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재벌 구조 개혁 이끌까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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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경영 투명성 확보 등 장점 많아 잇달아 도입...막대한 자금 부담이 걸림돌

 
'지주회사가 재벌 구조 개혁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그룹에 이어 SK그룹도 지주회사 체계를 도입하기로 함에 따라 선단식 경영이 특징인 국내 재벌의 기업 지배 구조가 획기적으로 바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주회사는 분명히 재벌 중심의 기업 지배 구조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이다. 미국의 GE(제너럴 일렉트릭)는 국내 대기업들이 이상적인 지배 구조 모델로 삼고 있는 대표적 지주회사이다.
우리나라는 1999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을 허용했다. 그 이래 2004년 22개, 2005년 26개, 2006년 31개 등 기업 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제조와 투자 분리를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주회사 전환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30대 대기업 그룹 중 지주회사 전환의 첫 테이프를 끊은 LG그룹은 성공 모델로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대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LG는 지주회사 체제가 정착되어 ‘출자는 지주회사가 맡고 사업자 회사는 고유 사업에만 전념한다’는 당초 목표를 실현해가고 있다. 지배 구조가 투명해지는 것과 함께 특정 계열사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결국 기업 가치의 상승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출자총액제한제,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 등 각종 규제와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장점도 부각되었다.
증권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투자를 줄이고 내부 유보를 쌓아온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여기에 기업 집단의 순환 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가세하면서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이 더 빨라질 것이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초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 회사의 경우 30%에서 20%로, 비상장 회사는 50%에서 40%로 각각 축소했으며, 지주회사의 부채 비율도 종전의 100% 이하에서 2백% 이하로 완화했다. 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이같은 규제 완화가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기업들이 지주회사를 도입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기업 투명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기존 그룹 체제에서는 A사가 B사 지분을 소유하고, B사는 C사, C사는 다시 A사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돌아가며 순환 출자(A→B→C→A)를 한다. 이 경우 한 계열사의 경영 성적은 다른 계열사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상호 출자식으로 지분을 소유할 수 있으므로 재벌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회사와 자본금을 무한정 늘려갈 수 있다. 경영 불투명성, 경제력 집중 등 재벌 그룹들이 그동안 비판받아온 문제점들이 바로 이 순환 출자에서 파생되었다.
게다가 순환 출자된 한 회사가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면 그룹 전체가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2003년에는 미국의 사모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주)SK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하면서 그룹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 사건은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순환 출자의 허점을 드러내 국내 대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지주회사가 되면 ‘지주회사→자회사’로 지분 구조가 수직 계열화해 투명성이 높아진다. 자회사들은 같은 지주회사 아래 있는 다른 자회사에 대한 출자 부담 없이 자신의 사업 영역에 몰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배 구조 개선 외에 경제적인 이득도 상당하다. 우선 구조 조정을 촉진할 수 있다. 지주회사로 간다는 것은 우량 자회사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 ‘클린 컴퍼니’로 거듭난다는 의미와 같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부실 기업을 잘라버리고 M&A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법적 실체가 모호해 논란이 되고 있는 구조조정본부를 대체해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하게 될 뿐 아니라 자회사가 효율적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주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도 낸다.


삼성그룹, 지주회사 설립에 3조원 필요


 
지주회사 도입은 기업 주가에도 호재로 작용한다. 투명성이 좋아지고 투자효율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LG나 GS홀딩스 등 오래 전부터 지주회사로 탈바꿈한 기업들은 주가가 장기간에 걸쳐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코스피(KOSPI)지수는 약 3.99% 오른 데 비해 GS홀딩스 주가는 27.8%나 상승했다. 농심홀딩스(11.3%), 동화홀딩스(28.8%), 신한금융지주(15.7%) 등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거론된 한화·금호석유화학·두산·코오롱 등 대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꼭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주회사를 세워 모든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확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삼성그룹의 경우 3조원가량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현재 주요 그룹이 가진 주식은 오래 전부터 보유하던 것이라 양도·양수 과정에서 세금 폭탄을 얻어맞게 되어 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들이 ‘현재로서는 계획 없음’을 밝히고 있는 것도 비용과 세금 문제가 금방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 영역을 분할하다 보면 경쟁력 강화에 오히려 실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게임업체인 네오위즈가 최근 지주회사 전환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매출의 90% 이상이 게임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굳이 기업을 4개로 분할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게임사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비판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에 지주회사로 전환한 평화홀딩스는 전환 직후 주가가 35%가량 떨어지기도 했다. SBS의 경우 지난 2월 정기 주주총회에 지주회사 전환 안건을 올렸으나 주요 주주들이 대주주인 태영의 독점력만 강화한다며 반대해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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