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부터 게임의 바다에 '풍덩'
  • 김지은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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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어린이 인터넷 이용률 50.3%...부모가 '바른 이용법' 가르쳐야

 
집안일로 바쁜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동화책을 안겨주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히던 시절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서울 중계동에 사는 주부 김 아무개씨(39)는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인터넷 게임을 하게 해주고, 세 살짜리 아이에게는 비디오 게임기를 안겨주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3월 중순 서울 수유동에 사는 주부 신 아무개씨(40)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을 찾느라 오후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아들을 찾아낸 곳은 동네 PC방이었다. 초등학생이 되면 들여보내 주겠다던 PC방에 아들이 기어코 찾아갔던 것이다. 신씨는 항의 끝에 다시는 아이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PC방 주인의 다짐을 받아냈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06년 상반기 정보화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만 3~5세 어린이의 인터넷 이용률은 50.3%로 2005년 말(47.9%)에 비해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만 5세(65.4 %), 만 4세(45.5%), 만 3세(36.1%) 순으로 이용률이 높았다. 평균 인터넷 시작 연령은 3.2세, 1주일 이용 시간은 평균 4.7시간으로, 주 평균 2~4시간이 38.1%로 가장 비중이 높았고, 4~10시간(29.7%), 1~2시간(15.1%) 순으로 조사되었다. 1주일에 10시간 이상 인터넷을 즐기는 어린이도 9.5%에 이르렀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는 최근 문화관광부가 의결하려고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청소년 PC방 출입시간을 현행 오전 9시에서 오전 7시로 앞당기는 법안 내용 때문이다.
지난 3월30일 놀이미디어교육센터를 포함한 한국건강연대와 학교급식네트워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39개 단체가 손을 잡은 ‘아이들 건강을 위한 국민연대’(아이건강연대)가 출범했다. 아이건강연대는 식생활교육기본법, 식품안전기본법, 어린이·청소년 체력증진 및 비만 예방법, 어린이·청소년 게임중독 방지법 등 ‘아이들 살리기 4대 입법’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인지라 개정안을 두고 충돌이 예상된다. 정부가 인터넷 게임을 문화 산업 진흥의 큰 축으로 삼고 있는 현실 앞에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좀더 커질지는 의문이다. 문화관광부 게임산업 관계자는 인터넷 게임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에만 초점을 맞춘 주장들은 형평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게다가 세계 속으로 진군하던 국산 인터넷 게임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최근 보도와 통계 수치를 들먹이고, 이런 현실에서 게임산업 종사자들을 매도하는 것은 그들의 의욕을 상실케 한다며 자중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이다. 
반면 인터넷 게임의 역기능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쪽은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순수하고 건강해야 할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여전히 폭력적이고 중독성이 강한 것에 자리를 내줘버리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게임, 우리 아이 해치는 끈질긴 유혹>이라는 책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둘러싼 부모와 아이의 숨바꼭질 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인터넷 게임을 하는 아이를 두고 ‘막노동’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역기능의 정도를 알리고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도록 방치하는 부모들


하지만 양쪽의 팽팽한 논쟁 앞에 부모들은 개입을 꺼려 한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많은 부모가 단지 자신들 대신에 아이들을 돌봐준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게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도록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어린이집 부모들에게 인터넷 게임 중독 예방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대부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권소장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인터넷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자극을 충족시키는 매체라는 것, 그리고 아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뿐 아니라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이 다”라고 말했다.
산업 논리나 우상이 된 프로게이머 활약상의 그늘에 가려 게임 중독에 무관심해지기 쉬운 세태이다. 아이들의 건전한 놀이 문화에 대한 인식 또한 확산시키려고 애쓰는 아이건강연대의 주장에 힘이 실릴 듯하다.

 

"자녀의 컴퓨터 시작 시기 늦춰라."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 인터뷰

 

어린이 인터넷 이용률 조사 결과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통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만 3~5세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인터넷이란 대부분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 연령의 어린이가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겠는가? 아니면 글을 쓰거나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겠는가? 이들이 하는 것, 또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게임뿐이다. 어린이집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온 어린이들이 집에 와서는 단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일부러 하게 하는 경우도 많은데….
게임이 표현하는 그래픽과 사운드는 어린아이들이 경험하는 그 어떤 자극들보다도 매우 강렬한 것들이다. 이처럼 강한 자극을 익숙하게 받아온 아이들은 일상 생활은 물론이고, 교실에서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가 사과를 먹었을 때 당도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아이들은 게임만큼의 자극을 받지 않으면 단 5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에게는 계속하게 내버려두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 부모가 많다.


 
유아들에게는 인터넷 교육을 일절 안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들은 로그인을 한 순간, 집이 아닌 어떤 공간으로 이동해서 혼자가 아닌 부모가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을 할 때도 부모에게는 강한 경계심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의 레벨이 올라가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 게임의 구조’에 약간의 이해만 있어도 된다. 아이들이 혼자 사이버 놀이터로 들어가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부모들을 위한 중독 예방 교육은 잘되고 있나?
부모들에게 교육에 참가하라고 요청하면 ‘우리 아이는 하루 30분 정도씩 밖에 인터넷을 하지 않는데, 무슨 중독 예방 교육이 필요한가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만 3~5세 어린이들이 하루 30분씩 게임을 하고 있다면 이미 매우 위험한 인터넷 사용자이고,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중증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초등생들이 PC방에 드나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논란이 많다.
이미 초등학교 아이들이 산만하고 학습 부적응 정도가 심각하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적지 않은데,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호주에서는 13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부모가 입회하지 않으면 PC방 출입도 못하게 하고 있으며,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13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학부모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세 살부터 시작되는 컴퓨터 사용 습관의 핵심은 무엇인가?
컴퓨터 사용 습관의 핵심은 가족 간에 미리 약속을 하고 약속된 시간이 되면 스스로 끄고 일어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 외에는 하고 싶어도 참는, 욕망을 거슬러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컴퓨터 시작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고, 잠깐 방심하는 사이 자녀가 컴퓨터에 깊이 빠져들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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