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필패’ 악몽 다시 꾸는가
  • 이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30 0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4·25 재·보선에서 ‘중원’ 획득 실패…지지율 거품론 힘 얻어

 

한나라당의 재·보선 불패 신화가 산산조각 났다. 경기 화성에서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기는 했으나 징조는 불길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가 당선된 전남 신안-무안은 그 특성상 제쳐놓고 볼 수 있다. 또 서울 양천구청장 등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참패도 일단 큰 상처는 아니다. 그러나 대전 서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의미가 다르다.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에게 나가떨어졌다. 하루아침에 싸늘해진 충청권 민심을 뼈아프게 확인한 것이다.
대전 서구 을 보궐선거 패배는 재·보선 불패 신화 붕괴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회의석 한 석의 문제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독주해온 대선 정국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충청 없이 대권 없다’는 역대 선거의 악몽이 또다시 한나라당을 마중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이는 또 사실 따지고 보면 내공도 없이 정권을 잡은 양 오만했던 한나라당의 업보인가.
한나라당만의 패배도 아니다. 대권 시험대로 간주해 ‘올인’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패배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대전시장 선거를 뒤집을 때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그 ‘불패 신화’에 치명타를 가했다. 대전 승리로 이 전 시장을 역전하려 했던 계획도 무너졌다. 급기야 박 전 대표측으로 분류되는 강창희 최고위원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 직을 사퇴했다. 
보궐선거 직전 정당 지지율을 보자. 여론조사 기관 R&R에 따르면 충청도 내 한나라당 지지율은 42.8%였다. 대전에서 한나라당을 침몰시킨 국민중심당은 3.3%였다. 물론 무당파가 35.2%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수치대로라면 무당파가 모두 국민중심당을 밀었다고 가정해도 한나라당이 이겼어야 옳다. 결과는 참패다.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는 정당 지지도보다 적은 37%만을 얻었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고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반면 충청도에서 정당 지지율 3.3%에 불과한 국민중심당 후보는 무려 6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한나라당을 일격에 무너뜨릴 필살의 힌트가 있다. 35%의 무당파는 물론 정당 지지도 12%인 열린우리당, 4.7%의 민주노동당, 1.4%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똘똘 뭉쳐 국민중심당을 밀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둘이 합쳐 지지율 70%를 훌쩍 넘는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요란하게 지역구를 드나들었지만, 반(反)·비(非)한나라당 세력의 태동을 눈치도 채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1년 이상 계속되어온 한나라당과 이명박·박근혜 두 선두 주자의 독·과점이 비토 세력을 결집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명박·박근혜의 지지율 합계 70%에는  ‘거품’이 있다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은 변변한 후보도 내지 못했다. 선거 결과도 기초의원 1명 당선이 고작이다. 당 간판을 내려도 시원치 않을 마당이다. 실제로 제2차 대규모 탈당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희색이 만면하다. ‘공룡’ 한나라당의 참패도 즐겁지만 12월 대선에서 다시 한나라당을 눈물 흘리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명박·박근혜 탓에 한나라당 비토 세력 결집


 

전남 신안·무안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씨 당선을 위해 손잡았다. ‘국회의원 세습’과 ‘김대중 정치 명문가’를 만들기 위한 ‘저질 연대’라는 비난 여론이 거셌다. 그래도 성공했다. 정치 도의나 체면 따위는 다 내던지고 얻은 결과다.
일단 홍업씨를 당선시켜놓고 보니, 범여권 통합의 밑그림이 어느새 그려졌다. 정치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이 족집게 같다. DJ 위력도 재삼 확인되었다. “대통령 선거 절반의 고비를 넘긴 셈이다”라는 즐거운 비명까지 나온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재·보선 불패 신화만 믿고 국민중심당과의 정면 대결에 나섰다.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따로국밥식’ 지원 유세도 볼 만했다. 보선에 나선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보다 그들의 인기만을 올리겠다는 자세였다. 이 전 시장측이 합동연설회나 선거 운동을 제안했지만 박 전 대표가 이를 거부했다. 대전 선거를 뒤집어 ‘미다스의 손’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4월의 대역전극’을 꾸미겠다는 박 전 대표측의 계산을 모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충청도 주민들은 이런 한나라당과 두 사람을 ‘황당하다’고 보았을 수 있다. 두 사람이 따로따로 골목길을 누비는 모습이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애초 국민중심당과 대립 전선을 구축할 이유가 없었다. 국민중심당은 보수 정당이고, 심대평 후보는 그 뿌리가 자민련이다. 더 멀리 가면 한나라당과 뿌리가 겹친다. 한나라당과 국민중심당이 손잡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정권이 걸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지는 선거이다. 대전 서구 을에서 당선자를 내보아야 내년 4월 총선까지 고작 임기 1년짜리이다. “더 큰 것을 위해 한나라당이 국민중심당에 양보했어야 했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참패 뒤의 한나라당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대에 속절없이 무너진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그뿐인가 이회창 후보의 오만으로 이인제 후보의 탈당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충청도가 통째로 무너졌다. 2002년은 어떠했나. 당시 노무현 후보의 ‘수도 이전’이라는 공약에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회창 후보는 “김종필씨를 잡아야 한다”는 주위의 간절한 호소를 묵살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이번 대전 선거 결과를 보면 10년 전, 5년 전의 한나라당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번 대전 서구 을 선거에도 김종필씨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최측근인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야 할 처지이다. 한나라당의 의석 1석 욕심이 또다시 JP와 척지는 결과를 몰고 왔다.
심대평 후보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반드시 당선돼 오만방자한 한나라당을 견제하겠다”라는 구호를 앞세웠다.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하면 정권 교체가 안 된다”는 으름장을 펴며 국민중심당을 ‘열린중심당’이라고 매도한 한나라당에 대한 ‘응징 호소’가 먹힌 결과다. 당선 직후 그는 “대전·충청이 나라를 바꾸는 중심에 서겠다”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충청을 넘볼 생각도 말라”는 통첩같이 들린다. 어느덧 심대평씨가 대선 정국에서 운명 줄을 쥔 JP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에 관한 한 ‘무(無) 충청, 무(無) 대권, 무(無) 정권’이다.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충청도 지지를 얻지 못한 후보가 이긴 예가 없다.
한나라당이 일을 그르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당 지지도와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대선 주자만 믿고 밀어붙인 결과다. 그런데도 태평한 소리가 들린다. 4·25 재·보선 참패가 한나라당에 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방 주사’를 맞았다는 것이다. 일리 있다. 선거 참패를 거울 삼아 참회한다면 국민들이 다시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정한 사이클에 의해 선거의 승패가 나눠지기 때문에 이번 패배는 대선 승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것도 일리 있다. 한나라당이 2000년 총선에서 제2당으로 밀려난 대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고, 그 대가로 4·25 재·보선에서 참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12월 대선에서는 웃을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사이클만 믿는다면 한나라당은 큰 ‘재앙’을 맞을지 모른다.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도 재·보선이 실시된 곳곳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하고 고전했다. 서울 구청장 선거와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패배는 ‘차기 집권당’으로 자리 매김해온 한나라당에 치명적일 수 있다.
기초 선거는 그야말로 밑바닥 민심 읽기이다. 도의원 공천 대가로 수억원이 오갔는가 하면, 선거법 위반 당원 벌금을 한나라당 구청장이 대납하고,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하며 5천만원을 제공하는 등 마치 정권을 잡은 것으로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 한나라당을 향해 유권자가 내린 준엄한 경고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서청원·박희태·김덕룡·이회창 등 ‘올드보이’를 대선 캠프에 합류시키려는 ‘그 나물에 그 밥’ 상차림도 국민을 식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4·25 재·보선 결과는 12월 대선에서 한나라당 ‘축출’ 가능성을 만천하에 알렸다는 데 함의가 있다. 아무리 한나라당과 대선 주자들이 앞서도 ‘중원’을 장악하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라는 점이다. 충청도는 1997년 대선 때부터 호남과의 ‘서부 벨트’ ‘서부 연합’에서 격자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서부 벨트의 중심은 호남이지만 충청이 가세하지 않는 ‘서부 연대’는 무용지물이다. 1987년 민정당 노태우,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민당 김대중, 공화당 김종필 후보가 출마해 김종필씨가 충청도를 점유했을 당시 김대중 후보가 3등으로 낙마한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충청이 독립하면 영남이 독주해온 것이 우리 선거 역사다.


범여권, 서부 벨트 결성해 한나라당 축출 시도


 
4·25 재·보선 결과가 ‘서부 벨트’의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라면 한나라당을 ‘축출’할 수 있는 꿈틀거림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한나라당 포위 구도’이다. 충청권만 한나라당 지지 대열에서 이탈시키면 가능하다. 충청권을 자극하는 데는 ‘영남 견제’라는 방법이 있다. 충청권을 한나라당에서 분리하면 호남도 어렵지 않다. 이른바 ‘서부 벨트’가 형성되는 것이다. 충청은 대칭점에 ‘영남’이 서면 어느새 ‘서부 연대’에 진입하고 만다.
아직도 충청권에서 한나라당과 이명박·박근혜 지지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현재 충청도에서의 지지도는 이명박 31.5%, 박근혜 29.5%, 손학규 5.2%, 정동영 4.4%, 강금실 2.3%, 이해찬 1.7%, 정운찬 1.1%, 모름·무응답 23.4%이다.
그러나 충청도는 도통 속내를 알기 어렵다. 도민의 56.3%가 “충청권 민심을 얻어야 집권 가능하다”라고 답했다. 정권 창출의 노하우와 자부심이 있다는 얘기다. 또 충청권 민심을 잘 대변할 대선 후보로 정운찬(24.3%), 이인제(16.5%), 이해찬(12.9%)을 꼽았다. 지금은 이명박·박근혜로 쏠린 듯이 보이지만, 언제 어디로 이동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이 정운찬 전 총장에게 목을 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지도가 3%를 넘지 못하지만 그의 폭발력은 개인 인기가 아니라 지역 구도에서 온다고 보는 것이다. 정 전 총장이 “고향(충청도)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갚겠다”라며 지역 정서부터 자극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호남은 자동적으로 “따라 온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 재·보선은 한나라당의 인기가 거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한나라당은 경기 화성 국회의원과 광역·기초 의원 일부를 제외한 50여 개 지역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광역·기초 의원 선거가 바닥 민심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정당 지지율 50%를 무색하게 만든 결과이다. 게다가 두 후보의 지지율 역시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이 전 시장의 40%대 지지율 역시 ‘거품’일 가능성을 말해준다. 여권 후보가 없는 가운데 독주해온 결과라는 얘기다. 여권 후보가 등장하면 20%대까지 추락할지 모른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의 지지율에는 결국 여권 후보에게 갈 수밖에 없는 호남 지지 표와 노대통령 지지 표가 20%가량 포함되어 있어서다. 박 전 대표는 ‘마의 20%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명박·박근혜 두 진영은 여전히 ‘네 탓이오’다. 박 전 대표 진영의 이혜훈 의원은 “50%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람도 책임이 있다”라고 이 전 시장을 겨냥했다. 이정현 공보특보도 “이 전 시장은 경북 봉화 지원 유세에서 후보 얘기보다 본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해 항의를 받았다”라고 비난했다. 이 전 시장측도 “박근혜 파워가 과대 평가됐다”라고 응수했다. 재·보선에 관한 한 ‘미다스의 손’을 자부해온 박 전 대표에 대한 평가절하다. 과연 이번 4·25 참패가 보약이 되었을까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4·25 재·보선은 열린우리당이 선거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이 ‘부재’한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다. 참여정부와 대통령의 실정이 무대에 오르지 않고 후보 개인과 정당에 대한 평가로 끝난 선거이다. 대통령 선거는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선택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보여주려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인가. 4·25 선거는 특히 한나라당과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에게 선거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