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돈을 술잔에 담아 마신다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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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자 2백21 만명…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15조원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술잔에 빠져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 누군가 음주의 유해성을 이렇게 경고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는 2백21만명, 음주로 인한 질병 비용은 2006년 한 해 2조7천9백17억원으로 산출되었다. 이 가운데 과도한 알코올로 인한 정신·행동 장애가 1조5백93억원(37.9%), 간암 6천여 억원(22.9%)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무분별한 음주가 일으키는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대포’ 한잔은 공동체 문화의 전형


 
우리 사회는 술에 관한 한 유독 관대하다. 술자리는 공동체의 결속 혹은 통합의 의미를 지닌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한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대작(對酌) 문화’는 우리 민족의 ‘정’ 문화와도 통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퇴근길에 동료에게 “대포 한잔 어때?” 하고 건네는 말 속에는 정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대포’라는 말에는 여러 사람이 술을 함께 나눠 마시는 분위기가 담겨 있다. 공동체 문화의 전형이다. 술자리를 통해 동질성과 집단 의식을 높여 갈등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 음주 문화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음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우리의 술 문화는 어떤가? 폭탄주 마시고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술 문화는 여전히 우리가 반쪽 여가를 즐기는 데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폭탄주는 과다한 업무량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와 함께 수십 가지의 제조법을 낳았다. 폭탄주는 똑같이 마시고 똑같이 취하자는 군사 문화의 일종이다. 일반인에게서 대학생들에게까지 폭넓게 전수되고 있다.
고영삼 부경대 교수(사회학)는 <넘치는 술, 주본주의(酒本主義) 사회>라는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과도한 음주 문화에는 그럴 만한 사회·문화적 이유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다른 민족이 7~8세대를 거쳐 이룩한 산업화를 1~2세대에 압축적으로 이룩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술’과 ‘종교’였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간 술 소비량, OECD 국가 중 최고


박재환 부산대 교수(사회학)는 <술과 사회학>이라는 저서에서 “만취형 술자리는 몰개성의 집단주의의 발로이다.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적인 생활 원리로 정착했을 때 음주는 정서적 교류의 방식이 아니라 목적 달성 수단으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교수는 “과거에 술은 생산 노동 현장에서 피로 회복제의 역할로 출발했다. 점차 노동의 영역에서 퇴각했던 술은 음주 산업을 통해 여가의 영역을 장악한 후 다시 ‘술상무’와 같은 접대 문화를 양산하면서 노동의 영역을 재공략하기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회식 등 직장 내 음주 문화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한 업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절반가량이 “술을 지나치게 마시거나 음주를 강요해 회식이 싫다”라고 응답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최근에 바뀌고 있는 직장 내 술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40대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한국인의 사망 원인 2위 간질환’ ‘연간 술 소비량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등 술과 관련한 여러 오명을 안고 있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거나 대인 관계가 좋다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를 빙자해 술을 강권하는 직장 풍토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곡된 음주 문화는 기업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개인 건강 악화와 엄청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음주 폐해의 심각성은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제부터라도 술을 강권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직장에서 음주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잘못된 음주와 회식 문화에 대한 경영자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그래야 술을 강요하는 직장 분위기도 바꿀 수 있다.

위스키 한 잔의 경제

룸살롱 양주 '원샷'은 초·중고생 참고서 한권 값

 
양주는 유흥업소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룸살롱’ 같은 고급주점에서는 국산 양주 한 병(5백ml)에 20만원선이다. 단란주점이나 나이트클럽은 고급 룸살롱보다 양주 값이 5만원 정도 싸다. 주점의 분위기와 서비스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에 술집을 찾는 손님들은 공감한다. 여성 접대부가 나오지 않는 ‘바’나 카페는 단란주점의 반값이다. 물론 양주를 주점이 아닌 할인점이나 가게에서 구매했을 경우에는 3만5천원에 불과하다.
스트레이트 양주 한 잔이 30cc라고 보면 5백ml 한 병에 약 18잔이 나온다. 룸살롱에서 마시는 양주 한잔은 1만1천1백원이나 되는 셈이다. 룸살롱에서 양주를 마시는 손님들은 초·중고생 자녀의 참고서 한권 값을 ‘원샷’에 들이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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