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 비켜라, 만화 나가신다
  • 윤지현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6.0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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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등 해외시장에서 신한류 바람...수요 채울 콘텐츠 확보 '발등의 불'

 

한국 만화의 한류 붐이 거세다. 한국 만화가 일본 ‘망가’와 차별화한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도 성공했다. 수출 시장이 넓어지면서 수출 규모도 2002년 1백70만 달러에서 2005년 3백27만 달러로 늘어났다. 부천만화정보센터가 펴낸 2006년 <만화산업 통계 연감>에 따르면 판타지 만화 <라그나로크>는 미국·일본 등 24개국에 수출되었다. 
한국 만화가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03년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국제만화페스티벌(FIBD)의 주빈국으로 초청받으면서부터이다. 이 페스티벌은 만화 축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수많은 만화의 국제 출판권 계약도 이 페스티벌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페스티벌에 마련된 한국특별전시관에는 나흘 동안 8만명이 몰려들었고 마지막 날에는 입장을 제한했을 만큼 호응이 컸다. 한국 만화가 ‘망가’와 구별되는 새로운 콘텐츠로서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만화계 인사들은 이해를 한국의 ‘만화’라는 브랜드가 일본 ‘망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원년으로 꼽고 있다.


2004년 7월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Comic Con)’, 그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프랑스 ‘한국 만화 주간’ 등을 통해 ‘만화’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 행사를 이끈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한국 만화 로드쇼’라는 타이틀로 국내 작가 팬 사인회, 현지 만화 동호인과의 만남, 언론 인터뷰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한국 만화가 가장 많이 수출되는 곳은 북미 지역이다. 전체 만화 수출의 43.7%가 미국과 캐나다에 몰려 있다. 미국에서 한국 만화는 독특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한국 만화를 수입한 출판사는 도쿄 팝이다. 한국 만화의 인기가 높아지자 미국의 다른 메이저급 출판사들도 수입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북미 다음으로 한국 만화가 많이 수출되는 곳은 유럽·동남아·일본 순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한국 만화의 신장세는 눈부시다. 특히 일본 망가와는 분명하게 구분되어 입지가 확고해짐으로써 한국 만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수요 또한 크게 늘어났다. 프랑스의 한국 만화 전문 출판사 씨베데(SeeBD)는 한국 만화의 인기로 2004년도 수익이 5백% 이상 급증했다.
근래 들어서는 합작 만화가 많이 나오면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올 2월에는 만화가 임석남씨가 프랑스인 부부 작가인 앙주와 함께 <용의 기사>(Chevaliers Dragons)를 냈다. 최초의 한·프랑스 합작 만화이다. 프랑스어권 3대 출판사의 하나로 꼽히는 벨기에의 카나에서도 한국 만화가인 변병준·최규석·변기현 등과의 합작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코믹스 위주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성격이 드러나는 작가주의 경향의 작품들로 수출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빨간 자전거> 등으로 유명한 김동화의 작품들이 대표적 사례이다.
만화의 해외 진출은 북미·유럽뿐만 아니라 만화의 원조라는 일본에까지 뻗어가고 있다. <신암행어사>는 일본 만화 잡지 <선데이 GX>에 연재되어 단행본만 1백50만 부가 팔렸고, 한·일 합작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신암행어사>의 성공으로 일본 만화계에서 한국 작가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 만화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명진의 <라그나로크>는 일본을 주축으로 해외 판매만 100만 부를 넘어서 ‘만화 한류’의 히트작이 되었다. 강풀의 <순정만화>와 같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은 만화도 일본에 수출되고 있다.

 
출판사들의 공격적 마케팅 ‘주효’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온라인 게임의 선풍적 인기가 한국 만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서는 한국 만화로만 구성된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만화 진흥 기관인 부천만화정보센터(이사장 조관제)가 중국 선전에서 열린 국제문화산업박람회에 참가해 한국 만화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일본 망가의 아류로만 알려졌던 한국 만화가 짧은 시간에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한국 만화 출판사들의 공격적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국내 만화 시장의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이 국제 시장이다. 일본 만화 출판사들의 경우 내수 시장만으로도 수익 창출이 가능해 수출에 미온적이었다. 반면 한국의 만화 출판사들은 만화 시장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전시회 참여와 로드쇼 개최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이혜은 대리는 “만화 브랜드가 외국에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한국 만화 출판사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 만화 콘텐츠가 갖는 고유의 특징도 만화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 만화는 일본 망가보다 덜 선정적·폭력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세계 만화 시장의 주축인 북미나 유럽에서는 선정성이 배제된 아동 만화와 감성적인 성인 만화를 선호해 한국 만화에 유리한 면이 많다.
대원씨아이 김남호 이사는 “많은 한국 만화들이 건전하고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만화 수출에 청신호를 켜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많다는 점도 만화 마니아들의 좋은 반응을 얻는 요인이다.
하지만 한국 만화 수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출에 성공한 작가는 70여 명에 그친다. 그래서 한국 만화 붐이 계속 이어지기 힘들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만화 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콘텐츠의 안정적 확보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 만화계를 장식했던 수작들이 대부분 수출된 상태여서 새로운 작품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업계에서는 정부 지원 등의 환경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문화사 유재옥 부장은 “외국에서 한국 만화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는데 요즘은 팔 만한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온다. 콘텐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전시 지원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창작 여건을 개선해주는 폭 넓은 지원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메이저 해외 만화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 중국·동부 유럽·중남미 등 신규 시장 개척도 시급하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독일·러시아·베트남·아르헨티나 등에 소재한 한국문화원 12곳을 활용해 한국 만화 홍보를 강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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