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하고 쿨한 '황진이' 통할까
  • JES ()
  • 승인 2007.06.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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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예술혼을 불태우며 열정적인 삶을 산 예인일까,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실컷 비웃으며 살아간 냉소적인 여인일까?
지난해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 ‘이제 황진이는 새로울 게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장윤현 감독)는 과연 같은 사람을 그린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1백80° 다른 황진이를 그렸다.
송혜교표 황진이의 색깔은 차갑고 도도하다. ‘16세기에 산 21세기 여인’이라는 문구처럼 시대의 비극을 냉소로 맞받아친다. 열정적인 예술혼을 불태웠던 하지원표 황진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거문고 솜씨에 일필휘지의 붓자락으로 사내를 매혹시키는 하지원식 황진이를 기대했다면, 송혜교의 황진이는 실망 그 자체이다.


 
실제 금강산 오르는 엔딩 신은 볼만

10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영화 의상과 미술, 금강산 비경 등을 화려하게 담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정작 타이틀롤인 황진이에게서 볼거리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화려한 춤사위나 거문고 연주는커녕 기생임에도 불구하고 남정네와 입술 부딪치는 장면조차 없다. 포스터에서 그가 어깨 속살을 살며시 드러낸 것은 그저 관객을 유혹한 포장에 불과하다. 
의상을 살펴보면 하지원과 송혜교의 황진이 캐릭터는 극명해진다. 하지원이 입었던 드라마 속 의상이 붉은색과 노란색이 주를 이룬 데 반해, 송혜교의 의상은 녹색과 보라, 검정색 등 차가운 색깔이 대부분이다. 뜨거움과 쿨함의 사이에서 하지원과 송혜교가 대치하고 있다.
시각적 볼거리 대신 송혜교는 고급스러운 기품을 앞세워 내면 연기에 충실한 모습이다. 이 남자, 저 남자를 품는 노류장화(路柳牆花: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이라는 뜻으로, 창녀나 기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삶을 살지만, 마음속에는 첫사랑을 향한 일편단심을 품고 있음을 깊어진 눈빛으로 드러낸다. “내 정조를 드릴 테니 기둥서방이 되어달라” “기생년을 이다지도 어렵게 품는 사내가 어딨답니까?”라고 도발적인 대사를 던질 때의 그 표정은 도도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정도면 천한 기생이 아니라 양갓집 규수보다 더한 품위가 느껴진다.
원작에 충실한 탄탄한 스토리가 송혜교에게 쏠린 무게중심에 균형감을 잡아주었다. 홍석중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에 등장한 가상의 인물 ‘놈이’역에는 사극에 첫 도전하는 유지태가 맡았다.
영화는 송도의 황진사댁 별당 아씨 황진이(송혜교)가 한양의 명문가와 혼담이 오가던 도중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파혼당한 후,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새롭게 해석한다. 여기에 벽계수·서경덕과의 일화 등이 간간이 스쳐 지나가고, 훗날 신분 사회에 반기를 든 놈이가 화적패의 수장이 되며 황진이와 재회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2시간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 느슨한 극 전개와 함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황진이가 금강산을 오르는 엔딩 신은 북한의 협조로 이루어진 촬영으로 영화 스토리와 상관없이 아름다움과 의미가 돋보여 꼭 한번 볼만한 명장면이다. 6월6일 개봉. 
JE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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