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강남에 살어리랏다"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4.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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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역삼동·서초동으로 사옥 이전 러시...인근 상가·오피스텔도 덩달아 들썩

 
재계의 서울 ‘강남 사옥 시대’가 열리고 있다. 벤처 기업 산실이었던 테헤란밸리의 IT(정보기술) 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대기업 사옥들이 메우고 있다. 서울의 비즈니스 축이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재계의 경영 사령탑 자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행정 수도가 이전하면 경제 수도로 탈바꿈할 서울의 심장부가 강남이 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대 부동산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값이 뛰고 상권 흐름이 바뀌고 있다.
강남에 본사를 둔 그룹과 대기업은 수십 곳에 이른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포스코, GS그룹, 한솔그룹과 동부그룹 계열 금융사들, 동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한국전력, KTF, 한국타이어, 한일시멘트, 교보생명 등 하나 둘이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 중견 기업들까지 합치면 100여 곳에 이른다. 강남은 여의도·광화문·종로·마포와 함께 서울의 4대 오피스 지역으로 꼽힌다.
사옥의 ‘탈강북’ 대열에 가장 앞장선 기업은 포스코이다. 서울시청 옆 금세기빌딩에 서울사무소 간판을 달았던 이 회사는 삼성역과 선릉역 중간에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포스코센터’를 짓고 1996년 입주했다. 지상 30층 규모의 본관과 20층 별관으로 연면적만 해도 5만4천6백80평에 달하는 ‘공룡 빌딩’이다.
LG그룹도 역삼역 부근에 연면적 2만8천5백56평, 지상 19층 지하 6층의 제2사옥 GS타워를 짓고 1998년 일부 계열사들을 입주시켰다. GS타워는 LG그룹에서 분가한 GS그룹이 2004년 8월부터 지휘본부로 쓰고 있다. LIG손해보험, 메리츠화재도 역삼동으로 이전했다.
계동에서 양재동으로 옮긴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사옥은 농협이 지은 건물로 현대차가 3천억원에 사들여 2000년 11월 입주했다. 현대차그룹은 2006년 11월 바로 옆에 쌍둥이 빌딩을 지어 자동차 부문, 비자동차 부문, 계열사로 나누어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강남 2사옥을 추진했던 현대그룹도 역삼역을 사이에 두고 GS타워 건너편에 지상 32층 지하 8층짜리 I-파크 빌딩을 1998년에 완공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의 아들 형제들이 계열사별로 흩어져 그룹 면모가 축소되자 외국계 부동산 자본에 넘기고 말았다.
교보생명은 2003년 서초동에 제2사옥 교보강남타워를 지었다. 23층인 이 건물에는 교보자동차보험 등이 입주해 있고 일부는 임대 중이다. 지하에는 광화문 교보문고 본점보다 전용면적이 5백 평쯤 더 큰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전국에 대형 전자 전문점을 직영하는 하이마트도 2004년 사옥을 여의도에서 대치동으로 옮기면서 강남 시대를 열었다. 지하 4층 지상 8층 규모로 창업 이래 처음 갖는 사옥이다.
1990년대 몰아쳤던 재계의 강남 이전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다 최근 다시 이전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타운을 세우고 있는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10여 년 전부터 계열사 사옥용으로 추진되어온 삼성타운은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곧 입주가 시작된다. 2004년 4월 1단계 공사에 들어간 지 3년여 만이다.
규모는 엄청나다. 32~43층짜리 3개 동으로 연면적이 10만여 평에 이른다. 강남 부동산가의 핵으로 떠오를 정도로 크다. 삼성타운 조성에는 1조원 이상의 사업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상주 인구 수는 삼성그룹 직원 등 약 2만명. 유동 인구는 20여 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타운에는 삼성전자(5월), 삼성생명(5월), 삼성물산(12월)이 입주한다.
재계의 강남 사옥 이전 러시에 따라 부동산가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서초구·강남구·송파구를 중심으로 매매가와 임대료가 오르는 추세이다. 일부 지역에는 오피스 품귀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로 공급 부족까지 겹쳐 큰 사무실 얻기가 쉽지 않다.
사무실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은 5월부터 삼성타운 입주가 시작될 강남역 부근과 역삼동, 서초동 일대. 삼성 협력사들이 대거 이주를 준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삼성타운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탄탄한 구매력을 갖춘 삼성맨들의 지갑을 겨냥해 단장을 새로이 하는 상가가 늘고 있다. 오피스·빌딩 수요자들도 넘쳐 임대료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상가 권리금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새로 짓는 중소형 빌딩은 임대료를 무조건 높여 잡아 발길을 돌리는 사업자들이 많다.


교통난 가중 등 부작용 우려도


지난해 말 입주를 시작한 T오피스텔 23평형 시세가 3억3천만~3억6천만원으로 위치에 따라 6천만~8천만원의 웃돈이 붙어 있다. 분양가가 5억원이었던 41평형은 3억~4억원의 웃돈을 주어야 매입이 가능하다. 평형이 클수록 값이 더 뛰고 있다.
임대료 오름세도 마찬가지다. 23평짜리 새 오피스텔의 경우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1백70만원으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크게 올랐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타운 입주가 본격화되면 서초동 일대가 강남 최대의 비즈니스 단지와 상권을 이루어 강남 1번지로 떠오를 것으로 본다”라고 점쳤다.
반면 아파트 거래 시장은 삼성타운 후광 효과를 보았던 1년 전과는 달리 조용한 편이다.
서초동 롯데캐슬클래식 30평형은 9억원대로 매매가가 약간 내렸다. 그러나 전세 수요는 늘어나 서초래미안 등의 전세가 가격이 평균 3천만원쯤 올랐다.
오피스 및 서비스드 레지던스(호텔형 장기 주거용 임대주택) 수요는 삼성타운 덕을 보고 있다. 주요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3천만~9천만원의 프리미엄까지 형성되어 있다. 삼성타운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테헤란로 선릉역 일대는 올 들어 오피스텔이 동나고 평당 분양가도 1천3백만원에서 1천5백만원으로 뛰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모텔이 몰려 있던 삼성타운 건너 역삼2동 일대가 오피스 건물들로 바뀌고 있다. 자연히 사무실 공실률도 낮아졌다.
강남역 일대는 업무 시설 밀집지로 꼽히지만 숙박 시설은 부족한 편이다. 삼성타운 입주가 끝나면 외국인 상대의 호텔형 주거 시설 임대 수요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상가뉴스레이다 정미현 연구원은 “삼성타운 건립으로 강남 일대의 고급 상권 형성, 점포 임대료 및 권리금 상승, 오피스 및 호텔형 레지던스 임대 증가가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른 후유증도 없지 않다. 부동산 시장 불안정, 교통난 등이 그것이다. 또 주거 기능을 잃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역삼동이 좋은 사례다. 주택가들이 사라지면서 빌딩과 상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건축 전문가는 “도시 기반 시설과 업무 지원 기능이 우월한 곳으로 기업 본사들이 옮아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 강남·북 균형 발전을 위해 도심권의 업무 환경 개선 등 입지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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