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식에 ‘핵 포기’ 신호는 없었다
  • 조재윤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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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 창건 기념일에 대규모 무기 시위…‘선군 정책’ 칭송도 봇물

 
4월25일은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김일성 광장에서 벌어진 열병식에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네 종류의 미사일 48기가 선보였다. 괌까지 도달할 수 있는 신형 중거리 미사일도 처음 등장했다. 탱크·장갑차·기갑부대·중화기 같은 구식 무기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김격식 북한군 총참모장은 “오늘날 미제국주의자들의 대조선 압살 정책으로 전쟁의 위험은 가셔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조선중앙TV가 녹화 중계한 열병식이 전하는 신호는 분명했다. 미국과 핵 대결을 벌여온 김정일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열병식은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하고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선언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으로 상징성이 강하다. 이 광경은 북한에서 핵을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드냐 하는 느낌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북한 매체들은 지난 몇 주 동안 북한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마침내 외침으로부터 공화국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지도자의 선군(先軍) 정책 덕분”이라고 말했다. 열병식에 관한 북한 매체들의 보도 어느 대목에도 핵을 포기한다는 말은 없었다. 
선군 정책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집착은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노틸러스 연구소의 피터 헤이스 소장은 “김정일이 몇 푼의 경제 원조와 핵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천년 만에 이룩한 핵 보유국 지위가 제공하는 혜택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 2월13일 베이징 6자 회담에서 영변 원자로를 폐쇄한다는 데 합의했으나 이미 보유한 핵무기 처리 문제는 추후 별도로 논의하기로 했다. 원자로 폐쇄도 BDA 자금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AP통신에 의하면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 빅터 차는 4월24일 뉴욕 주재 북한 관리들에게 조속한 핵 폐기 조처를 촉구하면서 미국의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도 미국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이 불확실한 데서 나온 말들이다.


“핵 보유가 군부에 오히려 독 될 수도”


김정일의 선군 정책은 본질에서 권력 구조의 변동을 의미한다. 과거 노동당이 장악했던 권력이 군부로 이동했다는 말이다. 평양 주재 전 러시아 외교관 알렉산더 보론초프는 “군이 덜 이념적이고 더 실용적이기 때문에 군에 권력을 쥐어주었다”라고 분석했다. 북한 매체들이 ‘선군’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였다. 대량 아사 사태가 벌어진 해이다. 기아 사태에 직면한 김정일은 집권 강화를 위해 변화가 필요했고 그것이 선군 정책으로 표출되었다. 이 정책으로 군은 신바람이 나서 더욱 충성을 맹세하고 핵 개발로 치달았다. 올해 북한의 국방비는 전체 예산의 15.8%인 4억8천9백만 달러로, 한국의 2백64억 달러에 비해 푼돈이다. 그러나 여기에 북한군이 벌이는 각종 사업의 소득은 포함되지 않았다.
헤이스 소장은 북한의 핵 보유가 군부에 마냥 좋은 뉴스가 될 수는 없다는 흥미 있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정일은 이제 핵 개발에 성공한 만큼 군이 보유한 자원을 경제로 전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부는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군부가 가만히 앉아서 위기를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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