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상품 없으면 '새' 된다
  • 신정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04 11: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증권사들, 해외 · 파생 상품 개발에 사운 걸고 총력전

 
올 가을 결혼을 앞둔 우리투자증권 채권상품팀 김영환 대리는 요즘 바쁘다. 약혼자와 자주 만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적지 않다. ‘달러 환매채’ 판매를 안정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5월 초 달러화 환매채를 업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원화나 달러화로 입금하고 둘 중 원하는 화폐로 찾아갈 수 있는 신상품이다. 증권업협회는 영업 개발권을 인정해 5개월간 독점 판매를 허가했다. 올가을부터는 눈독을 들이고 있던 다른 경쟁사들도 이 시장을 치고 들어온다. 김대리는 그 사이 ‘시장을 확실히 잡아놓으라’는 특명을 회사로부터 받고 열심히 뛰고 있다.
요즘 증권업계는 이같은 신상품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해외 시장을 겨냥한 펀드 상품 영업은  ‘전쟁’에 가깝다. 시중 뭉칫돈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시중 부동 자금은 증권사 상품 개발 부서 직원들 눈에는 ‘물 반, 고기 반’으로 서로 낚아채려고 안달이다.
CMA(현금관리계좌) 판매장에서는 난투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경쟁이 지나쳐 과당 광고, 부실 상품 운용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CMA 판매 강자는 동양종합금융증권. 종합금융 업계 선두에서 증권사로 변신한 까닭에 이 시장을 쉽게 선점했다. 이어 지난해 초 한국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한화증권·현대증권 등이 CMA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연말에는 삼성증권·대우증권·미래에셋증권까지 가세했다.
CMA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은행과 계좌를 연계하면서부터다. 언제라도 입·출금할 수 있어 일반 예금 통장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경쟁 상품인 보통예금의 경우 한 해 이자율이 1%도 안 된다. 반면 CMA의 평균 수익률은 4.5%대. 특히 올 들어서는 급여 이체와 카드 대금 대납도 할 수 있는 상품이 개발되면서 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 대출 등 다른 기능까지 연결되면 과거 적립식 펀드처럼 폭발적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장을 쳐다보는 증권사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증권사의 주력 상품은 역시 펀드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5월21일 현재 국내 CMA 총 잔고는 3조9천5백53억원. 하지만 펀드 상품 수탁고는 2백34조6천55억원으로 차이가 매우 크다. 이 중 △채권형 46조6천억원 △주식형 53조원 △수시 입·출금형 단기 상품인 MMF 57조7천억원 등이다. 채권형 펀드는 올 들어 오히려 줄었고 MMF는 제자리걸음이다. 주식형만이 증시 활황에 힘입어 6조원쯤 불어났다. 주력 상품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일거리만 늘었다.
증권사들은 그 돌파구를 해외 상품이나 파생 상품 쪽에서 찾고 있다. 신규 펀드 상품은 하루 평균 한 건씩 만들어진다. 올해 들어서는 하루 2건 이상 개발되어 ‘고객 사냥’에 나서고 있다. 상품 수가 하도 많아 객장 직원들도 회사 상품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증권업계가 내놓은 금융 상품은 2천여 개.
그러나 파생 상품은 해외 상품보다 부동 자금 흡수제로서의 역할이 부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새 상품을 내놓아도 ‘배타적 사용권’인 독점 영업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이다. 반년만 지나면 모든 증권사가 ‘짝퉁’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점이 바로 증권사들이 무한 경쟁으로 치닫는 주요인이다.


 
신규 펀드 상품, 하루에 2개 이상 나와

불과 몇 달 전까지 신상품을 내놓은 경쟁사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것이 증권업계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계약직과 연봉 체계가 다른 업종보다 일찍 도입된 증권업계 실상이다. 최근 상품 전문 개발자까지 등장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증권가의 신종 직업이다. 증권계 한 관계자는 “짝퉁 금융 상품 제조책·접선책으로 나누어 뛰고 있는 것은 마약 조직과 같은 인상이 들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윤규갑 NH투자증권 상품개발팀장도 “책상에 앉아 다른 회사 상품과 비교해가며 경쟁력 있는 새 상품을 만들어내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한다. 증권가의 ‘짝퉁’ 범람 시대에 고액 연봉을 주어가며 신종 상품을 내놓아보았자 회사 수익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증권사들이 자연 해외 시장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 역사는 짧다. 해외 금융투자 관계 법령은 1990년대 초 코리아펀드 설립 뒤 계속 정비되어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투자회사로 해외로 나간 것은 3년여밖에 되지 않는다. 해외 상품 개발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외국계 증권사인 피델리티 자산운용이 2003년 유럽·태국·인도 등에 투자한 펀드가 대박 나면서부터다. 그때 피델리티 태국 펀드가 1백30.3% 수익률을 기록했고 인도 주식형, 이머징 유럽 펀드, 중국 주식형에서도 수익을 크게 올려 화제가 되었다.
그 놀라움을 식힐 시간도 없이 이번에는 미래에셋이 홍콩 주식에 손대면서 대우증권·대신증권이라는 양 ‘대(大)’ 증권업계 틀을 깨고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어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 진출에 성공해 투신사에서 증권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선발 증권사들이 기존 증권업계 영업 구도에 안주해 적립식 펀드 유치 경쟁에 올인하는 동안 신탁자산 순위 등 업계 판도가 바뀌어버렸다. 이에 1년여 벤치마킹 및 신 시장 개발을 독려해 지금과 같이 해외 시장 진출이 잇따르게 되었다. 시중 유휴 자금이 많아 ‘물 반 고기 반’이라지만 어부 격인 증권사 사람들의 심정은 절박하다.
증권업계에서는 전체 유동 자금(1경9천억원) 중 유휴 자금이 절반쯤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사들이 이 돈을 빨아들이기 위해 내놓은 펀드 액수는 5월 말 현재 2백41조원에 이른다. 이 중 해외 상품과 연계된 펀드는 40조원대 규모로 추산된다. 증권사들이 성장세만을 내다보고 아무 해외 펀드나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해외 상품 간에도 분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펀드에 가입하는 역외 펀드 시장이 매우 넓어졌다. 올 들어서는 재간접 투자 상품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역외 펀드나 재간접 투자 상품 수익률 비교에서 승패의 70~80%가 판가름 난다.
‘차별화만이 살 길’이라는 화두를 들고 해외 상품 개발을 고민 중인 증권사들은 ‘on-shore’ 상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on-shore란 국내에서 펀드를 모집해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증권사들은 지역별 특화로 독점 지위를 누린다. on-shore 상품 역시 시장 싸움이 뜨겁다. 대우증권은 랩어카운트 상품을 주력 전략으로 끌고 갈 예정이다. 기후 변화를 물 펀드에 접목시켜 재미를 본 삼성증권은 수자원 관련 해외 주식 투자에 힘쓸 계획이다. 우리투자증권은 달러 환매채 상품의 배타적 사용권을 이용해 해외 상품으로 연계시킬 방침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