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다니는 시한폭탄 ‘째깍째깍’
  • 정우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30 09: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동자금 5백40조원 육박…분당급 신도시 발표되는 6월의 행보에 주목

 
장마철에 모래로 살짝 막아놓은 강둑과 같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가 부동자금에 대해 한 말이다. 모랫둑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것처럼 부동자금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뜻이다.
부동자금 5백40조원. 전주는 물론 정부, 금융권, 부동산 업계 등 전국민이 이 돈의 행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뭉칫돈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나라 경제의 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 미만의 단기성 부동자금은 △2003년 4백6조원에서 △2004년 4백72조원 △2005년 5백15조원 △2006년 5백23조원으로 늘었다. 올 4월 현재는 5백40조원대에 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부동자금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증시로 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 지수가 1550포인트를 넘나들고 코스닥도 700을 넘보고 있다. 계속되는 최고치 경신에 과열 투자가 우려될 정도이다. 증권사의 신용 잔고도 사상 처음 2조원을 넘었다. 1조원에 달한 지 한 달 만에 두 배로 늘었다. 관망하던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증시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펀드로의 유입도 활발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에만 3조6천억원이 펀드로 들어왔다. 또 저축성 예금이 올 들어 8조3천억원 줄어든 대신 주식형 펀드는 5조원이 늘었다. 고객 예탁금도 1조5천억원이나 늘어났다. 펀드나 예탁금 쪽으로 뭉칫돈이 흘러든 것이다.
최준식 전 동양종금 상무는 “5백40조원 거의가 단기성 예금이다. 물주들이 부동산에는 손을 뗀 것 같고 주식 쪽으로 돈이 들어오고 있다”라며 부동자금이 증시로 쏠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윤국현 부국증권 목동 지점장은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계 사람들은 자산의 대부분을 증권이나 금융보다 부동산에 묶어둔다. 부동산 소유욕이 시들기 전에는 부동자금이 증시로 흘러드는 데 한계가 있다.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해 부동자금이 증시 쪽으로 20%, 100조원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다”라고 전망했다.
부동자금은 부동산가에 숨어 있다. 지난 3월 인천 송도 ‘코오롱 더 프라우’ 오피스텔 청약 때 경쟁률이 4천8백55 대 1을 기록한 것은 ‘부동자금은 부동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1백23가구 분양에 59만7천여 명이 접수해 흘러든 돈이 5조3천억원에 달했다.


미술품·금에도 ‘눈독’…대부업 시장도 좋은 활동 무대


 
서울 강남도 아닌 인천의 오피스텔 청약에 5조원이 몰린 것은 부동산 주변에 수백조원의 돈이 대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최근에는 대우건설의 서울 고척동 고척2차 푸르지오 1순위 청약에 1만명이 접수해 2백47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입지 조건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청약자들이 벌떼처럼 몰렸다. 부동산 분야 한 전문가는 “부동자금이 신도시, 고급 주상복합, 도곡동의 동부 센트레빌 같은 로또 부동산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서울 강남 대체용으로 개발된 판교, 화성시 동탄, 용인시 동백지구 등에서 보았듯 ‘돈이 될 만한 물건’만 있으면 동원할 수 있는 돈다발이 부동산가에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의 시기는 오는 6월이다. 분당 규모의 신도시 발표가 예정되어 있어 부동자금이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블랙홀처럼 부동자금을 빨아들일 것으로 예상한다. 증시로 몰리는 돈은 일시적인 것이며 그 규모는 부동자금의 곁가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은 투자 범위가 넓다. 그래서 규제하기도 힘들고 풍선 효과도 잘 나타난다. 아파트를 규제하면 상가 쪽으로 돈이 몰리고, 둘 다 어려우면 땅으로 돈이 흘러간다.
넘쳐나는 부동자금은 적지만 해외로도 물꼬를 트고 있다. 지난해 해외 부동산 투자는 2천 건이 넘었다. 투자액도 8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서도 투자는 계속 늘어나 지난 3월 해외 부동산 투자 건수는 2백29건, 액수로는 9천8백만 달러에 달했다.
나라별로는 미국이 87건으로 으뜸이고 캐나다가 33건으로 뒤를 이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이는 돈벌이보다 실버형 투자로 보인다. 일본에도 한 달간 7건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는 올해 2월의 6천4백만 달러보다 53% 늘어난 것이다. 건당 취득액은 43만 달러였다.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투자 한도가 지난 2월 100만 달러에서 3백만 달러로 오르면서 액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한인 타운을 중심으로 뭉칫돈이 몰려다니며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주재원과 유학생까지 투자에 나서는 실정이다.
해외 부동산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자 설명회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우리은행이 4월17일 신세계백화점에서 설명회를 가진 것을 비롯해 HSBC, 하나은행이 투자 안내에 나섰다.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까지 생겨나고 있다.
돈이 넘치면서 미술품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건물이나 집안 장식품이었던 미술품이 돈벌이용 투자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액수도 매년 늘어 2001년에는 100억원대 미술품이 거래되었으나 2002년 1백70억원, 2006년 5백70억원대로 불어났다. 올 들어서는 1분기에만 2백40억원어치가 거래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렇게 나가면 올해 말에는 거래액이 1천억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미술품 거래 ‘1천억원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림 경매장에는 장년층과 젊은이 할 것 없이 관람자와 참가자들이 몰리고 있다. 경매 시장에 나온 그림들의 90% 이상이 예정가보다 높은 값에 낙찰되고 있고 낙찰 건수도 한 해 3천~4천 점에 이른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술품 전문 펀드도 나와 눈길을 끈다.
금도 부동자금이 흘러들기 좋은 틈새 투자처이다. 신한은행이 금 관련 상품을 팔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달에만 3백80kg을 팔았고 2달 뒤인 올 1월에는 7백50kg을 팔았다. 금 상품 계좌 수도 1만 개가 넘어섰다. 금 투자 정보 사이트인 골드인포에 하루 5천명 이상이 방문해 접속 폭주로 서버가 다운될 때도 있었다. 은행을 통한 금 거래는 비실물 거래로 수수료(5%)와 부가가치세(10%)를 물지 않아 싸게 살 수 있고 개인이 직거래하는 것보다 위험 부담을 줄이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금값은 달러와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금융 대부업 시장도 부동자금 전주들에게는 좋은 활동 무대이다. 시장 규모는 약 18조원, 이용자는 3백2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록 업체는 1만7천5백39개였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만큼의 돈이 이 시장에 쌓여 있는지, 누가 얼마를 넣었는지,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지는 당사자들만 알 뿐이다. 드러나지 않는 뭉칫돈이 엄청나다는 얘기다.
부동자금은 유사 수신업체로도 유입된다. 투자자를 물어오면 투자액의 30%를 상품권으로 주고 몇 달에 나눠 현금으로 다시 돌려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기 때문이다. 금융 다단계 형태를 띠고 있는 유사 수신업체는 지난해 1백81개가 금융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는 증시나 펀드 쪽으로 부동자금의 물꼬를 돌리고 싶어한다. 부동산을 잡으면서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금의 물꼬를 분산해 터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동산·증권·은행·금 등 실물에 20~30%씩 나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