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200km’ 바닷속 실크로드 열리는가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5.07 13: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해저터널에 대한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21세기 최대 프로젝트'이자 세계 최장이 될 한·일 터널은 과연 꿈의 바닷길이 될 것인가. 경제성과 기술적 타당성 등을 집중 조명했다.

 
"다음 세기 도쿄(東京)를 출발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대한해협의 해저터널을 가로질러 서울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베이징과 모스크바로, 파리와 런던으로, 대륙을 잇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우정 어린 동반 여행을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나갑시다.” 1990년 5월25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바다 밑 땅속에 터널을 만들어 자동차와 열차가 다니게 하자는 구상은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한·일 해저터널이 만들어지면 대륙과 연계가 쉬워짐으로써 섬나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경제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다. 사람과 화물의 터널 통행은 수송비를 대폭 절감시켜줄 것이고, 화산 폭발이나 지진 등 일본 열도를 침몰시킬 수 있는 대재앙이 닥치더라도 안전한 피난길을 마련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면서 한·일 간 수송 비용을 항구적으로 절감하고 일본의 새로운 화물 수송 중계 기지로서의 이익을 보게 되는 등 이점이 있다.
따라서 노태우 대통령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마다 긍정적인 관심을 표명해왔다.
찬성론자들은 한국과 일본이 자동차로 2시간대, 고속열차로 1시간대에 연결되는 이 해저터널 프로젝트가 양국의 지리적 단절을 해소시켜 명실상부한 동북아 경제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들어 한국이 경제 성장에 힘입어 영종도 국제공항, 서울~부산 간 고속철도 등 인프라 구축을 빠르게 진행해온 것도 해저터널과의 연계성을 좋게 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해저터널이 경부선을 거쳐 북한의 경의선,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계될 경우 한국과 일본, 러시아, 유럽이 연결되면서 국제 물류 체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부터 부산과 서울을 거쳐 평양~신의주~시베리아~유럽까지 도로와 철로가 이어지게 되는 새로운 아시아 로드의 핵심이 바로 해저터널이다.
일본측이 검토해온 안들에 따르면 한·일 해저터널은 일본 규슈(九州)의 가라쓰(唐津)에서부터 쓰시마(對馬島)를 거쳐 부산 또는 거제도에 이르는 2백~2백30㎞의 바다 밑에 터널을 뚫어 도로와 철길을 놓게 된다.
한·일 해저터널연구원의 박경부 이사장은 “일본에서는 일·한 터널연구회(회장 노자와 다이조)가 중심이 되어 1982년부터 9년간에 걸쳐 지형·지질 조사를 실시했으며 3개의 후보 노선을 설정해놓고 있다”라고 밝혔다.
숭실대학교 신장철 교수(일본학과)는 “1930년대 일제는 대동아공영권의 형성을 위해 한·일 터널, 쓰스마 터널, 칸몬 터널, 소야 터널, 세이칸 터널 등 5개 해저터널 건설을 통해 일본 본토와 사할린, 극동러시아, 만주, 한반도 등을 연결하는 순환 철도망을 계획했으나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해 실현에 옮기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부산 시민단체 등은 ‘반대’ 목소리 높여


 
한편 한·일 해저터널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50조~2백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비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며 과거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야욕을 돕게 된다는 등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21일 국회에서는 양형일 의원 사무실과 한·일 해저터널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한·일 해저터널 연구 개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황학주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한해협 터널 공사의 예상 비용은 100조원이지만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누리게 될 파급 효과는 수백조원 이상에 달할 것”이라며 “이 터널이 놓이게 되면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전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실크로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재완 중앙대 교수(도시계획학과)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 따라 발생하는 파급 효과를 일본 88조원, 한국 54조원으로 제시했다. 일본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되지만 ‘건설비 예상액을 48조원, 한국측 부담을 6분의 1’로 설정할 경우 한국은 투자 효율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가장 논란이 뜨거운 곳은 부산이다.
부산에서는 지난 2월 말 허남식 부산시장이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 대한 타당성 논의를 제기한 이후 시민단체들이 반대 집회를 갖는 등 지역 이슈가 되고 있다. 부산시는 그동안 한·일 해저터널이 부산 지역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왔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와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은 지난 3월21일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시민단체 대표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일 해저터널 반대 시민단체 집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한·일 해저터널이) 부산 경제를 통과 경제로 전락시킨다”라며 해저터널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반대론자들은 부산이 동북아 허브항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부산이 중국(중국 횡단철도)이나 러시아(러시아 횡단철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될 대륙 횡단철도의 기점과 종점으로서 얻게 될 이익을 일본이 고스란히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산이 대륙의 관문이 아닌 경유지로 전락해 한국의 물류산업, 관광산업, 해운업 등이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세계 지배를 노렸던 일본의 대륙 진출 야망을 다시 북돋아 일본을 강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한·일 해저터널이 만들어지면 기존 해저터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규모가 커서 세계 최대의 해저터널이 될 것이다. 길이가 2백km 이상이 되어야 하므로 영국·프랑스 해저터널(50㎞)의 4배가 넘는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일본 혼슈(本州)와 홋카이도(北海道)를 연결하는 세이칸(靑函) 해저터널(53.9㎞), 도버 해협의 유로 터널(50.45㎞) 등이 있다.
최근 들어 대륙과 대륙, 섬을 연결하는 세기적인 해저터널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지브롤터 해저터널을 건설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총 1백50억 달러를 들여 자바-수마트라 간 해저에 33km 길이의 트윈 터널을 추진하고 있다. 또 알래스카와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해저터널도 미래 프로젝트로 제시되고 있다(72~73쪽 딸린 기사 참조).
한편 건설교통부는 지난 2003년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 대한 필요성과 경제성 연구를 진행해 ‘현재로서는 경제성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성이 없다고 해도 앞으로 꾸준히 논란이 일 것이고 언젠가는 실현되어야 할 프로젝트인 만큼 미래 지향적으로 사전 조사와 타당성 분석 등은 지금부터라도 추진해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