역시 약점을 드러냈다. 혁명 정부 내 강경파와 실용주의 온건파 간 암투가 외부에 노출되었다. 이란은 자신감과 과대망상증에 휩싸여 있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중동에서의 영향력 증대를 위한 어부지리를 최대한 누렸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로부터 점증하는 압력을 받고 외교적으로는 고립되었다. 
고대 페르시아의 평화 지향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맹주가 되려는 야심에 차 있다. 이처럼 복합적 요인이 혼재하는 세계 4위의 산유국을 다루기란 쉽지 않다. 이란은 종잡을 수 없다. 때로는 외고집을 부리고 때로는 융통성을 보인다. 확실한 것은 이란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말썽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라크와 이란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합전선도 무너졌다. 미국이 이란의 핵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 데 반해 유럽은 핵을 가진 이란을 수용할 태세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아직도 외교보다는 군사적 옵션에 매력을 느낀다. 이란 핵을 허용하는 것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보다 더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주장이다. 이란이 핵을 보유할 경우 이라크 사태 개입은 심화되고 중동 석유의 확보도 어려워진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부시 대통령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라 있다”라고 늘 말해왔다. 지금 부시가 경청함직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이란과 빅딜을 하는 것이다. 이란과 관련된 모든 분규와 이란-이스라엘 평화 구축을 한꺼번에 타결하는 방안이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면 핵 회담을 하겠다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란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부시의 발언을 감안하면 이는 정책 변화의 신호이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대해서도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에티오피아가 북한 무기를 구매하는 것을 묵인했다. 이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2·13 베이징 합의에 따른 초기 조처 이행 시한 4월14일까지 북한이 원자로를 폐쇄하지 않아도 양해하겠다는 뉘앙스도 풍긴다. ‘외교를 배우라’는 국제 사회의 성화를 경청하는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란이 미국에 가르쳐준 ‘외교’를 미국이 실천하는 아이러니가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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