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의 바다’에 빠진 아이들
  • 최만수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5.1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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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35%, 인터넷 통해 포르노 등 ‘접속’…유해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설치 '필수'

 
택시 기사 김영훈씨(43)는 지난 4월 10만원이 넘는 휴대전화 요금을 보고 놀랐다. 살펴보니 통화료 외에 성인 사이트의 서비스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성인 사이트에 문의를 해보고, 김씨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이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사이트를 이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아이 교육을 똑바로 시켰다고 자부했던 김씨이다. 그런 그도 부모가 허락하는 시간에만 인터넷을 사용하게 했지만 음란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까지도 손쉽게 음란물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 인터넷 강국 한국의 현실이다.
아이들이 인터넷 음란물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실정이다. 검찰과 경찰이 ‘음란물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무한히 넓은 인터넷 세계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음란물을 통제하는 법이나 기술이 나오면, 이를 무마시킬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만들어진다. 정부의 노력에도 청소년들은 여전히 인터넷 음란물에 노출되어 있다.
지난 2월 경기도 남양주에서 중학생 6명이 여중생을 성폭행한 후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 후 경기도 가평에서도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인 남학생들은 평소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자주 접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별다른 죄책감을 보이지 않았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번 사건을 저지른 남학생들은 성 경험이 없었다. 가해자들은 음란물을 통해서 성을 배웠기 때문에 강간도 정상적인 성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P2P 사이트에 들어가면 현재 인터넷에 유포된 음란물 중에는 집단 강간, 근친 상간 등 잘못된 성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심지어 수간·사디즘·마조히즘 같은 변태적인 동영상들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얼마 전 가학적 관계를 주제로 한 음란 사이트의 운영자가 초등학생들로 밝혀지기도 했다. 부모 세대들이 도색 잡지를 돌려보던 수준이 아니다. ‘자라는 아이들이 가끔 그런 것들을 볼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과 이분희 교수는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어 문제다. 음란물을 많이 접하면 성에 대한 도덕관념이나 책임감이 제대로 형성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중·고생 절반 이상이 매일 음란물 검색


 
국가청소년위원회의 ‘2006년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절반 이상이 매일 음란물을 검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YMCA 청소년 성문화센터 조사에 따르면, 음란물을 경험한 남자 초등학생은 34.5%나 된다. UCC 시대를 맞아 직접 음란물을 생산·유포하는 청소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포털 사이트 야후코리아의 인기 동영상 코너에는 UCC 포르노 동영상이 6시간 동안이나 게재된 적도 있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국내 대형 포털들은 자체 감시 시스템과 금칙어 지정 등을 통해 청소년의 음란물 접근을 막고 있지만, 부모나 어른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검색할 경우 막을 길이 없는 실정이다.
구글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검색창에 ‘섹스’라는 검색어만 입력해도 음란 사이트들이 화면 가득 나타난다. 세계의 인터넷망과 연결되어 파일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P2P 사이트의 경우, 음란물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색창에 아무 단어나 입력해도 그와 연관된 수십, 수백 개의 음란물이 뜬다. 예를 들어 ‘학교’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학교에서 성관계를 갖는 주제의 동영상이 100개 이상 나타난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승진씨는 “현재 1백50~2백명으로 운영되는 모니터링 조직을 강화할 계획이며, 네티즌들의 활동을 신속히 반영하고자 온·오프 라인으로 신고가 가능한 신고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외 P2P 사이트와 검색 사이트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이들을 음란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유해 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음란 사이트나 P2P 사이트로의 접근뿐 아니라 동영상 재생 차단 및 인터넷 이용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한 달에 3천~5천원을 내면 사용할 수 있으며, 제이니스의 ‘맘아이’(http://www.momi.co.kr), 지란지교 소프트의 ‘엑스키퍼’(http://www. xkeeper.com), 스마트 플레이의 ‘블루실드’(http://www.blueshield.co.kr) 등이 있다. KT는 ‘메가패스 클린아이’, 하나로통신은 ‘하나포스 가디언’이라는 프로그램을 홈페이지·고객센터·가입 대리점을 통해 신청할 수 있게 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음란물 접속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녀가 휴대전화를 개통할 때에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꼭 알려야 한다. 미성년자의 휴대전화로 등록될 경우 SK텔레콤·KTF·LG텔레콤 모두 성인물에 접속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해준다. 자녀가 부모의 휴대전화로 접속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것도 성인물 차단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가입 대리점이나 ‘114’를 이용해 신청하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들에게 바른 성의식을 심어주고 음란물의 나쁜 점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우리성’(http://www.woorisung.com)이라는 성교육 사이트를 운영하는 제주중앙초등학교 이채금 보건교사는 “음란물을 접하게 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음란물을 본 경험이 있다는 아이들이, 최근에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사춘기 시절뿐 아니라 어릴 때부터 성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학교에서도 인터넷 음란물에 대한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성교육은 생물학적 부분에 머무르고 있다. 경희의료원 소아정신과 반건호 교수는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이다. 스포츠 등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실외 활동들을 늘려나가면 자연스럽게 음란물에 대한 접촉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부는 5월1일부터 언제 어디서나 국번 없이 ‘1377’번으로 음란·청소년 유해 정보 신고를 받는다. 1377번을 통해 접수되는 신고는 경찰청, 포털 및 UCC 사업자로 구성된 핫라인에 통보되어 관련 포털 사이트 등에서 해당 정보 삭제, ID 이용 정지, 형사 고발 등의 조처가 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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