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퇴치, 말만 번지르르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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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국가의 아프리카 원조, 눈 가리고 아웅…액수 적고 약속도 잘 안 지켜

 
월스트리트에서 본봉을 제외하고 한 해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나가는 돈은 2백40억 달러이다. 미국은 1년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1천억 달러의 군비를 쓰고 있다. 선진 8개국 정책 포럼인 G8은 2004년 아프리카 원조금으로 2백50억 달러를 책정하고 2010년까지 점차 늘려 5백억 달러로 증액하기로 했다. 그래 보아야 이 액수는 부자 나라 GDP 1%의 10분의 1이다. 그나마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원조의 대부분은 원조국의 비싼 상품을 사는 데 사용되고 실제 빈국의 퇴치에 할당된 액수는 전체 원조금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원조금의 40%에는 원조국의 물건을 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발표된 21개국 개발 원조 실적 지수에 따르면 가장 많은 돈을 내는 일본과 미국은 꼴찌를 하고 네덜란드가 1위를, 덴마크와 포르투갈이 2, 3위를 차지했다. 일본과 미국은 조건이 붙은 원조를 많이 했고 상위 국가들은 순수 원조를 많이 했다는 말이다. 또한 약 80개 원조 기관이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원조 업무를 다루다 보니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인권단체들은 이런 식으로 빈국 원조가 진행될 경우 빈곤 퇴치는 요원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G8은 2000년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정했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기아·질병에 대처한다는 원대한 포부에서다. 2005년 스코틀랜드 글린니글스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아프리카 원조 증액을 결의했다. 그러나 후속 조처는 따르지 않았다. 할당된 예산이 없다는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미국이 특히 냉담했다.
G8은 이제 약속 위반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선 지원국이 줄고 부채 탕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프리카와 개도국을 돕는다는 인류의 대의는 비틀거리고 있다. 2005~2006년 사이 아프리카 원조는 겨우 2% 늘었다. 탕감된 부채는 제외된 액수이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총 원조액으로 보면 실질적으로는 같은 기간에 2% 감소한 셈이다. 통상 원조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세계은행조차 부채 탕감을 빼면 대규모 원조 약속은 물 건너갔음을 시인했다.
G8 정부 관리들이 비공식적으로 하는 말은 더욱 가관이다. 원조 약속은 어차피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언급이기는 하나 그런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충격적이다. 이는 정상회담의 일부 분위기를 나타낸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빈곤 퇴치가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인식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부자 나라, 특히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상황은 금방 달라질 수 있고 미국이 나서면 다른 나라도 따라온다고 그는 주장한다.


소극적인 미국부터 먼저 팔 걷어야


 
먼저 2010년까지 매년 2백50억 달러를 아프리카에 준다던 약속부터 지킬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G8 국가들의 생각이 변한다. 액션 플랜도 없고 약속을 어기면 최빈국의 태도도 달라진다. 수혜국들은 지원국들의 계획을 알 필요가 있다. 얼마를 줄 것이며 매년 얼마가 증액되는지 알아야 자체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다. 원조는 주로 도로·발전소·학교 건설과 교사·관리들의 훈련에 사용된다. 이런 투자는 계획과 실천이 중요하다. 원조는 가상 게임이 아니다. 수년에 걸친 구체적 계획과 이를 지원하는 명백한 약속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수혜국들은 이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돈을 쓰고 추가 계획을 세운다.
G8의 문제가 선의나 정치적 의지의 결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모른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원조 기관들은 빈곤 문제 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는 공화당에 호의적인 종교단체에 원조 임무를 일임함으로써 사실상 원조 행위를 정치화했다. 이 때문에 에이즈 퇴치 자금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종교적 배려에서 사용된 것도 사실이다. 다행한 것은 아직 해법은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럭저럭하는 사이에 나름으로 건강, 교육, 농업, 사회적 인프라 구축의 우선 순위를 터득했다. 이 밑천은 지금부터 2015년까지 개선된다. 그렇게 되면 밀레니엄 개발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이제 계획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거나 구상 단계에 들어섰다. G8이 돈만 내주면 되는 것이다. 이제는 G8 국가들이 빈국들에 연설만 할 것이 아니라 말을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었다.
G8의 빈곤 퇴치 작전이 비틀거리는 데는 구성원의 문제도 있다. 1975년 석유 위기 이후 미국의 주도로 경제협의기구로서 처음 출범한 것이 미국·영국·이탈리아·서독·일본·프랑스로 구성된 G6이다. 다음해 캐나다가 추가되어 G7이 되고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소련의 계승자 자격으로 들어와 오늘의 G8이 생겨났다. 그 후 러시아의 가입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개혁 정책과 나토의 동진 정책을 묵인하는 정치적 협조에 대한 배려로 러시아를 가입시켰으나 지금 푸틴 대통령이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는 바람에 러시아를 G8에서 빼고 G7+1로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의 조 리버먼·존 매케인 두 상원의원은 푸틴이 민주주의로 환원할 때까지 러시아를 제명하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는 취약한 경제 규모 때문에 G8 재무장관 회의에는 불참한다.
2005년 스코틀랜드 회의에서는 G8+5도 창설되었다. 중국·멕시코·인도·브라질·남아공 5개국을 참여시켜 확대된 경제 포럼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중국은 ‘+5’가 아니라 G8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만만찮다. G8은 이제 창설 당시와는 달리 GDP 기준이 무너졌다. 경제력 외에 국제적 위상도 고려된다. 스페인은 GDP에서 캐나다를 제치고 8위국이 되었으나 G8 회원국은 아니다. G8이 여전히 북반구 국가들이 주도하는 바람에 이것이 서구의 경제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한국이 ‘+5’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한국 정부가 음미할 일이다. 해마다 열리는 G8 정상회담의 단골 의제는 아프리카의 빈곤, 개도국의 부채 위기, 지구온난화, 에이즈, 세계화, 테러리즘 등이다. 워낙 주제가 많다 보니 정작 빈곤 문제는 뒤로 밀린다.
원조는 한손으로 주고 다른 한손으로 빼앗는 식으로 해서는 결코 목적을 이룰 수 없다. 원조국들은 빈국들의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면서 그들의 접근은 금지한다. 원조는 장기적으로 보면 원조국의 혜택으로 돌아간다. 거지에게 동냥을 주는 사고방식은 버릴 때가 되었다. 빈국들도 두 손 놓고 원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구나르 미르달은 자조 정신이 없는 빈곤 탈피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이 자조 정신으로 성공했다. 아프리카의 빈국들이 참조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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