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용병, 감독은 '절절' 선수는 '펄펄'
  • JES ()
  • 승인 2007.05.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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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엇갈린 성적...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에 득점 상위권 선수 없어

 
2007년 정초부터 프로축구 K리그에는 외국인 바람이 거셌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무명의 터키 대표팀을 일약 3위로 이끌어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랐던 세뇰 귀네슈 전 터키 대표팀 감독이 FC 서울 사령탑에 앉게 되면서 스타 감독 부임에 따른 판도 변화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리그 일정이 3분의 1 이상 소화된 지금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외국인 감독들의 활약은 지지부진한 반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때로는 더 큰 무대 진출을 위한 징검다리로 생각하고 K리그를 찾은 외국인 감독·선수들의 엇갈린 운명, 과연 시즌 막판에는 누가 웃을까. 
용병의 역사는 지난 1984년 네덜란드 출신의 공격수 레스베르겐이 K리그로 온 이래 23년을 이어오는 동안 부침을 거듭했다. 때로는 K리그의 발전을 가로막을 정도로 득세한 적이 있었는가 하면, 돈이 아까울 만큼 활약이 미미할 때도 있었다. 2007년은 외국인 선수 반등의 해로 손꼽을 만하다.
현재 득점 랭킹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외국인 선수는 무려 8명에 이른다.
루이지뉴(대구)와 데얀(인천)이 각각 12골과 11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스테보(전북)·까보레(경남)·알미르(경남) 등 K리그 무대를 처음 밟은 신입 용병을 비롯해 한국 축구에서 잔뼈가 굵은 모따(성남)·뽀뽀(경남)·데닐손(대전)도 득점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신·구 용병 가리지 않고 활약이 고르다.
시즌 초 외국인 감독들은 ‘공격 축구’를 화두로 K리그에 바람을 일으켰다. 귀네슈 FC 서울 감독은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선수 구성을 가지고도 신예급 선수들을 적극 활용해 화끈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손꼽히는 수원 삼성과의 첫 라이벌전에서 대승을 거둔 장면은 압권이었다. 하지만 박주영·정조국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상대 팀들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힘겨운 적응기를 거치고 있다.
지난 두 시즌간 포항 스틸러스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켜 지도력을 인정받은 파리아스 감독도 올 시즌 행보가 매끄럽지 않다. 이렇다 할 스타가 없음에도 새 얼굴들을 발굴하는 탁월한 능력과 조직력을 살리는 축구로 관심을 모았지만 점차 한계가 드러나는 양상이다.
스위스 출신의 앤디 에글리 부산 아이파크 감독의 처지는 더욱 쓸쓸하다. 화끈한 성격답게 힘이 넘치는 유럽 축구를 구사하려 했지만 여러 곳에서 공백이 생겨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로 뛴다는 것은 사실 고독한 일이다. 적잖은 돈을 벌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흔히 외국인 선수를 지칭하는 ‘용병’이라는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해 영입된 ‘득점 기계’ 이상의 의미는 없다.

 
 
외국인 감독들, 스타 선수보다 팀 플레이 중시


 

반면 같은 외국인이라도 감독에 대한 인식은 꽤 다르다. 지도자에 대한 예우와 선진 축구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에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외국인이 감독직을 맡고 있는 FC 서울과 포항 스틸러스, 그리고 부산 아이파크에서는 선수들보다 유명한 존재가 바로 외국인 감독이다.
이처럼 불공평했던 분위기가 올 시즌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어느 정도 거품이 끼였던 외국인 감독의 능력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외국인 선수들의 역할에 좀더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K리그를 ‘돈이나 버는 곳’ ‘그저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곳’이라고 여기는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팬들과의 호흡도 좋아졌다. 특히 ‘마빡이 세리머니’로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닐손, 소속 팀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과시하는 데얀과 스테보는 K리그에서 롱런이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득점 순위를 잘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패턴이 나온다. 상위권 선수 중 외국인 감독이 지도하는 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우선은 3명의 외국인 감독이 K리그에 적합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 해의 용병 농사에는 워낙 변수가 많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선수들의 부상을 감안하더라도 외국인 선수들의 활용도가 지극히 낮은 것은 팀 전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활용 정책에서의 실패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의 성격을 잘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이 포착된다. 득점 순위 상위권에는 시민구단인 대구·인천·대전·경남 등의 외국인 선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재정 여건이 취약한 시민구단은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확실한 역습 전술로 승부수를 띄운다. 외국인 선수 영입 전략도 이 전술에 적합한 선수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팀 공격에서 이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외국인 감독이 이끄는 팀은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보다는 팀 전체의 밸런스를 중시한다. 한두 명의 외국인 선수 기분에 따라 경기가 좌우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한다.
외국인 감독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직 한국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선수 발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축구에 대한 철학의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을 받쳐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적에 무관심할 수 없는 K리그의 현실에서 외국인 선수와 외국인 감독은 어떤 접합점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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