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남이지, 당연히
  • 윤영수 (방송 작가) ()
  • 승인 2007.05.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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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3일 서울 동대문구 야구장에서 열린 제41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대회 결승전. 광주일고와 서울고가 난타전을 벌였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경기가 끝났다. 끝내기 안타 한 방으로 경기는 역전되었고, 승리한 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얼싸안았다. 패한 팀 선수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관중석도 확연히 나뉘었다. 펄쩍펄쩍 뛰는 한 무리의 관중이 있는가 하면 망연히 운동장만 내려다보는 관중이 있었다. 극명하게 나뉜 관중들, 머리카락 희끗하고 배 나온 중년부터 웃통을 벗어젖힌 열혈 20대까지, 누가 보더라도 이들은 경기를 펼친 두 학교의 동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나이도 체면도 지위도 잊고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떠나 혼연일체가 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 야구의 산실이었던 동대문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경기를 보러 두 학교의 동문들이 일터에서 잠시 시간을 내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날따라 동대문구장이 철거된다는 소식까지 들려 동문들은 옛 추억에 잠시 젖어들었을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동대문 근처에서 선후배가 모여 동문회가 자연스럽게 열렸는데, 그 맛있던 막걸리 한 잔의 추억을 동대문에서는 이제 끝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선 탓에 ‘잔인한 동문회’ 열리나


동대문구장에서의 그런 추억은 내게도 많다. 그렇게 나 또한 어디 출신이냐를 꽤 따지는 편이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궁금한 것이 그것일 때도 많다. 어느 동네 출신인지,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 어쩌다 같은 출신이란 것을 알게 되면 또 그렇게 또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대놓고 묻지는 못한다. 소심한 탓도 아니고 처음 만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도 아니다. 그런 것을 직접 물으면 어딘지 아직 덜 떨어진 촌것이라는 대우를 받을까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대놓고 묻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먼저 나를 까발리는 일도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해서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궁금증은 보통 제3자에게 물어 간접적으로 접수한다. 아뿔싸, 그런데 그런 것을 접수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그림이 달라져버린다. 사람은 어제의 그 사람인데 그의 출신지·출신 학교를 알고 나면 그에 대한 느낌, 생각, 그의 인격까지 달라 보인다. 나는 그렇다, 솔직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왜 그럴까?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대방에게 기초 정보를 대놓고 묻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피해의식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학연·지연·혈연 이런 걸 쉬지도 않고 비난해왔다. 그런 건 나쁜 거라고, 그러니까 나쁜 것을 알려고 하는 자체도 나쁘다. 이런 의식이 알게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쁜가? 같은 학교 나온 사람들끼리 약간 더 친하고 정서적으로 약간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이 나쁜가? 나쁜 건 그 정서적 유대감이 아니라 여기에 뭔가가 덧칠되는 그 순간부터일 것이다. 왜 있지 않은가? 특혜, 묻지 마 지지, 대책 없는 봐주기 등….
연말로 다가온 대선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뉴스를 채운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이런저런 모임도 활발해질 것이다. 지난 4월 내가 치른 세 차례의 각급 동문회는 참으로 잔인했다. 연말이 되면 더할 것인데 대선까지 겹쳤으니 각종 동문회가 전성시대를 누릴 것이다. 구호가 쩌렁쩌렁 귓가에 맴돈다. 우리가 남이가? 남이지,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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